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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국내 최초 출간!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먼저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 ㅣ 더숲히스토리
야마다 시게오 지음, 박재영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6년 4월
평점 :
한때 세계는 말을 잃은 물결이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사막의 모래와 별빛이 스쳐 지나던 밤에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손바닥의 흙으로 문자를 빚고, 그 문자로 도시를 만들고, 도시로 제국을 세웠다.
야마다 시게오의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는 그 최초의 “설계의 순간”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책이다.
그는 잊힌 점토판과 비문의 파편에서 인간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찾아낸다 — 정복의 역사가 아니라, 문명을 설계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상상력에 대한 기록이다.
[세계를 그린 손, 시간의 엔지니어]
아시리아인들은 칼보다 붓을 더 믿었다. 돌벽에 부조를 새기며, 그 돌 안에 행정의 구조를 새겨 넣었다.
중앙에서 내려진 명령은 서기관의 손끝을 거쳐 먼 변방까지 흘러갔고, 왕의 의지는 언어의 형태로 백성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야마다는 그 점토판의 조각들 속에서 인간이 문명을 계산하듯 다루던 흔적을 찾아낸다.
그는 기록과 지령, 신과 법의 교차 속에서 우리가 오늘 ‘국가’라 부르는 개념의 원형을 본다.
모래로 낮을 기록하고, 별빛으로 밤을 측정하던 사람들 — 그들은 세계를 단순히 바라보지 않고 조직하려 한 첫 설계자들이었다.
그들의 손끝이 남긴 질서의 선은 후대의 페르시아, 로마, 그리고 오늘의 거대한 네트워크까지 이어져 있다.
[붕괴의 순간, 인간의 질문]
그러나 모든 설계에는 균열이 생긴다.
완전한 체계는 생명의 예외를 허락하지 않았고, 질서의 완성은 곧 인간의 무게를 잊게 했다.
야마다는 아시리아의 몰락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읽지 않는다.
그는 그 붕괴를 문명이라는 구조가 인간의 숨결을 삼키는 순간으로 표현한다.
행정의 언어는 감정을 잃었고, 기록은 침묵이 되었다.
그렇게 제국은 무너졌지만, 그 폐허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의 세상 — 데이터의 제국, 정보의 신전 —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아시리아의 그림자와 함께 있다.
완벽함을 향한 욕망은 시대를 넘어 계속된다. 그리고 그 욕망의 끝에서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되묻는다.
[문명과 기억 사이의 대화]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는 단순한 통사(通史)가 아니다.
야마다 시게오의 문장은 문명과 인간 사이의 오래된 대화를 되살린다.
그는 돌 속의 글자들을 생명처럼 불러내어, 고대의 행정 문서 속에서 인간의 숨소리를 듣는다.
그의 시선은 학자의 눈으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인의 귀로 끝난다.
그가 복원한 것은 제국의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문명을 설계하고 그것에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그 장대한 순환은 오늘 우리의 존재에 묻는다.
세계란, 결국 인간이 만든 구조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려는 끝없는 대화가 아니었던가.
[새벽이 오고, 폐허 위로 바람이 분다]
부서진 점토판 한 조각이 햇빛을 받아 천천히 글자를 드러낼 때, 우리는 묻는다.
“문명은 무엇이며, 인간은 왜 세계를 설계하려 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 묵문(黙文)을 길게 이어놓는다 — 마치 제국의 심장이 아직도 메소포타미아의 모래 속에서 미세하게 뛰고 있는 것처럼.
그 박동은 시간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이다.
“문명은 구조가 아니라 기억이다.
살아 있는 모든 시대의 영혼은 그 기억 속에서 다시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