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살아, 정원주. 행복하게.."
돈많은 남자 만나 인생 리셋 하겠다던 소위 놀던 언니, 동현고 3학년 7반 정원주. 돈많은 남편과 잘나가는 시댁을 둔 서른둘의 원주는 무척 서늘하고 덤덤한 여자가 되었어요.
공부로 인생 리셋 하겠다던 최고의 모범생 동현고 2학년 서윤. 달동네 철거촌 가난뱅이에서 유학파 대기업 팀장님이 되기까지 윤의 일생은 줄곧 노력과 집념의 결정체인데요.
'이렇게 발랑까져도 날 좋아할래? 날 감당 못할걸?' 일부러 시위라도 하듯 엇나가기만 하는 원주였지만, 이미 너무 빨리 철이 든 속깊은 윤은, 또 다른 면으로 일찍 철들어 버린 원주가 늘 안쓰럽고 대견했어요.. 그렇게 행복하길 바랬는데, 핏줄이 도드라지는 마른 몸과 서늘한 표정에선 당차게 삐죽대던 원주는 찾아 볼수가 없습니다.
" 누구를 대신해 하는것 말고, 네 인생, 네 사랑, 네 꿈. 그런걸 생각해. 그리고 그 안에 내가 꼭 있어야 하는지도. 내가 있어서 네 인생이 불행할 것 같으면 네 인생에서 나는 빼도 좋아. 그게 아니라면, 와서 잡아."
사랑하는데 더는 다가오지 않겠다니...날더러 결정하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바보는 너야. 아버지도 그래. 이토록 뜨거운 고백을 하는 당신들. 아주 바보들이야.' 정말이지 원주가 사랑하는 남자들은 왜 이러는건지...ㅠ.ㅠ 한방씩 차지하고 같이 살았음 했다는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고백은 또 왜이리 저를 가슴 뜨겁게 하던지요..
고민하다가 지른책인데, 역시 '오후'는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혼녀인 원주와 대기업 팀장인 싱글남 윤의 재회물인데요 설정도 설정이거니와 문장이 달달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담담하고...스산한 가을 같아요.. 그렇기에 취향을 많이 타지 싶습니다. 대중들이 선택하기엔 꺼리는 설정이 가장 크겠고, 분위기 자체도 달달함은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든 글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조만간 복습할 듯 합니다. 왠지 모르게 계속 짠한 두사람에게 감정이입이 됐고, 가슴아프면서도 담담하듯 건조한 듯 스며드는 문장이 좋았어요.
서윤이란 남자만 멋있고 원주의 캐릭터가 엉망이였다면 저도 아마 중간에 책 덮었겠습니다만, 원주도 원체 짠내가 나서 손가락질 하며 욕할수가 없네요...허허.. 결정적으로 마냥 머리텅텅빈 그런 스타일이 아니예요.. 윤 만큼이나 원주도 사실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라...ㅠ.ㅠ
헛똑똑이 원주 보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됐고, 예전에 잼나게 읽었던 책들이 오버랩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윤이 아버지나 원주 아버지나.. 부모의 애틋한 자식 사랑 같은게 있어서 참 애틋했고..
임신을 하게 되면 친정엄마를 따라 간다는데, 입덧이 심한 원주가 안쓰러워 이리저리 반찬공수하며 사다 나르는 윤 보면서는 또 왜 그렇게 맘이 울컥 하던지요...
늘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인생 고치겠다는 원주였지마는, 그렇게 속물적인 이야기를 영악한 구석 하나 없이 처연하게 하는 사람은 원주 밖엔 없을 거예요 후우...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이 원주를 가장 성숙하게 해준 사건이였죠..쩝...
"나한테 왜그래. 다들 너무 하잖아. 다 이해하라고 말하지 말라고.." 원주가 투정부리는건 거의 볼수가 없는데, 아이처럼 투정부리며 감정을 쏟아낼때는 진짜 너무 짠해서 원...
암튼, 윤이나 원주나 둘다 꼭~ 안아주고 싶은 캐릭터 였네요.. 원주가 꿈을 다시 찾아서 그게 전 참 기쁘더라는.. 뻔한 해피엔딩 일지언정 제발 좀 행복했음 좋겠다...싶었는데 결말은 또다른 여운이네요. 물론, 해피엔딩입니다~ 개인적으론 은근 뒤끝이 강렬하게 남아서 나중에 한번 더 복습 하려구요~그치만 말씀드렸듯, 취향을 좀 탈 듯합니다.
파이 (π)의 소숫점 자리와 수학의 역사를 얘기하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이상한(?) 농담을 하는 유식의 끝판왕이 바로 서윤 이란 남자인데요. 10년동안 변하지 않는 남편감 베스트3 속에서 번외로 4등이 나타났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허허.. 책임감, 꾸준함, 지적인 섹시함, 까칠한 독사같지만 다정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실함... 이렇게 성실하고 꾸준하게 노력하며 늘 같은 맘으로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다면...하면서 부러움에 분통을~~!!!ㅎㅎ ㅠ.ㅠ
중간중간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점 등, 물론 아쉬움도 있었지마는, 그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글이라 생각해요. 솔직히 작가님 전작은 제겐 별로였던지라 출판사 만을 보고 지른 모험 이였는데, 같은 작가님 맞나? 싶을 정도로 좀더 성숙해진 듯 하고, 다음 작품도 기대되는데요??!!! 출판사 편집일기처럼 우리들의 '서툰 청춘에게 고하는 안녕' 이란 말이 딱인 글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른들의 성장기를 좋아하는지라 정말 그 점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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