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 자료를 통해 빨치산과 지방 좌익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을 살펴보면, 
주입된 반공 담론을 넘어서 
내재하는 학살에 대한 두려움과 
이 세대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읽을 수 있다. 
그 트라우마는 분단·반공체제에서
 ‘지식‘으로 표상되는 ‘사상/ 이념‘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고, 
이중권력 아래에서 양쪽에 동원되는 위치에서 
강제성과 자발성이 혼합된 채 순응과저항,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며 
생존을 모색해야 했던 상황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집단적 기억은 전쟁 후 한국 사회에
반공의 사회심리 구조를 형성하고 
냉전 통치성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이 세대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나중에 대구·경북 지역이 보수화되는 
또 다른 원인으로도 볼 수 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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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에서는 
1946년 10월 항쟁 후부터 1948년 8월 정부 수립 전까지 
대구·경북 지역의 진보적 사회운동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구와 경북의 10월 항쟁이 진압된 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8천여 명이 
시위 가담 혐의로 검거되어 재판에 부쳐졌고 
가담 정도에 따라 최고 사형까지 선고받았다. 
그리고 사건 관련자뿐 아니라 사건과 무관한 
민간인상당수가 재판절차 없이 불법적으로 학살되었다.
항쟁 직후의 탄압 여파에서 벗어난 뒤,
 1947년에는 미소 공동위원회 
속개 요구 투쟁이 전개되었다. 
1948년 2월에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
UNTCOK파견을 반대하여
 2.7 투쟁이 일어났고 뒤이어 
5.10선거를 반대하는 남한만의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는 1946년10월 항쟁에 
선도적으로 참여했던 학생과 농민들을 중심으로 
대중운동이 전개되었다. 1946년까지 
각 부문에서 진행되던 경제 투쟁보다는
 분단정부 저지를 위한 정치 투쟁이 강화되었다.

대구·경북 지역은 1946년 10월 항쟁 후 대대적인 탄압이 있었음에도1948년 상반기까지 진보적 대중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즉 주요 핵심세력은 탄압당했지만, 미군정 및 보수세력과의 대결이 전면화하고 전선이 분명해지면서 대중운동이 더 성장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미군정의 탄압 때문에 운동의 중심이 점차 도시에서 농촌으로, 평지에서 산지로, 합법투쟁에서 무장투쟁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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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영천은 지리적으로 대구와 가까웠으므로대구의 항쟁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사회·경제적 불안정성도 항쟁의 발생과 강도에 영향을 미쳤다.

영천은 1944~1946년 사이 인구 증가율이 
26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해방직후 
귀환동포가 많이 유입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이 커졌다. 
식량 문제가 심각했는데도, 미 군정청의
 ‘공출‘ (하곡 수집)이 가혹하여 
행정당국과 농민 간의 갈등도 심했다. 
1946년 2월에는 군수 이태수가 직접 
나서서 미곡수집령을 위반할 경우 
엄벌에 처하겠다고 주민들을 위협했고, 
군 식량계원은 농민들이 하곡 공출에 
응하지 않는다며 서로 뺨을 때리게 하고,
 보리를 운반하는 차에 태워 유치장에 가둔 뒤 
유치장행 운임 10원과 유치장 숙박료 90원을 
받는 일도 있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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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사회운동 세력과 민중으로부터 
고조된 건국운동은 미군정이들어서자 
난관에 부딪친다. 
첫째, 미군정의 비호 아래 
친일 관리와 친일경찰이 재임용되고 
보수세력이 육성되었다. 
둘째, 해방 후 귀환 이재민이
다수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한 상태에서, 
미군정이 잘못된 경제정책을 펼쳤다. 
이에 물가고와 실업난에 식량난이 가중되어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이 증대했다. 특히 
1946년 여름 콜레라가 유행하고 수해가 일어나서 
도시빈민의 식량난은 극심해졌다. 
셋째, 토지개혁을 지연하면서 
봉건적 질서를 타파하지 않아 
지주-소작 관계로 고통받던 농민의 삶이 
여전히 힘들었다. 이는 민중에게 
일제 식민지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환기하는 것이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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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항쟁에 관한 몇 가지 오해

첫째, 이 항쟁을 보통 ‘대구 10.1 폭동‘,
 ‘대구 10.1 사건‘ 등으로 부르면서,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만 일어난 
사건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946년 10월 항쟁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하여 
1946년 12월 중순까지 남한 전역 73개
시·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즉 10월 1일의 대구 항쟁은 
이후 일어난 항쟁의 출발점일 뿐이며, 참여 인원·범위 · 기간 면에서 도시인 대구의 항쟁보다는 그 뒤에 일어난 농민 항쟁 비중이 훨씬 크다. 그런데 학계에서도 대부분은 10월 1일에서 2일 사이에 일어난 대구의 도시 항쟁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물론 한국전쟁의 기원』(1981)을 쓴 브루스 커밍스는 ‘추수 봉기‘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10월인민항쟁연구』(1988)를 쓴 정해구는 ‘전민 항쟁‘이라는 차원에서 경북 항쟁을 포함하여 전국의 항쟁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대구 항쟁후의 과정까지 다루는 연구자도 있지만, 대체로 항쟁 참가자의 다수를 차지했던 농민 항쟁에 대한 고찰은 부족한 편이다. - P15

목차

책을 펴내며. 낮은 목소리의 이야기를 따라
서장. 10월 항쟁은 무엇이었는가

1부. 10월 항쟁
1장. 건국의 푸른 꿈
1. 건국운동의 열기
해방 직후 건국운동의 조직
노동자의 조직과정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의 활기 
빈민조직의 부재 
정당과 통일전선조직  
경북정치학교, 건국의 푸른 꿈과 지역운동의 도전 
농촌조직의 영향력과폐쇄성

2. 되풀이되는 식민지의 악몽
점령군의 등장, 친일파의 귀환 
지방 보수세력의 형성 
식량난과사회·경제적 불안정성 
대중투쟁의 폭발 
좌우합작과 대구공동위원회 
미군정의 탄압과 9월 총파업

3. 혼돈 속의 건국운동과 항쟁 전야
- P9

2장. 대구, 10월 항쟁의 서막

1. 대구역 광장 시위와 경찰의 발포
10월 1일: 노동자·시민이 연대한 시위 그리고 경찰의 발포 
10월 2일: 시위의 전개와 경찰의 발포 시점 
10월 1일 경찰 발포 피살자는 누구인가 
10월 2일 경찰 발포 피살자의 신원 추정
2. 청년·학생 연합 시위와 시민항쟁
시신 시위의 조직과 청년학생 연합 시위의 지도부 
시위의 실질적지도부는 누구였는가 
10월 2일 오전: 청년학생 연합 시위, 시민항쟁으로의 전환 
10월 2일 오후: 지도부 없는 기층 민중의 봉기,사회적 트라우마의 폭발 
10월2일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의 반응
3. 시민항쟁으로서의 대구 항쟁의 의의와 한계


3장.농촌으로 간 10월 항쟁

1.경북 전역으로 번지는 항쟁.
제2의 3·1운동 
항쟁의 지역별 양상과 전개 과정
2. 농민항쟁으로서의 영천 항쟁
항쟁의 배경과 원인 
영천읍, 항쟁의 폭발 
면 단위로 확산되는 항쟁 
항쟁의 전파경로 
항쟁을 주도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3. 항쟁의 조직 기반과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
하층민조직: 계급적 동질성에 의한 결합  
친족관계: 일가주의적동질성에 의한 결합  
마을자치조직의 전통: 마을공동체의 동질성에 의한 결합 
19세기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
4. 10월 항쟁, 도시에서 농촌으로 - P10

2부. 작은 전쟁과 학살

4장. 삐라를 뿌리는 소년들

1. 항쟁의 진압과 민간인 학살
2. 항쟁 이후의 사회운동
남로당의 결성과 민전의 활동  
노동운동의 탄압과 학생운동의 성장
이름도 무덤도 없는 청년°학생 운동가들  
대중화하는 농민운동과 학생운동
3. 대중운동의 탄압과 무장투쟁의 발전
당국의 탄압과 통제 
지방보수세력의 강화 
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반대운동 
무장투쟁의 발전, 야산대에서 유격대로
4. 대중운동의 재편과 좌우의 분열

5장. 산으로 간 청년들과 작은 전쟁
1. 대중운동에서 무장투쟁으로
대구 제6연대 사건과 유격대의 형성군경의 빨치산 토벌  
1949년 대구 지역의 투쟁활동 
1949년 무장투쟁기의 남로당
2. 빨치산과 군경 사이에서
산사람과 들군 
빨치산의 생활과 활동 
낮에는 군경이 밤에는 빨치산이 - P11

3. 빨치산에 대한 기억과 집단적 트라우마
‘빨갱이 고수‘와 ‘지방빨갱이‘ 
똑똑하고 말 잘하고 잘생긴 
우익이 좋은동, 좌익이 좋은동, 알아야 뭘 하지요
4. 반공의 사회심리와 냉전 통치성

6장. 학살과 통제

1. 민간인 학살과 체제 통제
정부 수립기 대구 지역의 민간인 학살  
정부 수립기 경북 지역의민간인 학살:영천의 사례 
국민보도연맹과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학살
2. 기록으로 본 학살 사건
경주월성  
경산·청도°영일  
칠곡·고령·성주·군위·김천·금릉  
영덕  
영양·안동·영주·예천·의성·봉화·문경 
학살의 유형
3. 피학살자들은 누구인가
얼마나 많은 민간인 학살되었나 
언제, 어떤 지역에서 학살되었나
피학살자의 사회인구학적 구성
4. 학살, 진보의 절멸과 국가권력의 토대 강화

에필로그: 10월 항쟁의 유산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1. 10월 항쟁, 미완의 시민혁명
노동자·시민이 연대한 대중운동이자 사회운동 
항쟁 지도부와 조직역량의 부족 
전통적 농민 항쟁의 전승이자 현대 민중항쟁의원형
2. 남겨진 이야기: 전쟁 후의 또 다른 전쟁
아홉살‘이쁜이‘는 왜 
‘10-1폭동 처형자‘로 기록되었나 
학살 후 홀로 된 여성들 
70년간의 기다림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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