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로 뻗어 있는 신작로를 보았다.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며 
성장기의 나는 먼 데서 기적이 울릴 때마다 
그 기차가 가닿을 서울을 꿈꾸었다.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그렇게 동동거리며 조바심치며 
살다가 알게 되었다. 빨치산의 딸이므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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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언니는 말을 참 예쁘게도 한다.
내가 저런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지금쯤 정교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 말에는 칼이 숨어 있다.
 그런 말을 나는어디서 배웠을까? 
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사이 
나는 말 속의 칼을 갈며 견뎌냈는지도 모르겠다.
"나가 자네 속을 모리겄능가. 고맙네이. 참말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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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되었다. 사회주의자로서의 아버지는 
제법 근사할때도 있었으나
 농부로서의 아버지는 젬병이었다. 
사회주의자답게 의식만 앞선 농부였다.
 아버지는 일삼아 새농민을 탐독했고
 새농민의 정보에 따라
 파종을 하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농사를
‘문자농사‘라 일축했다.

"새농민이 원제 김을 매라고 하면 
풀이 암만, 허고 그때꺼정 잘도 지둘레주겄소. 
새농민이 뭐라거나 말거나 
풀이 나먼 난 대로 뽑아야제, 
워디 농사가 문자로 지어진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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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무렵의 내 결론이었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 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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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자부했는데 나이 들수록 잘 산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오만했고 이기적이었으며 그래서 당연히 실수투성이였다. 신이 나를 젊은 날로 돌려보내준다 해도 나는 거부하겠다.
오만했던 청춘의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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