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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청춘 - 지나온 시대와 지나갈 시절의 이야기
구가인 지음 / 모로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25.
낭만이건 청춘이건 잃어버린 후에야 더 소중하고 애틋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 아닐까.
책 소개 피드를 보면서 코끝이 찡해져 버린 것은 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애틋함이 훅-하고 불어놓은 먼지처럼 일어선 탓인가. 쏟아지는 비를 뚫고 도착한 책은 작고 얇았다. 빗물에 젖을까 조심조심 꺼내 손에 들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타임머신을 탄 듯이 20세기의 끝자락, 막 교복을 벗어던진 그때로 날아갔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만 같은 스무 살, 나의 스무 살은 새로운 세기와 시작되었다. 그 시절의 기억이 강렬한 것은 아마 모든 것들이 새로웠기 때문일 거다. 그 무렵 휴대폰 사용자가 급증했고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휴대폰이 가장 인기였던 것 같다. 나 역시 IMF 키즈인지라 집이 한참 어려웠었다. 화려한 광고 속에 나오는 것을 갖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까만 벽돌 같았던 아빠의 애니콜 휴대폰과 달리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앙증맞은 것을 마련했다.
휴대폰으로 친구와 연인과 시시때때로 연락을 취하던 우리는 말했다.
"옛날에 휴대폰 없던 시절에는 연애를 어떻게 한 거지?"
보낸 메시지가 읽씹인지 안읽씹인지, 언제 어디서 뭘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지금에 비하면 내가 보낸 문자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전전긍긍하던 그때는 아직 아날로그였다.
아날로그의 끝자락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친구들에게 책 사진을 찍어 보내줘가며 온갖 추억을 팔며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현실에 나에 가까워져 온다. 다시 책 표시를 봤다. "지나온 시대와 지나갈 시절의 이야기"라 적혀있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책이 얇아 추억만 잔뜩 팔려나 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삶이 추억 속에만 머무를 수 없듯 나는 어느새 나이를 먹어 40대가 되었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어른'이 되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대학만 가면 취업이 보장되던 시대를 지나 스펙 몇 줄 갖추면 되던 시대도 지나 지금은 온갖 스펙을 갖추어도 취업이 될까 말까 한 시절이다. 지금의 20대를 보며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이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어쩌면 나는 이들보다 좀 더 쉽게 어른이 된 걸지도 모른다(128쪽)는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취업이 어른의 조건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갈수록 팍팍해지는 이 세상에 아이들을 내던진 것만 같아 미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139.
우리가 나이를 드는 모습은 여물 먹는 동물처럼 여겨지기보단, 나이테를 키워가는 나무처럼 보이면 좋겠다.
191.
지영아, 정신 줄 꽉 잡아. 세상은 더 나아질 거야.
과거는 푸르고 애틋해도 현실은 늘 칙칙하고 고달픈 법. 82년생 김지영 중 한 명인 나의 삶도 뭔가 모르게 팍팍하네 싶은데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외침(?)에 마음이 펴지는 기분이다. 또 다른 82년생-한때 HOT 빠순이였던, 어쩌면 여전히-에게 이 책을 토스하기로 했다.
*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