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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다이어트 - 당신이 먹는 음식,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
앨런 C. 로건 지음, 서예진 옮김 / 수북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무엇인가 약간 부족한듯.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넘쳐나는듯 - 브레인 다이어트

 

몇몇 분들께서 리뷰에서 언급하셨던 대로... 요즘 세상에 정말로 많은 건강관련 서적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서적 중에서도 '머리' 에 관한 책들은 아마 이 책이 처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은 전적으로 '먹는것' 이 우리의 머리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하여 내용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평소의 식습관이 머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내용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왜인지 '식습관' 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됩니다. 식습관이 몸뿐만 아니라 머리에까지도 영양을 끼친 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이러한 것은 이 책의 단점으로 비추어 지기도 합니다. 브레인 다이어트라고 하는 제목과는 다르게 '식단' 으로 내용

 

이 전개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브레인 다이어트' 라는 제목은, 전적으로 '다이어트' 를 우리나라어인 '식습관, 혹은

 

식단' 으로 생각을 한 뒤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몸무게를 줄이는 - 다이어트' 를 생각한다면 책을 고를 때부터 실수하게 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책을 볼때, 평소보다 분명히 쉬운 용어들이 나온다고 하지만... 그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한 것은 조금 아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중학교 시절에 어딘가에서 배웠던 듯한 단어들이 나옵니다만.. 그 단어들을 다시 떠올리자니 인터넷 검색찬스를 쓰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이러한 아쉬운 점도 있지만, 책 자체는 꽤나 재미있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먹는 것들이 머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도 알 수 있고 말이지요.

 

요는.... 머리고 몸이고 간에...먹는걸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쩝...

 

.....저는 다이어트(식단)를 이야기 하기 이전에 다이어트(몸을..) 해야겠다...... 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군요...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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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세대를 위한 유교철학 에세이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유학도서
성균관대학교 유학주임교수실 엮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쉽다! 아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점이 아닐까! 말 그대로 N세대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교라는 것은 학생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칙칙하고,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있다. 너무나도 머나먼 이야기. 너무나도 오래된 이야기. 그래서 더욱더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일지 모른다. “공자왈 맹자왈~” 로 비견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라고도 여겨지는 ‘유학’.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왕조의 500여년이 이어 질 수 있었던 근간이 되었던 유학.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러한 실타래가 잘못 엉킨 걸까.

‘유학주임교수실’에서 편찬하였다는 이 책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으려고 애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었던 글과 현실에서의 괴리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리라.

때문에 이 책은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을 유학을 통하여 바라보자’ 라는 주제를 견지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면면에서 유학은 어떻게 그 버팀목이 되고 있으며, 각각의 사물들은 유학을 통하여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때로는 심도 있으며, 때로는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다.

좀 더 대상에게 쉬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은 이 책의 가장 첫 번째 장에서부터 느껴진다. 제 1부의 제목은 ‘짱구머리 공자’. 아니, 공자가 어딜 봐서 짱구머리라던가! 공자의 어록인 ‘논어(論語)’를 아무리 읽어보아도 ‘짱구머리였다.’ 라는 말은 없지 않은가!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열전(列傳)을 살펴보아도 공자가 짱구머리라는 사실은 없는데, 도대체 왜 이러한 ‘짱구머리’ 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일까?

이는 어떻게 해서든 공자를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하여 썼다는 것을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공자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며, 그가 처했던 현실을 다루며, 논어와 같이 고리타분한 내용들은 제외를 하였다. 아니, 제외라기 보다는, 아예 편을 달리하여 심도 있게 이러한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우면 그냥 넘겨보라는 이야기이다.

제 2편인 ‘역설적인 숙녀존중’ 에서는 기존의 여성을 바라보는 유학에서의 눈, 즉 차별이라고 일컬어지던 기존의 관점을 재해석하면서 여성에 대한 존중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유학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을 차치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약간 견강부회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유학에서의 여성에 대한 시각은, 기존의 유학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 3부 와 제 4부는 ‘현실에서의 유학’을 다루고 있다. 3부는 대체적으로 과학과 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4부에서는 한국 안에서의 유학은 어떻게 발전하였으며,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학의 현실적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유학의 미래상을 다루고 있다. 어디까지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쉬운 내용에 비해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물흐르듯 흘러가는 내용들을 읽어보면서 독자들은 유학에 대한 기본 소양과, 유학에 대한 관심을 스스로 키워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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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華苑의 향연 - 이야기 장자 철학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유학도서
송항룡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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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폈을 때 느껴지는, 알수 없는 느낌.

저자 서문에서부터, '이 책은 나와 관계없는 글이다.' 라고 쓰신 저자의 당당함.

그렇다. 그것이 바로 장자가 원하던 글쓰기 방식일 것이다.

 

송항룡 선생님은 거침없는 필력으로, 현시대적인 언어로 장자의 상념세계를 풀어나가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초심자가 장자에 대한 것을 읽기에 이 책은 약간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석서가 있다는 느낌도 없이 책이 진행되다가 미주에 주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배신감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초심자에게 어렵고, 전문가에게는 송항룡 선생님의 필력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느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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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유학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유학도서
김성기 외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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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 그리고 유교(儒敎). 이 두 단어는 (적어도 나에게는) 결코 언급하기 쉽지 않은 단어이다. 한문학을 공부하고, 유학·동양학을 배우는 나에게 있어서 감히 유학과 유교를 언급한다는 것은 내 분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 견강부회(牽强附會)를 하고 있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지난 3천여년간, ‘유학(儒學)’ 이라는 담론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설왕설래(說往說來)가 있었는가. ‘사서(四書)’ 라고 부르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의 안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내용 중에 단 한글자의 한자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설전(舌戰)이 오갔는가. 이런 내용에 대해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덧붙일 수가 있단 말인가.




 보통 유학에 관련된 책을 한번 살펴보자. 책 한권의 분량을 보면 다들 깜짝 깜짝 놀라신다. 하긴, 책 한권에 300~400페이지는 기본으로 잡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유학이다. 특히 논어(공자의 ‘어록’ 이라고 생각하면 간편하다.) 한 권에 대해 해석을 첨부해 놓은 책만해도 그 분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책들 중에서 유독 얇은(?) 페이지 수를 자랑하는 책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지금, 여기의 유학’ 이다.



                                                                                

 ‘지금, 여기의 유학’ 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1부에서 ‘유학의 현대적 의미’를, 2부에서는 ‘유학의 미래’를, 마지막으로 마침글에서는 ‘유학의 동아시아적 담론’을 풀어썼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학(儒學)’ 관련 서적을 자주 읽는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꽤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사실, 우리나라에 출판된 다양한 책들 중에서는 ‘유학의 현대적인 의미에 대한 재조명’을 한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거의 모든 책들이 ‘유교의 이상적 세계와, 유교관’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유교’ 라는 것에 대해 일반 독자층에게 어필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이 유교에 관련된 책들을 멀리하게 되었고, 때문에 유학이라는 것이 고루(孤陋)한 학문으로 남아버렸고, 유학은 이러한 관심에 대한 해결책이 없이 더더욱 선인(先人)들의 옛 글귀를 탐독하면서 그 속으로 현실도피를 해버려서, 더더욱 고루(固陋)한 학문이 되어가는 악순환을 반복해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학에 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유학의 현대적 의미’ 에 대한 고찰, 그리고 유교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담론적 요소들. 지금까지 나왔던 기존의 책과는 다르게, 좀더 유학에 대한 문턱을 낮추어서 일반 독자들을 끌어 앉으려고 한다는 점은 기존의 유학에 대한 고루한 이미지를 벗어나게 하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껴진다.




 일반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책(사실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읽히기 위한 책)이다 보니, 그 내용이 쉬울 수 밖에 없다. 기존의 유학적인 담론들, 즉 공자나, 맹자에 대한 -혹자는 듣기만 하여도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내용들에 대하여, 각각의 주제를 나누어서 한편의 글을 완성했다. 기존의 책들이라면, 지긋지긋한 경전을 싣고 그 뒤에 공자나, 맹자가 가졌던 사상이나 사유를 썼을 터인데,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읽기 쉽게를 표방한 책답게, 독자들이 유학에 대해 한번쯤 질문을 던져 보았을 만한 내용에 대하여, 표제어를 잡고, 그 다음에 내용을 써 내려갔다. 유학에서 여성을 비루한 존재로 보았다고 하는 내용에 대한 반박(?)글 형식과도 같이 작성된 ‘유교와 페미니즘’, 현대의 핵가족화 가운데서 다시 떠오르는 화두인 ‘효(孝)’ 에 대한 담론인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전통과 가족주의’ 등 유학에 대한 다양한 접근점을 독자에게 제시하여, 독자가 유학과 더욱 가까운 접촉점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문제점 역시 없는 것은 아니다. 워낙 방대한 내용을 독자에게 간단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제시된 글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워낙 갑갑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 사람의 이론이 나온 뒤에, 바로 다음 사람의 이론이 나오고, 또 이에 대하여 대립각을 세우는 이론이 있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의 전환이 너무 빠르다. 독자들의 숨조절을 할만한 적절한 포인트가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디게 느껴질 수가 있을 법하다.

 또한 인용문에 대한 글 역시 약간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사실 논어나 맹자는 각각의 편(篇)마다 핵심적인 주제들이 있다. 때문에 내용을 이해할 때에 있어서 한 편에 대한 내용을 전부 같이 이해하려고 하여야지, 한 단락에 나온 글귀만을 가지고 해석하려 한다면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 또한 그러한데, 일반 독자들이 그냥 한 구절이 나오는 것을 읽고서 그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물론 각각의 내용들 밑에는 집주(集註)라고 하여 주자가 달아놓은 해석이 있고, 또 이 밑에는 소주(疏註)라고 하여 이 내용에 대하여 그 외의 사람들이 집주에 대하여 해석을 해 놓은 것들이 있는데, 이러한 제반 내용을 완벽히 다 소화를 하려고 하면 아마 몇천페이지는 되는 책이 완성될 테니, 이 역시 문제가 되겠다. 내용을 중시하면 분량이, 분량을 줄이려면 내용이.. 끝없는 딜레마다.




 이 책에 대해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한국적’ 인 유학에 대한 길을 소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 유학의 맥과 흐름’ 이라는 파트에서 그 내용을 잠깐 언급하긴 하지만, 독자에게 한국에도 주체적인 유학이 있었다고 하는 점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였다. 사실, 유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최인호씨의 ‘유림’ 인데, 이 책이 오직 ‘한국적인 유학적 담론’ 으로 이루어 진 것에 비해보면 아쉬움이 배가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동(同) 출판사에서 ‘조선조 유학 사상사’ 라는 책을 펴 내어 한국적인 유학의 흐름과 그 정신(ex: 이기일원론, 이기이원론, 성호기발설....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으니, 좀더 본격적으로 한국 유학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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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베쓰야쿠 미노루 지음, 송선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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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하여 이바구('이야기'의 방언)를 하기 전에, 일단 '편력' 이 무엇인지 부터 알려드리지요. 막상' 편력'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알기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요.
 

편력 [遍歷][명사] 1 이곳저곳을 널리 돌아다님. ≒천력(踐歷)·편답(遍踏)·편순(遍巡). 2 여러 가지 경험을 함.
 
 이제 편력이란 뜻을 잘 알았으리라 생각하며.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 보고록 하겠습니다.
 
이 책에 대한 내용은 여러 후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느껴지는 내용에 대해서 써 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라서요..
 
 이 책의 가장 큰 중심 축은 '두 기사' 가 벌이는 '살인' 입니다. 살인을 이들의 살인에 대하여 여러 평론가들은 '죽지 않기 위해 싸운다' 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냉혹한 조소' 라는 표현까지도 쓴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결코 두 기사들은 '살인'을 의도적으로 하려하기 보다는,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의심'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살인' 은 주위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야 끝나고 말지요. 비극적으로 말이지요.
 
 이에 대하여, 많은 독자들은, 기사가 나쁜놈이니, 죽은 사람들이 바보니, 하는 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들이 무척 가련합니다. 사실 이들은 '죽기 안달이 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을 '죽지못해 살고' 있습니다. 처음 이러한 느낌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들이 '처녀' 에게 죽임을 당하려는 장면이었습니다.
 
기사 2 : 괜찮지... 나는 이제, 내 분별력에 넌더리가 나... 모험의 여행은 끝났어. 이번에야말로 저 아이가 부르면, 빤히 들여다 보이는 계략에 속아서 침대로 들어간다... 그리고 목을 내줘야지.
 
 기사2는 처녀에게 자신의 목숨을 주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죽여왔던 그의 행동과는 반대로 말이지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죽은 뒤, 이들이 하는 소리는 '죽지 못해 산다' 라고 하는 제 생각을 더욱 확고히 해 주었죠.
 
 
기사2 : 아무 일도 없지 않은가...
기사1 : 아무 일도 없군.
기사2 : 당신, 뭔가 해둔 거 아니었나?
기사1 :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기사2 : 그럼, 왜 고르라고 했지?
기사1 : 어쩌면 저 아이가 뭔가 해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기사 2는 기사1이 음식에 무엇인가를 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음식을 먹습니다. 사실 이는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태연히 독이 담겨있는 음식을 먹은 것이지요. 하지만 기사2가 죽음을 맞이하려고 하였지만, 기사1은 그러한 바램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기사2 : 날 죽일 생각이 없군...
기사1 : 없어.
기사2 : 왜?
기사1 : 이제 질렸어.
기사2 : 죽이는 게 말인가?
기사1 : 사는게.. 그래서 사는 일에 질리니까 죽이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어...
 
 기사1은 '삶' 에 질려서 '살인'을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무슨 뜻일까요. 앞에서는 분명히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굳이 그 사람들을 죽일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려봅니다. 사실 이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죽음' 입니다. 이들은 서로 '죽음'을 원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은 같이 여행을 해 온 만큼 서로간에는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타인(他人)은 다르지요. 얼마든지 이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다고 해야할까,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 두 기사가 만난 사람들은 전부 (기본적으로는) '착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 두 기사를 죽이지 못하지요. 결국, 이 두사는 '자신들을 죽이지 못하는 데에 대한 분노' 가 중심이 되어 주위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죽여주지도 못하는 자들에 대한 실망과 안타까움이 그 밑에 깔려 있지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이들은, 주위 모든 사람이 죽자. 다시 허무하게 앉아서, 자신들을 죽여줄 상대를 기다립니다.
 
기사1 : 어쩔 수 없지.
기사2 : 언제까지지?
기사1 : 저쪽에서 올 때까지지.
기사2 : 뭐가...?
기사1 : 우릴 죽일 상대가 말이야.
기사2 : 올까..?
기사1 : 기다리는거지...
 
 결국 이들은 또다시 자신들을 죽여줄 상대를 기다립니다. 그러다 지치면 다시 여행을 떠나겠지요. 자신을 죽여줄 상대를 찾아서 말이죠.
 
 사실, 이러한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물론 불쌍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개죽음' 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사람들의 죽음은, 두 기사에게 있어서는 '정말 바라던 바로 그 죽음' 입니다. 두 기사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가질 수 없었던 영원한 안식을 선사해 줍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러한 죽음을 이루지 못하였죠.
 
 요즘 세상, 정말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OECD국가 중에 자살률 1위를 당당히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날로 우울증 환자는 늘어나고 있고, 결국 '자살 카페' 까지 생겨가며 서로가 서로를 죽여주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어찌보면, '두기사이야기' 와도 연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정말 이들은 '죽지 못해 살고' 있다가, 한번 용기를 내서 죽어보려고 하지요. 결국 그들중 누군가는 '자신들이 바라않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 외에는 '자신들이 원하지 않던' 삶을 다시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다시 한번 '자신들이 원하는' 죽음을 얻기 위해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두 기사가 원했던 바로 그곳, 즉, 인간에게 있어서 최종적으로 쉴 수 있는 곳이 '죽음' 이라는 것에 대하여 어느정도 수긍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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