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유학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유학도서
김성기 외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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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 그리고 유교(儒敎). 이 두 단어는 (적어도 나에게는) 결코 언급하기 쉽지 않은 단어이다. 한문학을 공부하고, 유학·동양학을 배우는 나에게 있어서 감히 유학과 유교를 언급한다는 것은 내 분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 견강부회(牽强附會)를 하고 있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지난 3천여년간, ‘유학(儒學)’ 이라는 담론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설왕설래(說往說來)가 있었는가. ‘사서(四書)’ 라고 부르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의 안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내용 중에 단 한글자의 한자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설전(舌戰)이 오갔는가. 이런 내용에 대해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덧붙일 수가 있단 말인가.




 보통 유학에 관련된 책을 한번 살펴보자. 책 한권의 분량을 보면 다들 깜짝 깜짝 놀라신다. 하긴, 책 한권에 300~400페이지는 기본으로 잡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유학이다. 특히 논어(공자의 ‘어록’ 이라고 생각하면 간편하다.) 한 권에 대해 해석을 첨부해 놓은 책만해도 그 분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책들 중에서 유독 얇은(?) 페이지 수를 자랑하는 책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지금, 여기의 유학’ 이다.



                                                                                

 ‘지금, 여기의 유학’ 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1부에서 ‘유학의 현대적 의미’를, 2부에서는 ‘유학의 미래’를, 마지막으로 마침글에서는 ‘유학의 동아시아적 담론’을 풀어썼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학(儒學)’ 관련 서적을 자주 읽는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꽤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사실, 우리나라에 출판된 다양한 책들 중에서는 ‘유학의 현대적인 의미에 대한 재조명’을 한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거의 모든 책들이 ‘유교의 이상적 세계와, 유교관’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유교’ 라는 것에 대해 일반 독자층에게 어필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이 유교에 관련된 책들을 멀리하게 되었고, 때문에 유학이라는 것이 고루(孤陋)한 학문으로 남아버렸고, 유학은 이러한 관심에 대한 해결책이 없이 더더욱 선인(先人)들의 옛 글귀를 탐독하면서 그 속으로 현실도피를 해버려서, 더더욱 고루(固陋)한 학문이 되어가는 악순환을 반복해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학에 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유학의 현대적 의미’ 에 대한 고찰, 그리고 유교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담론적 요소들. 지금까지 나왔던 기존의 책과는 다르게, 좀더 유학에 대한 문턱을 낮추어서 일반 독자들을 끌어 앉으려고 한다는 점은 기존의 유학에 대한 고루한 이미지를 벗어나게 하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껴진다.




 일반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책(사실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읽히기 위한 책)이다 보니, 그 내용이 쉬울 수 밖에 없다. 기존의 유학적인 담론들, 즉 공자나, 맹자에 대한 -혹자는 듣기만 하여도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내용들에 대하여, 각각의 주제를 나누어서 한편의 글을 완성했다. 기존의 책들이라면, 지긋지긋한 경전을 싣고 그 뒤에 공자나, 맹자가 가졌던 사상이나 사유를 썼을 터인데,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읽기 쉽게를 표방한 책답게, 독자들이 유학에 대해 한번쯤 질문을 던져 보았을 만한 내용에 대하여, 표제어를 잡고, 그 다음에 내용을 써 내려갔다. 유학에서 여성을 비루한 존재로 보았다고 하는 내용에 대한 반박(?)글 형식과도 같이 작성된 ‘유교와 페미니즘’, 현대의 핵가족화 가운데서 다시 떠오르는 화두인 ‘효(孝)’ 에 대한 담론인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전통과 가족주의’ 등 유학에 대한 다양한 접근점을 독자에게 제시하여, 독자가 유학과 더욱 가까운 접촉점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문제점 역시 없는 것은 아니다. 워낙 방대한 내용을 독자에게 간단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제시된 글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워낙 갑갑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 사람의 이론이 나온 뒤에, 바로 다음 사람의 이론이 나오고, 또 이에 대하여 대립각을 세우는 이론이 있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의 전환이 너무 빠르다. 독자들의 숨조절을 할만한 적절한 포인트가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디게 느껴질 수가 있을 법하다.

 또한 인용문에 대한 글 역시 약간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사실 논어나 맹자는 각각의 편(篇)마다 핵심적인 주제들이 있다. 때문에 내용을 이해할 때에 있어서 한 편에 대한 내용을 전부 같이 이해하려고 하여야지, 한 단락에 나온 글귀만을 가지고 해석하려 한다면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 또한 그러한데, 일반 독자들이 그냥 한 구절이 나오는 것을 읽고서 그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물론 각각의 내용들 밑에는 집주(集註)라고 하여 주자가 달아놓은 해석이 있고, 또 이 밑에는 소주(疏註)라고 하여 이 내용에 대하여 그 외의 사람들이 집주에 대하여 해석을 해 놓은 것들이 있는데, 이러한 제반 내용을 완벽히 다 소화를 하려고 하면 아마 몇천페이지는 되는 책이 완성될 테니, 이 역시 문제가 되겠다. 내용을 중시하면 분량이, 분량을 줄이려면 내용이.. 끝없는 딜레마다.




 이 책에 대해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한국적’ 인 유학에 대한 길을 소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 유학의 맥과 흐름’ 이라는 파트에서 그 내용을 잠깐 언급하긴 하지만, 독자에게 한국에도 주체적인 유학이 있었다고 하는 점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였다. 사실, 유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최인호씨의 ‘유림’ 인데, 이 책이 오직 ‘한국적인 유학적 담론’ 으로 이루어 진 것에 비해보면 아쉬움이 배가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동(同) 출판사에서 ‘조선조 유학 사상사’ 라는 책을 펴 내어 한국적인 유학의 흐름과 그 정신(ex: 이기일원론, 이기이원론, 성호기발설....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으니, 좀더 본격적으로 한국 유학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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