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살 대학에 들어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진지해보이는 얼굴을 한 나에게  한 동아리 선배들이 다가왔다.

그때만 해도 아무생각없이 따라나선 그 동아리는 단순한 문학동아리는 아니었고 끈질기게도 졸업할때까지 교수님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선배들은 철학이론, 경제론, 이런 걸 가르치며  생각있는 대학생이라면 다 읽는다는 '말' 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갓 학교에 들어간 내가 뭘 알았을까? 아는게 없는 순진한 우리들에게 선배들은 세상이 어떻고 무슨 일이 있고 그러니 우리는 이런걸 알아야 한다고 다그치듯이 알려주었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충격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봄날 선배들을 따라 내려간 타대학의 대자보에서 난 충격적인 사진을 보고 말았다.

분신자살한 학생들의 사진이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또다른 일들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지만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저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은 생각에 그냥 책이나 보고 공부나 하면 되지 하는 생각만 잔뜩 머리속에 자리잡았던 그때

읽었던 책들, 보았던 사진들, 5.18 관련 서적들 이런 것으로 나의 궁금증을 일부 해소하며 하루하루 보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오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아마 그 변화많은 어수선하고 힘든 시기를 20대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 소용돌이속에 내가 있었다면 아마 그 현실을 외면한채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을수만은 없었을 테니 어찌보면 뒤늦게 태어난 것을

감사히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전작들을 모두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부는 읽고 일부는 부러 외면하며 읽지 않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내가 겪지 못했지만 시대의 암울함을 그녀만의 언어로 읽고 있자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읽고 나면 개운하지 않고 우울했다.

그래서 일부러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좋은 책으로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으로 세간에 오르내려도 읽지 않았다.

읽고 나서 그 여운때문에 한참 아무것도 못할까 두렵기도 했었기 때문에...

그러다 오랜만에 집어든 이 책은 뭔가 다름이 느껴졌다.

시대의 아픔이 들어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 세대들의 아픔과 사랑, 외면하지 못했던 시대의 어수선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그 치열한 아픔이 겉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일부러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짝 비껴선 듯한 문체로 그 아픔들을 죽 훑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시작부터 내게 전해왔다.

그래서 나도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연애소설을 읽는 체하며 읽을수 있었다.

 

8년만에 걸려온 명서의 전화,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것처럼 정윤에게 내가 그리고 갈까? 라고 묻는다.

아니, 내가 알아서 할께. 윤교수가 병원에 있다는 전화에 정윤은 이렇게 대답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

명서와 정윤은 대학 동기다. 이들이 그냥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하며 지냈다면 이렇게 서글픈 재회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윤미루와 이명서, 정윤, 윤교수 이 네사람의 만남은 대학초 강의실에서 이루어진다.

뭔지 모를 의문이 명서와 미루사이에 있다는 걸 알면서 정윤은 그들을 외면해지지 않아 늘 그들을 강의시간이든 학내에서든

살피고 다닌다.

미루또한 정윤을 그렇게 살피고 다님을 뒤늦게 알았고 그들은 왠지 모를 동질감에 어울려다닌다.

윤미루는 그들과 동갑내기이지만 다른 대학에 다니면서도 한집에서 살았던 명서를 따라 이대학에 청강생으로 강의를 들으러 오는데

항상 학생들이 잘 입지않는 꽃무늬 스커트를 입고 다녔다.

첫 대면은 화상으로 손을 잘 보이지 않는 미루의 치마와 명서와 늘 같이 다니는 미루를 지켜보는 정윤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책속에서는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현실이 치열하고 극적인 삶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안개속을 거닐듯 약간은 몽롱하게 보여진다.

최루탄 가스가 매캐하게 거리를 뒤덮고 학생이 다치고 군에서는 의문사가 일어나는 끔찍한 현실이 그냥 그 치부 그대로 보여지지는 않으니

약간은 그 치열함을 겪은 세대가 더 서글픔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엇다.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사고로 더이상 발레를 할수 없게된 미루의 언니가 운동권에 연루된 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행복을 찾는듯 했지만

언니의 그사람은 실종되고 미루의 언니는 이를 찾아다니다 결국 분신자살이라는 끔찍한 방법을 선택해 이세상을 등진다.

이를 말리려 달려들다 손에 화상을 입었던 미루는 눈앞에서 언니의 죽음을 봤음에도 언니와 언니의 그 사람을 찾아다닌다.

이미 오래전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걸 알면서도 찾는 것을 그만둘수가 없었던 미루,

사랑했던 사람을 잃는 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미루가 그들을 찾지 않는다는 건 그들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로서 찾아올 상실감이 너무도 힘들어서였을수도 있다.

자신때문에 언니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미루와 모든 것을 지켜봤던 명서는 정윤과 그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정윤은 엄마의 암선고를 듣고  쫓겨나듯 사촌언니가 있던 도시로 와서 고3을 지내고 대학을 가지만 아무와도 친해질수가 없었다.

엄마의 죽음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떠나보냈다는 그 마음때문에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겉돌다 휴학을 하고 돌아온 강의실에서 윤교수를 만나고 미루와 명서를 만난 정윤은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나누면서 뭔가를 찾게 된다.

거리에 나가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옳은 소리를 외치기도 하고 언니의 그 사람을 찾아다니고 자신들이 찾고자 했던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그들은 그렇게 청춘의 한자락을 보냈다.

자신의 어릴적 친구였던 단이를 의문사로 잃고 나서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정윤과 자신때문에 언니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가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 미루, 이런 과정속에서 결국 정윤과 명서는 서로를 생각하면서도 헤어질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느 시대에든 시대의 아픔을 비껴갈 방법은 있다.

맞서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비겁한 방법일수 있겠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바뀌지 않을 것이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니

사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음에 안들어도 그들에 대항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르짖지 않고 그냥 모른척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눈앞에서 일어난 그 모든 것을 모른척할수가 없어 어쩔수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모른척하고 아무일 없는 듯 살수 있을까?

어찌할수 없는 현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걸 알면서도 거리에 나서고  옳은 것을 찾는 용기는 그것밖에 할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을것 같던 세상이지만 어느새  사회는 조금씩 조금씩 올바른 부분이 늘어나고 따뜻한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지금도 음지와 양지가 있듯이 사회부조리가 판을 치고,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암울했던 그 시기를 지나고 목숨바쳐 바꾸려 했던 그 사회속에서 밥을 먹고 살지만 그들 어느 누구도 그 치열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 거다.

치열하게 사는 것이 곧 세상을 올바르게 바꿀 힘을 가지는 거라는 걸 이제는 알았을 그들의 삶이 더 윤택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