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독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책의 안내에 따라 4원소 즉, 공기, 흙, 불, 물의 세계를 여행하는 독특한 컨셉을 취한다. 독자는 모든 근심이나 걱정 따위를 잊고, 오롯이 책에게 기대 꿈을 꾸게 될 것이며 모험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한 계약도 서두에 맺는다. 책이 이끄는 대로 독서 중인 자신의 육체를 이탈하여, 얼마 되지 않는 상상력 한 줌과 부푼 기대를 챙겨 기꺼이 이 여행에 동행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 책이 인도한 곳은 공기의 세계다. 이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인식의 영역’을 상징한다. 독자는 사건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사고 흐름을 관찰하게 된다. 공기처럼 생각은 늘 존재하지만 쉽게 인식되지 않으며, 방향과 속도에 따라 삶의 태도를 바꾼다. 공기의 세계는 판단을 멈추고 사유를 자각하게 만드는 출발점으로,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생각에 있음을 일깨운다.
독자여, 그대는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세계와 우주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대 자신이라는 것을. (중략) 그대의 길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길이고, 그 길로 그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기 때문이다. p.63
두 번째, 흙의 세계에서는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과 감각의 영역으로 내려오는 공간이다. 공기의 세계가 인식과 사유를 다뤘다면, 흙의 세계는 터전, 안식처 같은 환경처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집중한다. 더불어 감정, 상상력, 직관, 의식, 영감의 정신적 오감, 나만의 무기에 대해서도 다룬다. 독자의 일상과 직접 연결된 상징들로 구성된 세계다. 추상적인 사고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형태를 갖는지를 보여주며, 생각만으로는 변화할 수 없고 행동과 선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세 번째, 불의 세계는 인생의 다양한 고난과 정면으로 맞서는 공간이다. 이곳의 불은 분투이자 열정의 상징으로, 투쟁에 대한 두려움과 개인적인 적, 제재와 조직의 압박, 질병과 불운, 죽음의 그림자까지를 한꺼번에 드러낸다. 무엇보다 가장 치열한 전장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불의 세계는 피할수록 커지는 고난을 응시하게 만들며, 맞서 싸우는 과정 속에서만 삶의 방향과 용기가 단련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설령 패한다 하더라도 그리 대수로울 것이 없다는 편한 마음을 가지라. 만에 하나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되, 결투의 미학은 포기하지 말라. 지더라도 멋있게 지기를 소망하라. 그대에게 승리를 안겨 줄 수 있는 것은 그대의 무기가 아니다. 적을 꿰뚫어 보는 그대의 능력이다. p. 100
보라, 패자의 모습을. 그대가 예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무릇 세상 일이 뜻대로 안 돌아가면 누구나 저렇게 꼬꾸라져 땅에 입 맞출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에게 몸을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라. 멋있게 싸워 준 것에 대해서, 그로 인하여 얻은 깨우침에 대하여. 언제나 그대의 적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없다면 그대가 발전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p.102
마지막, 물의 세계는 투쟁 이후에 도달하는 회복과 흐름의 공간이다. 지친 정신을 씻고 다시 흘러가게 만드는 단계다. 물은 고정되지 않고 형태를 바꾸며, 기억과 감정, 관계를 부드럽게 연결한다. 이곳에서 독자는 붙잡아 온 집착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힘을 배운다. 물의 세계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삶의 리듬에 몸을 맡길 때 비로소 균형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은 정신의 비상을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어느새 스며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