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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네 편의 이야기가 있다. 계단 앞에 선 기분이다.
첫 계단을 오르다. "아직 두근거림이 없다."
'이 여자, 지나치게 엄살을 떠는군. 조용한 삶을 원한다면 다른 길이 있었을 텐데. 그녀에게 남편은 재앙이라기 보다는 삶에 끼어든 이물질 수준으로 보여지는데.'
둘째 계단, "이마에 땀방울이 조금씩....."
역시 이물질 이야기, 공포소설로 약간 방향 선회. 일상을 뚫고 들어온 개와 여자. 나를 무너뜨리는 것들. 그러나 그 남자의 울부짖음은 "그냥 비겁한 변명입니다."
세 번째 계단, "어라, 어느새 손에 땀이...."
신비한 여자를 손에 넣고 싶은 남자들의 환타지. 그러나 이 소설, 여자가 썼다는 걸 상기하자. "보기만 하세요. 그러나 달콤한 파멸을 원한다면 만져봐도 좋습니다"
네 번째 계단, "아아, 숨이 가빠진다."
세상에 무심한 그녀, 이성에 연결된 회로가 끊긴 그녀, 루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자"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그녀, 그녀가 그 통통한 손을 들어 당신에게 손짓한다면? 그 고무공같이 탄력있는 몸으로 당신에게 통통 튀어온다면? " 나락으로 함께 떨어질 건가요? 지옥이라도 함께 갈 수 있나요? 그녀의 이상한 정신세계가 공포스럽나요? 서양화에서 막 빠져나온 듯 뽀얗게 빛나는 그녀와 함께라면 공포도 놀이가 되지 않을까요? "
삶에 끼어든 이물질이 곧 재앙 아닌가? 사소한 시작이었지만 우리들을 파멸로 이끄는 어떤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빛에 끌리는 벌레처럼 파멸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약점일까? 강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