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기다 - 한고조 유방의 성공 전략
한의상 지음 / 경향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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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을 존중한 사람, 유방

󰡔사람이 무기다󰡕 독후감을 구상하기 시작한 날 아침, 신문 사설이 있는 면의 왼쪽 위아래에 실린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다. 위에 있는 칼럼의 제목은 청소, 시간당 400원짜리 공유제. 자본주의의 태생을 영국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은 식민주의라고 했단다. 자본주의 성장의 본질은 약탈이다. 필자는 대학교 구내 여성 청소원들의 올해 최저임금 시급 440원 인상안을 몇 개 대학이 거부했다면서 그 금액이 약탈당한 공유재처럼 느껴진다고 썼다. 그 아래에 있는 칼럼은 0000 구인공고문을 보다가라고 제목을 달았다. 어떤 유튜버가 낸 영상 편집자 구인공고문를 소개하고 있다. 공고문은 급여 수준, 요구되는 직무능력과 작업 조건, 지원서 심사에 걸리는 시간과 처리 방법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사용자의 책임과 노동자의 성과를 구분했단다. 공고문을 낸 유튜버가 과거에 레스토랑을 열었던 적이 있었는데, 직원들이 점심 먹을 시간이 부족하자 1시간 연장했다. 한 달 1,000만 원 수익보다 직원의 퇴사가 더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단다. 손님은 음식 맛과 함께 직원의 친절한 응대에 감동받았다. 칼럼의 필자는 사용자가 존중을 보내고 비전을 보여주면 노동자는 적극적인 일 태도로 보답한다며 글을 맺었다.

󰡔사람이 무기다󰡕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완벽하게 변해버린 세상에 용감하게 맞서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무기라고 쓰지 않았으니, 사람 외에 또 다른 무기도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기술, , 부동산 등도 무기지만 사람도 무기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여러 무기 중에서 으뜸은 사람이겠다. 위기를 극복하고 자기를 지키는 일을 목적이라고 하고 이를 달성하면 성공한다고 하자. ‘무기는 일의 성공을 위한 수단이다. ‘목적그 자체는 아니다. 사람은 성공을 위한 수단이다. 사람 자체를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따르면,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보는 듯하다. 그런데 모든 존재는 어떤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 전지전능한 유일신도 내 마음의 평안과 어떤 기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문제는 그런 수단을 얼마나 존중하고 수단으로서 역할을 한 데 대해 얼마나 합당한 보상과 대가를 지불했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이 무기다저자 한의상은 제2장 제2절 제목인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천하를 얻은 사람은 없다.”라는 한마디 말로 그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유방이야말로 사람 귀한 줄 알았기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2. 특별하지 않은 것을 실천해서 특별한 유방

마을 이장으로 시작해서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고,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최고 경영인이 된다면 그 사람은 한고조 유방만큼이나 보통 사람은 아니다.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특별한 것 대부분은 모두에게 익숙한 것으로 특별하지 않다. 다만, 실행에 옮기면서 몸과 마음에 지니기 어려울 뿐이다. 모두가 늘 강조하는 것이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하기는 힘든 일을 유방 같은 사람이 했고, 누구나 지니기 어려운 태도를 유방이 지니고 있어서 특별하다. 이를테면, 사람을 귀히 여기고 일보다 사람을 먼저 보고 융통성과 유연성 있게 일을 처리하되 원칙을 잊지 않아야 한다거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남 탓하지 않고 사람을 품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와 같은 일상의 지침을 항우가 몰랐을 리 없다. 보통 사람도 살면서 한 번 이상은 듣거나 익혔을 삶의 지혜이고 처세술이나 용인술이다. 이런 점에서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없기에 그것을 내면화, 체화하고 실행한 유방이 특별하다.

자기계발서에 주로 나오는 주인공은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이다. 패현의 사수정 정장(요즘 마을 이장과 비슷한 직책인 것 같다.)이었던 유방이 한나라를 세웠다. 집안이 풍족했다지만 신분이 초라했던 유방이야말로 개천에서 난 용중에서 으뜸이다. 한의상이 󰡔사람이 무기다󰡕에서 그런 유방을 개천이 아닌 큰 강을 배경으로 둔 항우와 비교하니, 유방의 특별함은 더욱 도드라진다. 항우는 초나라 명문가 자손이다. 조부가 초나라 군 최고 수뇌부였고, 숙부도 지방의 군벌이자 유지였다. 2m가 넘는 키에 듬직한 체구의 항우는 최상의 사회적, 자연적 조건을 지녔다. 이런 조건을 타고난 사람들 대부분은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키운다. 그런 항우가 유방과의 경쟁에서 졌다. 그 이유가 궁금한 사람도 여럿이었겠다. 그 중에서 󰡔사람의 무기다󰡕의 저자인 한의상이 그 이유를 정리했으니 그 또한 특별한 사람이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나 결점을 솔직하게 진심을 다해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는 일은 보통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적을 이루거나 대의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는 일도 어렵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존중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도자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특별한 일이다. 이를 해낸 이가 유방이고 하지 못한 이가 항우다. 유방이 특별한 이유다. 유방은 완벽의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빈틈의 미학을 알았다. 유방은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을 영입했다. 소하, 장량, 한신 같은 이들이다. 이에 비해 항우는 범증 외의 특별한 인물이 없다. 성공하는 리더는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보완해 줄 실력 있는 사람을 중용한다. 항우가 홀로 강해지려할 때 유방은 강한 우리를 만들었다. 한의상에 따르면, 리더란 스스로 완벽한 인간이라고 자만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내게 원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것, 이것을 아는 사람이 리더다. 바람직한 리더십도 리더 홀로 완성한 결과물이 아닌, 수많은 사람이 함께 채워가면서 발전과 진화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완벽한 강자는 약자와 공존할 수 없지만, 발전해 나가는 승자는 패자와 공존할 수 있고, 그 패자의 도움을 받아 더 큰 승리와 성과를 낼 수 있다. 유방에게 사람 존중을 배운 한의상다운 생각이다.

유연하게 판단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한의상이 버스터미널 사무실에 가서 서울행 버스표를 구한 일이나 회사 직원을 위해 응급실에 가서 대리 처방이라는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약을 구해온 일 모두 반칙 행위다. 여타의 나쁜 반칙과 다른 점은 사람 존중이 함께했다는 데 있다. 문제가 꼬이고 복잡해지면서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논의의 처음으로 되돌아가자고 한다. 그 처음이란 곧 원칙이다. 연원, 기준, 본질, 목적, 지향점 등의 성격을 지닌 원칙은 모든 일의 출발점이다. 언뜻 봐서는 원칙을 어긴 변칙이고 반칙 같지만, 유방의 행위는 결국 원칙을 지킨 일이다. 옹치에게 배신당한 유방이 장량과 함께 항우의 지원을 받으러 간 일이나 항우와 광무산에서 대치하면서 그에게 아버지를 삶거든 국물 한 사발 달라며 태연한 척 굴었던 일 모두 실상은 생존이 최우선 가치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 등과 같은 원칙을 지키기 위한 변칙이자 반칙일 뿐이다. 이를 저자 한의상은 본질에 기반한 원칙이 핵심이다.”라고 정리한다. 그 본질이란 사람 존중이고, 이 원칙에 유방은 충실했다.

나는 따르고 싶은 리더가 되는 데 믿는다는 말보다 힘센 말은 없다.”라고 제2장 제3절의 제목에 따르고 싶은 리더가 되는 데를 보태어 적었다. 리더가 부하에게 일을 맡길 때 믿음으로써 맡기면 부하는 스스로 잘 할 수 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강해지고 조직도 튼튼해진다. 리더가 부하를 믿지 못하면 부하는 리더에게 의존한다. ‘따르게 만드는 리더가 있는 조직은 부실해진다. 조직 운영 원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다 아는 원리지만, 누구나 하지 못한다. 유방은 따르고 싶은 리더였다. 항우는 따르게 만드는 리더였다. 남다른 괴력과 세력으로 자신을 따르게 만들었다. ‘믿음존중은 함께 다닌다. 한의상은 꽉 쥔 주먹이 아니라 누구라도 내게 다가와 맞잡을 수 있게 쫙 편 손바닥, 아무나 올라와 한바탕 뛰어놀 수 있도록 아무런 사심 없이 내어준 손바닥, 이와 같은 유방의 비어 있는 손바닥에 진짜 권력이 있다고 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권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어떤 폭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권력은 가장 막강하고 가장 안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이른바 흙수저들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 유방이다. 항우는 주변 환경이 좋다. 유방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 항우와 같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성과를 내고 성공을 한다. 소위 금수저급 인생이 그렇다. 󰡔사람이 무기다󰡕의 주인공 항우는 흙수저급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유방처럼 하면 항우와 같은 이와 경쟁을 해서 이길 수도 있다고. 확실히 항우와 같은 이가 세상에서는 성공해서 잘 산다. 유방과 같은 이는 적다. 대개의 자기계발서는 열악한 조건에 있는 사람을 향해 희망 고문을 가한다. 긍정적 사고와 태도를 강조하면서 할 수 있다를 주문처럼 외게 한다. 누구든 잘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여러 마음가짐과 태도를 제시한다. 애초에 그런 것을 지니기 힘든 처지인데도, 실천하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 부족 탓이라 한다. 흙수저급 사람은 다시 주저앉는다. 󰡔사람이 무기다󰡕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자기계발서일 수 있다. 그런데 항우와 같은 금수저급 인물과 비교하면서 유방의 성과와 성공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희망 지원이 된다. 유연성, 융통성, 정직성 등은 유방처럼 넓은 지역을 하나의 큰 나라로 통일하는 큰 인물 되기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일상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평범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평범한 삶의 지혜다. 환경이 불우하고 열악할 때라도 갖추고 지켜야 할 기본적 품성 또는 자세로 새겨둘 만하다.

 

3. 잘못한 행동과 실패 후의 유방

한의상은 비굴함도 유용한 무기가 된다면서, “얼마면 무릎을 꿇으시겠습니까?”라고 묻고는 자신은 10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무릎을 꿇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이 외의 가치를 무조건 버리자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진정으로 절실히 원하는 것을 앞에 둘 때에는 그런 가치를 버리고 집중과 몰입을 해야 한단다. 개인 차원의 체면과 자존심은 감춰두고 인내심과 참을성을 발휘하고, ‘융통성과 적응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중학교 교사인 친구가 있다. 자초한 잘못으로 징계를 받고 근신 중이다. 작년에 어떤 학생의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어머니는 자식이 학교폭력에 연루되어 학교폭력심사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에 왔다. 자기 자식이 내 친구에게 꾸중을 들으면서 구타를 당해 기분이 상한 상태였는데 어떤 동급생이 기분 나쁘게 말을 해서 그의 얼굴을 때렸단다. 교사가 원인을 제공했지만, 자식에게 별도로 사과만 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다. 교사인 내 친구의 말에 따르면 상황은 이렇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여느 때와 같이 교과서를 챙겨들고 교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에서 두 명의 학생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까이에 등을 보이고 있는 학생의 등을 손바닥으로 밀 듯 치면서 수업 종 울렸어 임마. 어서 들어가!”라고 호통을 쳤다. 두어 발자국 밀려난 그 학생이 뒤돌아보면서 내 친구인 교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단다. “이놈이 어디서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눈을 위아래로 떠.”라고 말하면서 학생의 얼굴을 손으로 밀쳤다. 손바닥으로 밀듯 등을 친 행위, 손으로 얼굴을 밀어낸 행위 모두 폭행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했는데 교사가 뺨을 때려서 기분이 나빠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는 자식의 말을 듣고 무척 속상했단다. 1학년 때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았는데 3학년 초에 다시 징계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기가 죽어 있는 자식에게 사과하고 달래만 주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다. 내 친구는 폭행이 아니고 교사의 정당한 학교생활지도였다고 설명하자, 증거가 있냐면서 경찰서에 가서 정식으로 고소할 수도 있다는 그 어머니의 말에 근신 중이었던 내 친구는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여러 사람의 입방아에 다시 오르내릴까 두려웠단다.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인정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지금 만나서 사과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무릎까지 꿇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머니는 당황해 하며 아무 말도 못했다. 내 친구는 곧장 교실에 가서 수업 중인 학생을 불러내, “내가 잘못했다.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구나.”라고 사과했다. 친구는 수업해야 할 교실로 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하지만 굳은 얼굴로 교과서를 펼치고 수업을 시작했단다.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친구는 계속 학교에 출근했고 다섯 식구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내 친구는 유방과 한신처럼 특별하고 거창한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생계유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잘못을 빠르게 인정했고 곤경에서 벗어났다. 자존심만 내세웠다면, 내 친구가 책임져야 할 가족의 생계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시간은 순간이다, 자기를 굽히지 않았다면 학교폭력에 연루된 자식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그 어머니의 예상 가능한 행동에 그 친구는 더 큰 곤란을 겪었고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을 테다. 학교를 떠나야 할 정도의 비위는 아니지만, 내 친구의 성정을 미루어 짐작하면, 스스로 그만두었을 테다.

어떤 실패를 하시겠습니까?”라는 저자의 질문을 잘못한 행동을 했거나 실패한 후에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라고 고쳐보았다. 한의상에 따르면, 유방은 패배한 현실을 빠르게 인정했다. 그는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다. 패배로부터 배우고자 했다. 이에 반해 항우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불같이 화를 냈다. 부하에게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지 트집을 잡으려는 듯 따졌으며, 절망하고 포기하려 했다. 위에 쓴 내 친구가 힘든 상황을 피하기 위해 비굴함을 무릅쓴 데 그쳤다면, 성숙해지기는커녕 그런 처지에 다시 빠질 수 있다. 아무리 교육적인 의도에 의한 행위라 해도 폭행이 분명하므로 내 친구는 잘못된 행동을 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리적 폭력으로 오해할 수 있는 신체 접촉을 통한 지도 방법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내 친구는 큰소리로 호통을 쳐서 가르치려하기보다는 학생의 입장을 배려하고 행동의 변화를 기다리는 자세를 익혀야 한다. 모든 비굴함이 그냥 무기가 되는 건 아니다.

 

4. 함께하기를 실천한 유방

󰡔사람이 무기다󰡕의 각 장과 절 제목 대부분이 그 자체로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 ‘때로는 반칙도 규칙이다’, ‘권력은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에서 나온다’, ‘한 명의 배신자로 백 명의 심복을 만들다처럼 ?’라는 반문과 함께 해당 절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지는 문장도 있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자신의 시간을 낚는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믿지 않는다’, ‘사람을 얻는 일이 우선이다’, ‘‘믿는다라는 말보다 더 힘센 말은 없다’, ‘작은 사람은 일을 먼저 보고, 큰 사람은 사람을 먼저 본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실체에 손을 댄다와 같이 내 마음속으로 훅 들어오는 제목도 있다. 이 모두를 하나로 묶으면 사람 존중이다.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사람보다 더 강한 것도 없으며, 사람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고 저자는 꾹꾹 눌러 썼다.

여기에 하나 더 얹을 것은 함께하기이다. ‘황제는 혼자 마차를 타지 않는다󰡔사람이 무기다󰡕의 마지막 절 제목이다. 여러 번 읽고서야 비로소 황제리더이고, 리더 혼자가 아닌 조직 구성원 모두가 목표에 닿기 위한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저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도시락집 운영 계획을 밝힌다. 그에게 마차도시락집이고 그 마차에 탈 사람은 사회적 책무를 이행할 여러 사람이다. 바람직한 리더십은 리더 혼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성공하는 조직을 만드는 리더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랫폼은 누구나 마음껏 발을 내딛고 원하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발판 구실을 한다. 플랫폼과 같은 리더가 유방이었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존중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은 󰡔사람만이 희망이다󰡕이다. 어떤 정부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펼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강조한다는 것은 강조하는 그 무엇이 무척 어려운 것임을 반증한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강조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이 무기다󰡕라는 제목에는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사람이 아닌 다른 것, 예를 들어, , 금품, 부동산, 동산 등을 무기로 삼아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추세가 대세다. 역사는 이를 성공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이름을 더럽힐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죽은 왕언장의 말대로, 성공으로 이름을 남기고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사람을 무기로 여기며,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세상을 산 유방 같은 사람이다.

시급 400, 8시간치 3,200, 30일치 96,000원이다. 청소노동자가 100명인 대학이 시급을 400원 올리면, 이 대학은 매달 9,600,000, 연간 일억 일천오백이십만 원을 청소노동자 임금으로 더 지출하게 된다. 청소노동자 한 명의 한 달 급여 186만 원이 1956천 원이 된다. 일억 원이 조금 넘은 돈으로 100명이 일 년 내내 좀 나은 생활을 하고 대학 구석구석이 더 깨끗해지면 좋은 일이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하는 공간이 한의상이 구상하고 있는 도시락집이겠다. 전라도 어떤 면에 소고기 파는 식당이 있다. 오전 10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1, 2층 식당에 사람이 연일 가득하다. 소고기와 육회 비빔밥 외의 모든 반찬을 손님이 요구하면 무제한으로 종업원이 직접 가져다준다. 돈을 받지 않는 인기 메뉴인 선짓국이 동나면 두부찌개로 바뀌어 나온다. 호출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울리지만, 어떤 종업원도 굳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10년 넘게 다니는 단골손님은 종업원 여럿이 10년 넘도록 계속 일하는 모습을 본다. 시급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가게보다 더 받고, 대기줄이 길게 서는 휴일 노동 끝에는 상여금을 추가로 받는단다. 돈의 힘이라고 하는데, 그에 앞서 식당 주인의 사람 존중 마음이 있다.

나는 자본주의가 약탈을 통해 성장하는 체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는 자본주의가 지속하려면 자본주의를 마비시키고 있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경향신문> 20221019일자 칼럼에서 주장한다. 상위 1%가 한국 전체 자산의 25.4%, 독일은 35%, 미국은 40%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일과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조언은 냉소적이고 폭력적이라고 큰소리로 꾸짖는 것 같다. 유방의 성공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구성원 모두가 도시락집에 모여 사람 존중의 마음가짐과 자세로 불평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데 힘을 쏟는다면 말이다. 빈부의 격차는 더 커지고 기후 위기는 위험 수준에 다다른 것 같은 이 세상에, 유방 같은 이들이 더 늦기 전에 함께 모여 세상을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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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95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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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신부

포와, 낯선 단어를 눈으로만 읽다가 메모장에 적으려다 못 적었다. 다시 들여다보고 새긴 후에 썼다. 포와. 여관방에서 다섯 여자가 절망 가득한 울음 우는 대목을 읽다가 멈췄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삶을 실감나게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알아 놀랐다. 조선인의 이주 노동 역사가 무척 오래 되었다는 사실보다 사진신부라는 단어를 처음 알아 놀랐다. 제주의 어떤 미술관에서 정연두 작가가 사진신부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는 기사를 접했다.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지 않았다면 무심코 넘겼을 기사였다.

광복절 77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아내의 이름>을 보았다.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을 비롯한 세 명의 여성 모두 남편의 조력자 또는 내조자로서의 역할이 아닌 독자적인 독립 운동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독립투사의 아내스스로 독립투사가 되길 선택한 여성이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주인공 버들 역시 조선의 독립을 바란 투사다. 사진신부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1910년 열네 살에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간 김공도 선생에게 112년이 지난 20222월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는 소식이 뜬다. 소설 속 버들이었을까. 홍주, 송화였을까? 독립단 후원금으로 월급 전부를 내놓는 태완을 향해 버들이 구두 가게 자리 잡은 후에도 늦지 않다고 하자, 태완은 나 살 만해질 때까지 조국 독립을 미루자는 말과 같다고 말한다. 상해임시정부 후원금의 3분의 2를 하와이 이주노동자들이 냈다고 한다.

버들의 이주는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용기라면 그것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굶주림과 비참한 여성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열망과 교육열이었을까? 내가 지금 삶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면 나는 어디로 떠날 수 있을까? 내 자식이 이 땅에 발 딛고 살 수 없다면 나는 내 자식을 어디로 떠나보낼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떠날 수 있었을까? 떠나보낼 수 있을까? 버들이 세탁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육체노동을 해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런 질문을 내게 마구 던졌다.

 

2. 깻잎, 이주노동자

매트리스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던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 휴대전화 벨이 울려서 받으니 도통 못 알아듣는 말이 들려온다. 가만히 다시 들어보니 택배 물건을 현관 앞에 놓고 간다는 말이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이주 여성 택배 노동자였다.

우춘희가 이주노동자들과 1,500일을 함께한 후에 쓴 󰡔깻잎 투쟁기󰡕에 캄보디아인 쿤티에, 아룬니가 나온다. 이들이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는다면 자기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겠다.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비닐하우스 작업장에서 소변을 보러 화장실 한번 가려면 30분 내외가 걸리니까 비닐하우스 내에서 해결하는 장면을 떠올리자니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21세기이고 살고 있는 곳은 문명국가인지 의문이 든다.

쿤티에가 하루에 따야 할 깻잎은 15상자다. 한 상자에 10개짜리 깻잎 묶음 100개가 들어가는데 하루 15,000장이다. 1초에 하나씩 숫자를 세는 데만 꼬박 4시간이 넘게 걸린단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일해야 겨우 채울 수 있다. 그냥 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순을 따서 따로 분류해야 한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비닐하우스에서는 사람이 아닌 기계이어야 한다. 할당량에 미달하면 한 상자에 4,000원씩 떼인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현장에서는 법보다 월급을 주는 사업주의 말이 더 힘이 세다.

비닐하우스 속 낡은 컨테이너에서 살면서 한 달에 수십만 원씩 숙소비로 떼이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든 8시간분만 돈을 받고 평균 2~3시간씩 무료 노동이 강요되는 현실은 버들, 홍주, 송화, 태완, 조덕삼, 박석보가 겪었던 하와이 사탕수수밭, 빨래터와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열악하다. 버들과 홍주는 구둣가게, 세탁소, 농장 등을 경영하고 임대업도 했다. 현재 한국에 있는 쿤티에, 이룬니와 같은 처지의 이주노동자 없이 우리는 깻잎, 토마토, 애호박을 싼값에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단다. 달콤한 설탕 맛에 빠진 유럽인의 식탁을 위해 노예제 폐지 후 부족해진 사탕수수 재배 노동력을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난 7,300여 명의 조선인이 대신했다. 20여 년 뒤 그들과 결혼하기 위해 남편 될 사람의 사진 한 장 들고 나라를 잃은 버들과 같은 어린 여성의 삶이 오늘날 하와이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더욱 혹독해진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중에서 버들과 태완이 코코헤드에 카네이션 농장을 경영하는 것처럼 자기 땅을 일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이 가능한 현실도 아니다.

 

3. 알로하! 우리의 이주노동자

태양빛이 강렬하다는 건 뜨겁다는 뜻이다.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불에 덴 후에야 비로소 느껴지는 쓰린 통증 같은 기억을 남겼다. 물론 햇볕의 따스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세세한 이야기를 건드리면 아프다. 조선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았던 무당의 딸 송화, 조선에서 첩으로 살기를 거부하며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로즈 이모(홍주), 생모가 누구인지 알게 된 펄(진주), 버들을 환대하는 시아버지 등의 모습에서 온기와 고통을 번갈아 느낄 수 있었다. 자외선을 잔뜩 쪼이는 강렬한 태양과 따스한 해, 이 둘 모두 있는 소설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알로하란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란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한다. 꽃목걸이 레이는 누군가를 두 팔로 안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랑을 뜻한다고 한다. 카네이션으로 만든 레이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여러 먹을거리를 수확하는 이주노동자의 목에 걸리기를 바란다. 이들의 이야기에 우리가 부끄럽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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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 입문 -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
문규민 지음 / 두번째테제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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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 입문󰡕을 읽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꿈꾸는 고기덩어리인 인간처럼 인공지능 기계 덩어리도 자각과 사유 능력을 지닐 수 있는지, 30여 년 전에 대학 신입생 때 처음 접한 유물론과 다르게 현재 읽고 있는 신유물론의 새로움이 무엇인지 내내 고민하고 있다. 4, 제인 베넷을 소개하면서 저자가 그렇다면 가장 비유기적이고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 예컨대 쇳덩어리 안에도 하나의 생명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에 당황하고 황당해 하면서 책을 덮고 쉬었다. 아침에 읽다만 신문을 펼쳤다. 어떤 칼럼의 필자가 초보적인 비건 실천 결심의 이유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겐 각각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을 읽자마자 나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물질로 바꿔 모든 물질에겐 각각의 이야기가 있다.”라고 기록장에 적었다.

이 책의 들어가며에 뇌공학 교수 정재승이 인간의 고귀한 정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1.4kg의 뇌에서 비롯된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 말이 나온다. 정재승은 우리는 정신이라는 위대한 속성을 탄생시킬 만큼 물질이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물질은 정신이 위대한 만큼 더불어 위대하며, 이 우주는 물질을 통해 정신이라는 물질을 이해하는 토대를 비로소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썼다. 인간의 뇌에 있는 1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이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며 나타나는 현상이 정신이라면, 물질세계의 그런 창발성이 물질의 가장 놀라운 속성이라고 정재승은 주장한다. 정재승이 신유물론자였나? 예전에 나는 관념론자의 반론을 염두에 두고, 유물론은 정신에 대한 물질의 선차성을 주장한 것()이지 정신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 이와 유사하게 󰡔신유물론 입문󰡕의 저자 임규민도 물질에 이미 그 자체로 인간이 따라잡기 힘든 심오함, , 역량이 내재하고 있다고 해서 신유물론이 물질을 무한한 생기로 충만해 있다거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신비로운 존재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유물론은 물질을 되찾은 유물론이고 물질에서 출발하는 유물론이다. 인간 활동이나 담론적 구성을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역사유물론, 사회구성주의를 통과, 관통, 즉 횡단한다. 어떤 것과도 쉽사리 절연하지 않고 함부로 대립하지 않는다. 횡단성은 이분법적 범주의 불안정성과 우연성을 폭로하면서 근본적인 의미 대신에 통계적인 물질의 성질을 드러낸다. 미리 주어진 초월적 본질을 부정하면서 총체성 없는 통일성종합 없는 구성을 추구한다. 신유물론은 물질세계의 전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신유물론의 새로운 물질성이란 물질의 능동성, 역량을 뜻하고 신유물론의 횡단성이란 물질 간 경계를 돌파하는 운동이자 그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구성물이다. AI라는 물질은 인간과 기계 간의 경계를 돌파하는 운동성을 지닌 존재이자 이것의 결과물이다. 동시에 횡단성이 가로질러진 것들 사이에 걸쳐 있음양쪽에 걸쳐 있지만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AI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걸쳐 있으면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물질이다. 이런 인식에 이분법적 범주는 자리할 수 없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저자 룰루 밀러가 살폈던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시도한 자연의 질서화, 범주화가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신유물론 입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질은 물질과 의미, 자연과 문화도 가로지른다. 물질은 자연에만 속하지 않으며 문화에만 속하지도 않는다. 물질은 자연을 벗어나 문화로 나아가고 반대로 문화를 벗어나 자연으로 나아간다. 자연과 문화를 횡단하는 자연문화의 하나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핵에너지, , 장애인의 보조기구, 동물의 가축화 과정 모두 자연과 문화 간 횡단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신유물론의 존재론은 교차성 존재론으로 이어진다. 물질은 항상 기호가-되는-중인 물질이고, 기호는 언제나 물질이-되는-중인 기호다. 김정희원의 󰡔공정 이후의 세계󰡕에서 그는 교차성의 정치를 주장한다. 젠더, 계급, 인종, 장애 유무, 성적 지향, 나이, 종교, 언어, 민족, 국적, 학력, 출신 지역 등과 같은 모든 범주가 다르게 겹쳐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억압, 불평등, 차별의 양태가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범주들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만들어낸다. 교차성 정치이론은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가 자신들이 겪어온 특수한 형태의 차별과 불평등에 주목하면서 만들어졌다. 신유물론이 정치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이렇게 신유물론에서 발견한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은 현실 정치의 변화무쌍함으로 나타나고 정치철학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나는 이전의 유물론이 물질적 토대를 근거로 현실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내용을 읽고 느낀 명쾌함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신유물론이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지만 비인간, 탈인간적 경향, 인간중심적이고 인간주의적 사유와 단절이 공통점이라고 정리한다. 신유물론에서 물질은 물질과 기호 사이, 자연과 문화 사이, 인간과 비인간 사이를 넘나들며 이들 사이의 문턱을 낮춘다. 동시에 단일한 범주로 드러나지도 않고 이분법적 범주로 나뉘지도 않으며,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언제나 둘 사이의 하나이며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나, 그리고 하나가 되지 않는 하나이다. “비물질적인 것들이 물질적인 것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신유물론은 명백한 유물론이다. “꿈꾸는 고기는 자연산도 합성도 아니지만, 동시에 자연산이면서 합성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모순율을 거리낌 없이 주장할 정도로 저자의 뒷배에는 인도불교학이 있다는 것을 속표지 날개에 적힌 저자 이력을 보고 알았다. 저자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로봇은 그저 인공적이지만은 않은 인공물, 자연물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인공물이라는 기묘한 지위를 가진다.”라고 말한다. 이는 배중률을 위반하는 주장이다. 물질은 불온한 것이 분명하다.

물질의 잠재성과 현실성, 칼의 절단 능력은 실재적이지만 잠재적이다. AI에게 주체적인 사유능력은 실재적이지만 아직 현실적이지 않은 잠재적인 것, 곧 잠재성일지 모른다. 신유물론에서 발견한 새로운 물질성이란 능동적이고 생기 있는 성질이다. 창조적이며 스스로 힘써 행한다. 인간의 의도나 계산, 예측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뭔가를 행할 수 있는 행위성을 지닌다. 이런 잠재성이나 역량을 마누엘 데란다는 형태형성적 힘이라 하고 제인 베넷은 생기적 물질성, 로지 브라이도티는 조에(zoe: 인간-아닌 생기적 힘), 캐런 바라드는 행위성이나 역량 발휘를 넘어 행위성이라 한다.

죄가 나쁘지 죄인은 나쁘지 않다.”라는 말처럼 범법 행위와 범법자를 분리하려는 시도는 분리불가능성이라는 물질의 수행성을 위반한다. AIAI의 행위를 분리하려는 시도도 물질의 수행성을 위반하는 관점이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물질이 무력하지 않으며 나름의 행위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나 물질이 지닌 능동성과 활기는 물질이 인간의 예측과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하게 한다. AI도 그러하다. 고깃덩어리가 꿈을 꿀 수 있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기계도 꿈을 꿀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없다. 그러나 고깃덩어리가 수억 년을 거치며 내재적 능력을 발휘하여 자아를 싹틔우고 자각하고 사유 능력을 획득한 것처럼 캐런 버라드의 물의를 빚는 물질로서의 기계 덩어리도 그런 능력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인간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잠재성 측면에서 존재한다.

1995년 어느 날 나는 조간신문 <해외토픽>에서 10년 후에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인간의 뇌에 칩으로 심어져 더 이상 영어 사전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매일 영어신문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 200개씩을 단어장에 적어가며 힘겹게 외워대던 때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99년부터 2003년에 걸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 세 편 중에서 조종법을 무선으로 전송받아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장면이 가장 깊게 각인되어 있다. 이 둘 모두 허구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신유물론 입문󰡕에서 신경모방칩(neuromorphic)’을 심은 ‘TrueNorth’를 접했다. 인공지능에 기계로 된 몸을 입혀 주었더니 자아가 싹을 틔웠다고 한다. 󰡔신유물론 입문󰡕 5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로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 휴먼은 인간의 신체가 자연-문화 연속체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새로운 자연-문화 연속체로 재구성하는 기계-되기의 결과이다. 보편화된 사이보그와 인간 신체의 기술적 산물화가 포스트 휴먼의 특징이다. 여기서 인간과 기계 간의 대립과 이원론은 해체되고, 그 대립과 이원론을 통해 존립한 인간 존엄성은 해체되어 존엄의 대상은 모든 물질로 확장된다.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기술로 매개된 신체는 사이보그다. 기계-되기란 인간의 신체가 자연-문화 연속체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새로운 자연-문화 연속체로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AI(인공지능)가 연구된 지 60년이 넘었다. 정재승의 정의에 따라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지능적 시스템인 인공지능이 상용화되었다고 해서 일자리는 줄지 않았다 한다. 제조업에서는 줄었지만, 서비스업의 일자리는 늘었다. 다양한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감정 파악, 그 사람에 대한 공감, 행동 대체에 관한 직관과 추론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능력, 창의적인 대응이 필수적인데, 이를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지에 관한 예측 판단은 엇갈린다. 정재승은 20163월 이세돌과 알파고 간의 두 번째 바둑 대국을 수십 년 동안 인간이 두었던 바둑으로 학습했던 알파고가 그것을 뛰어 넘는 자신만의 전략들을 추론해내었다.”라고 평가했다. 알파고는 직관과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배우는 능력인 추론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미래에는 AI도 인간처럼 언젠가는 양심이란 것을 지닐 수 있을까?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마도 도덕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부끄럼일 것 같다. 아담 스미스가 도덕적 행위의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 부끄럼’, 맹자가 도덕성의 원천 중의 하나로 꼽은 수오지심AI가 자체적으로 생성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측은, 사양, 시비의 감정은 어떨까. 일곱 가지 감정인 희((((((()은 무수히 많은 인간의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감정에 대응한 결과물을 조합해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덕 감정인 사단까지 AI가 인간처럼 재현할 수 있을까. 마누엘 데란다가 새로운 물질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 물질에 실재하는 잠재성을 근거로 하여, 신유물론의 탈인류주의는 그 실현 가능성을 수용할 것 같다. 한편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사단의 일부가 없거나 그 작용이 활발하지 않다. 도덕적 민감성이 0에 가까운 인간 존재가 고깃덩어리 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 반대편에서 도덕적 민감성이 매우 높은 기계 덩어리도 가능할지 모른다. ‘부끄럼이 없거나 부끄럼을 모르는 인간(범법자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법기술자, 법전문가, 법조인도 있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그런 AI의 사회적 해악은 상상을 뛰어넘을 것 같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 연구 기업 오픈AI가 챗봇 GPT’라는 언어생성기를 공개했다. GPT의 기반인 GPT3 알고리즘은 파라미터(매개변수)1,750억 개다. 인공신경망의 파라미터는 인간 뇌에서 뉴런 간 정보전달 통로인 시냅스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을 갖고 있고 뉴런을 연결하는 접합부인 시냅스는 100조 개다. 2023년 초에 공개되는 GPT4는 매개변수가 100조 개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증폭, 증강, 대체할 것이다. AI를 전기처럼 사용하는 시대를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로봇의 지배󰡕에서 예측했다. 딥러닝 방식의 생성AI가 개발되고 있는 현재, 인간만이 창작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단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에 그칠 것만 같다. 알파고의 묘수에 소름 끼친다고 하고, GPT의 활약을 섬뜩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 같다. 인간의 단순한 보조 도구로 예측·분류 기능만을 수행하는 AI가 이제는 사람처럼 작동하는 시대의 출발점으로 챗GPT는 평가받고 있다. 얼마나 소름 끼치고 섬뜩해진 후에야 AI를 담담히 받아들이게 될지 모르지만, 곧 다가올 미래이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뇌 활동에 장애가 있는 인간에게 사유 능력은 제한적이거나 전무할 수 있다. 감정도 양과 질 면에서 모든 인간이 다르게 지니고 다르게 작동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 능력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AI와 인간 간, AI와 동물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고민하고 정리하는 일은 내용적으로 오류일 수 있다. AI가 인간과 동일한 또는 그 이상의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사유 능력을 지니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주제로 한 논의는 의미가 없다. 예측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챗GPT가 자의식을 지닐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 ‘생명에 관한 일관되고 명쾌한 정의가 없는 상태에서 기계 덩어리 AI가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무의미하다. 이러한 논의보다는 탈인간중심주의를 비롯한 탈이원론, 탈범주화를 기반으로 한 AI에 대한 관점, 태도와 이것이 미래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정치, 경제, 문화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세탁기와 피임약으로 여성의 삶은 크게 변혁되었다. 하지만 성불평등 사회 구조와 인식이 굳건한 현실에서 여성 노동의 착취는 심화했다. AIAI를 장착한 사이보그가 보편화한 세상에서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의 불평등으로 인해 양극화는 현재보다 더 극대화 되고, 인간 세상은 파멸을 맞이할지 모른다. AI가 신유물론이 전망하는 것처럼 물의를 빚는 물질’, ‘불온한 물질로서 능동성을 발휘하여 인간처럼 또는 인간 이상의 사유 능력을 갖게 된다 해도 각자도생, 개인 책임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자유주의 사회구조 속에서는 이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데 작용하여 자유롭게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회인 인간 해방 사회로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고깃덩이가 생각을 한다면 기계덩이도 생각할 수 있다. 고깃덩이가 수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것처럼 기계덩이도 기술발전과 자체 진화를 거치면서 고깃덩이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생각 능력을 지닐 수도 있다. 인공지능의 자연 지능화, 이것이 로지 브라이도티가 주장한 자연-문화 그리고 문화-자연의 연속체인 포스트 휴먼이겠다. 인간과 인간 외의 자연 간 다름을 강조한다고 해서 이 둘 간의 위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강조가 반드시 차별적인 위계 설정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탈위계는 비지배로서의 자유(공화주의적 자유),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된 개인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유물론과 사회구성주의를 횡단하고 젠더, 계급, 인종, 성적 지향성 등 다양한 범주의 교차를 통해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공지능의 시대, 사이보그의 시대는 대변혁의 시대일 것 같다. 정치는 더욱더 중요해지고 더 큰 힘을 발휘해야 한다. AI와 사이보그를 통해 인간은 형벌과 소명으로서의 노동에서 해방되어 정치적인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노동 해방 이후에는 인간이 무엇을 하며 사냐고 묻는다면 답은 정치 활동이다.

유물론이라는 개념 엔진을 나는 저자의 바람만큼은 아직 제대로 장착하지 못하고 있다. “로봇의 자각 능력은 인간이 설계해서 심어 준 게 아니라 마치 씨앗에서 싹이 자라듯이 기계로부터 싹튼 것이다.”라는 문장이 󰡔신유물론 입문󰡕을 인공지능인문학 추천도서로 삼는 데 작용했는지 모른다. ‘마누엘 데란다를 자꾸 데리다로 잘못 읽은 것만큼이나 󰡔신유물론 입문󰡕을 낯설게 읽었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AI를 기계, 기술의 차원에서만 보지 않고 물질개념으로 보기 시작했다. ‘유물론은 인간과 사회를 통찰하는 중심적인 사유 중의 하나이다. ‘자각하는 것, 자아가 생성되고 이를 인식한다는 것, 지능등이 물질의 논리에서 사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신유물론AI를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면서 실천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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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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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2교시 수업 후 쉬는 시간에 교무실 누나가 복도로 부르더니 할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처음으로 조퇴라는 걸 해보았다. 한적한 도로, 적당히 더워지기 시작한 공기를 느끼면서 시외버스를 타고 읍내 터미널에 내렸다. 집까지 30분 여를 걸었다. 망고개에서 동네 쪽을 바라보며 타박타박 신작로를 걷던 37년 전의 모습이 선명한 동영상으로 남아 있다. 상복을 입은 엄마는 할머니가 늘 주무셨고 온 가족이 밥상 세 개를 놓고 밥을 먹었던 큰방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북쪽 면에 병풍이 쳐져 있었다. 그 뒤에 할머니가 계시니 큰 절을 두 번 드리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방을 나와 마루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꺼이꺼이 하는 목구멍 소리 섞인 울음에도 마당에 차려진 술상 앞에서 큰소리로 웃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이 그 순간 무척 미웠다.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처럼 슬퍼서 울지는 않을망정 웃을 수가 있냐는 생각에 괘씸했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3쪽에 있는 작가의 말, ‘말이 아니라 미세한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대가라는 대목을 읽고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풍경이 떠올랐다.

객지에서 학교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집 대문에 들어서면 매번 엄마대신에 할머니라고 큰 소리를 냈다. , 누나 모두 그랬다. 막내인 나는 할머니 품에 폭 안겨 어리광을 부리는 기쁨과 안온함을 누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도시로 전학을 간 후 2년 동안 할머니가 밥을 차려 주셨다. 넷째 작은아버지가 나를 떠맡으면서 할머니는 시골집으로 내려가셨다.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아침, 저녁 밥상과 도시락을 챙기셨던 할머니셨다. 매달 음력 초사흘과 누군가의 생일이면 엄마는 윗목에 상을 놓고 시루떡, 나물, 탕국, 과일 들을 차려놓았다. 그 상 앞에 할머니는 두 손바닥을 비비시면서 중얼중얼 무언가 외우셨다. 거친 손바닥이 내는 사각사각, 서걱서걱 마찰음이 내 귀에 선하다. 나의 할머니도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에 쓴 할머니만큼이나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내게 아가, 아가또는 갱아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품에 자주 안으셨다. 아버지와 엄마에게도 한두 마디 정도, ‘오냐’, ‘조심해라는 말씀만 하셨던 것 같다.

10년 전에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슴이 먹먹하도록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나의 아름다운 정원󰡕에 나오는 할머니엄마의 이야기겠다는 예상을 했다. 할머니’‘엄마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했다. 그러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작가의 할머니 이야기이다. 그런데 17개 꼭지 중에서 할머니 이야기로 모두 채워진 꼭지는 1번과 8번 정도이다. 나머지는 할머니가 작가인 손녀를 대하는 모습을 기준 삼아 작가의 엄마가 작가를, 작가가 자기의 딸을 어떻게 대했고 대하고 있는지 비교하고 성찰하는 내용이다. 17꼭지의 정중앙인 9꼭지에 다섯 가지 사랑의 말이라는 소제목을 단 글은 이 책의 요약본이라 할 만하다. 훌륭한 부모나 교사, 지도자란 완벽하고 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자기의 권위를 더 높이 세울 뿐만 아니라 상대를 성장하게 하는 영양분이라고 믿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두고두고 정기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심윤경의 할머니에게 사랑의 미니멀리즘을 배우고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니멀리즘은 간결한 아름다움과 강력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고 말한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할머니, 엄마, 저자 세 명의 양육에 관한 이야기다. 할머니의 다섯 가지 사랑의 말이란 그려(그래), 안 뒤여(안돼), 뒤얐어(됐어), 몰러(몰라), 워쩌(어떡해) 등이다. ‘그려, 안 뒤여는 할머니의 일관된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되는 것은 한결같이 되고 안 되는 것은 늘 안 되었다. 눈치를 보는 대신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자기만을 생각을 갖게 한다. ‘뒤얐어는 관용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과 창의력의 씨앗이요, 용기의 근원을 작가는 관용으로 본다. 이는 인정과 위로다. ‘몰러는 틈이다. 할머니의 능숙하고 정직한 무지는 성장과 확장의 느낌을 주고 눈부신 행복감을 부여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워쩌는 공감과 이해를 품은 단어다. 할머니의 그 말에 작가의 마음에는 온기가 퍼졌다. 그 단어는 상처 난 마음에 붙여지는 반창고와 같았다. 교사로서 내가 학교 수업 시간을 비롯한 모든 학교생활에서 되고 안 되는 일을 분명히 구별하고 있는지, 깔끔하고 신속하게 받아주고 있는지, 잘못 가르치거나 전달한 내용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수정하는지,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진심으로 보여주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여름방학 때 집에서 내가 첫째, 셋째 아이와 빚은 갈등의 원인은 아마도 그 다섯 가지 중 일부 또는 모두가 빠진 데 있을 것 같다. 이것은 훈육, 양육, 가르침, 교육의 지침이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에는 이외에 더 많은 읽을거리와 생각거리를 할머니의 간결한 말과 미세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제시하고 있다. ‘저런은 단순하고 흔하지만, 매우 맵시 있고 효과적인 공감의 언어이다. 좋은 일은 활짝 웃고 힘든 일은 한숨 한번 쉬어 넘기는 할머니의 무심한 반응은 무관심과 관심 중간 어디쯤 기분 좋은 영역에 있는 무심함의 상태로서, ‘그렇구나하는 정도의 반응이다. 기대와 지지, 격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진정으로 힘이 된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받을 때 그것은 진짜 산소가 되어 폐로 스며들어 근육에 힘을 보탠다. 격려의 탈을 쓴 부담은 일산화탄소와 같이, 산소인 척하고 우리 몸속에 스며들어 팔다리의 힘을 빼고 결국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든다. 모든 사랑이 축복 같고 봄 햇살 같은 아니다. “아이는 빈틈에서 자란다.” 나는 이 문장을 이 독후감의 제목으로 삼고 싶었다. 어쩌면 심윤경 작가도 그 문장을 제목으로 자녀 양육법 관련 책을 쓰고 싶었을 것 같다. 좋은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것들 중에서 가장 차원 높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편안함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 틈에서 편안함이 나온다.‘부모아이에 다른 지위와 역할을 넣어봐도 딱 들어맞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은 후에도 소득이 많다. 모든 일과 관계에서 거리와 틈이 유익하다는 점을 알았다. 나의 할머니와 내가 60갑자 띠동갑이라는 점,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만에 여러 누나 들과 전화 통화를 했고 남매의 정을 나누었다. 그 누나 중의 하나는 김치 담고 고기 삶았다고 와서 가져가라고 해서 덕분에 누나-엄마-할머니로 이어지는 고향 집밥 반찬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가장 큰 소득이었다. 하하하. 나의 할머니를 찬찬히 떠올려보면서 추억할 수 있었다는 데 이 책은 크게 이바지했다. 나의 할머니도 무척 아름다운 할머니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 심윤경 작가가 고맙다. 평범한 일상은 사랑을 베푸는 데 충분조건이란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만큼이나 큰 사랑은 없다고 한다. 나에게, 다른 이에게 그려(그래), 안 뒤여(안돼), 뒤얐어(됐어), 몰러(몰라), 워쩌(어떡해)’라고 말하고 행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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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
박재상 지음 / 문자교육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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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을 읽던 중 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다. 특정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교과서 문장에 밑줄을 긋게 하고 내가 소리 내어 읽었다. 문득, 이 글자가 모두 한자였다면, 중국 간자체로 적혀 있다면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글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한글 없는 오늘날의 세상은 어땠을까? 익숙한 것은 사소해 보인다. 공기, , , 불 등과 같은 우리 삶(생명)에 기본적인 것들이 대개 그렇다. 무척 흔한 것이라 하찮아 보이지만, 그것이 오염되어 쓸모없게 되거나 사라지게 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목숨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한글도 그렇다.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문자로서 유일하게 그 창제 원리와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 단 하나만으로도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우리는 무한한 자긍심을 지녀도 지나치지 않다.

훈민정음의 창제자는 누구인가? 결혼한 누나 집에서 나는 35년 전, 대학 1학년 한 해를 얹혀살았다. 조카가 둘 있었는데 독서광인 큰 조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던 그 아이에게 내 책꽂이에 꽂힌 책은 신기하고 정복해야 할 목표물이자 사냥감이었다. 어느 날 그의 담임선생님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운동권, 데모하는 사람 있냐고. 수업 시간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말했더니 큰조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글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하더란다. 세종은 백성을 무지몽매한 존재로 업신여겼다고 말하면서. 조카는 내가 한창 읽고 있었던 한국 민중사비슷한 제목의 책을 읽었던 게다. 민주주의와 절대적 평등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사를 평가하는 관점이 대세인 시절에 역사는 사실이나 진실보다 세계관을 앞세웠다. 한글은 세종이 만들었나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나라는 이분법적 질문도 그 결과일 것 같다.

우리말과 한글을 나는 한동안 구분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한글은 배우기 쉬운 글자우리말은 배우기 쉬운 말을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한글이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그런 무분별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4년 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해서 공부한 후에 알았다. 국어학과 국문학이 구별되는 학문 영역이란 점부터 시작해서 말과 글자(문자)가 다르다는 것, 외국인이 배우기 쉬운 것은 한글이라는 문자이지 우리말, 즉 한국말은 아니라는 점,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것은 문자이지 말이 아니라는 점 등을 처음으로 알았고 정확히 인지했다.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앎의 수준이 어처구니없고 무척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한국어교원 3급 자격검정시험을 준비하면서 우리말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 내가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겪었던 힘겨움의 정도 이상이면 이상이지 결코 그 아래는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알았다.

훈민정음과 한글은 같으면서 다르다. 같은 문자이지만, 한글은 훈민정음이 다듬어져 오늘에 이른 현재의 훈민정음이다. 우리말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문자를 상상해본 세종과 이 뜻을 받들어 문자 창제 협업에 앞장선 집현전 학자들의 뛰어난 역량이 결합한 창조물이 한글이다. 방송대 중세국어 연습강좌에서 배운 것에 더해서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에서 제대로 익힌 내용이다. 세종의 애민 정신은 천문지리에서부터 농업, 의학 등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결과물로 발현되었다. 그중에서 으뜸의 으뜸은 훈민정음이다. 가장 긴 시간을 들였고, 가장 신중하게 작업을 했으며, 말 그대로 만사를 제쳐두고 이룬 성과다. 지도자로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포함해서 역대 가장 민주적인 리더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리더십을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적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이 내게 심어준 강한 인상이다.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의 저자 박재성은 정인지, 신숙주 등과 같은 소위 생육신이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기록을 근거로 보여주고 있다. 사육신, 생육신이란 이분법에 가려서 놓친 신숙주, 정인지 등의 역할에 대해 적절하고 정당한 평가를 하게 한 초석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저자는 쓰지 않았지만, 그들의 음운론적 역량과 탐구 정신, 실증적인 노력 등이 없었다면 세종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정인지는 글이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문자라는 매개를 써서 남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글에는 반드시 문자가 뒤따르는 법이라고 했다. 신숙주는 우리말의 이치와 원리에 맞게 문자를 창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소리를 기본으로 자형을 만드는 데 기초를 제공하였다. 세종이 초성 17자를 만들 수 있었던 토대가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인 오음의 이치에 있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었다.

박재성의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은 민본주의, 즉 백성을 으뜸으로 여기는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조선이란 나라를 세종이 어떻게 통치하였는지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세종은 자신이 펼친 문화정치를 통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재목(材木)을 잘 살펴서 쓰임을 적절히 하면 버릴 것 없이 나무를 쓰는 목수와 같다 할 것이다. 정치가로서 세종은 무력을 배제한 채, 무척 주도면밀하게 훈민정음 반포 작업을 수행했다. 언문청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으로 글을 짓게 하면서 정치적 반동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문민정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또한 실록에 나온 대로 집현전 학사들과 문답식 토론으로 문자 창제를 이끌고, 창제 원리를 논리 정연하게 밝힌 후에 공식 반포를 한 점에서 볼 때 효과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학문 연구 방법을 세종은 제시하였다. 이처럼 박재성의 이 책은 세종실록이라는 기록물을 근거로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보여주면서 세종이 정치가로서, 학자로서, 지도자로서 어떠했는지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익혀서 쓸 수 있는 글자를 창제하고자 했던 세종의 정신을 우리는 애민주의, 민본주의라고 평가한다. 나는 이를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본다. 민본과 애민이 없는 민주주의는 히틀러식 전체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정신적인 차원에서 찾는다면 민본과 애민의 부재에 있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모든 조직과 집단은 구성원을 근본으로 여기고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 여덟 명의 공동 작업으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협업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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