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95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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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신부

포와, 낯선 단어를 눈으로만 읽다가 메모장에 적으려다 못 적었다. 다시 들여다보고 새긴 후에 썼다. 포와. 여관방에서 다섯 여자가 절망 가득한 울음 우는 대목을 읽다가 멈췄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삶을 실감나게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알아 놀랐다. 조선인의 이주 노동 역사가 무척 오래 되었다는 사실보다 사진신부라는 단어를 처음 알아 놀랐다. 제주의 어떤 미술관에서 정연두 작가가 사진신부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는 기사를 접했다.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지 않았다면 무심코 넘겼을 기사였다.

광복절 77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아내의 이름>을 보았다.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을 비롯한 세 명의 여성 모두 남편의 조력자 또는 내조자로서의 역할이 아닌 독자적인 독립 운동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독립투사의 아내스스로 독립투사가 되길 선택한 여성이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주인공 버들 역시 조선의 독립을 바란 투사다. 사진신부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1910년 열네 살에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간 김공도 선생에게 112년이 지난 20222월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는 소식이 뜬다. 소설 속 버들이었을까. 홍주, 송화였을까? 독립단 후원금으로 월급 전부를 내놓는 태완을 향해 버들이 구두 가게 자리 잡은 후에도 늦지 않다고 하자, 태완은 나 살 만해질 때까지 조국 독립을 미루자는 말과 같다고 말한다. 상해임시정부 후원금의 3분의 2를 하와이 이주노동자들이 냈다고 한다.

버들의 이주는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용기라면 그것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굶주림과 비참한 여성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열망과 교육열이었을까? 내가 지금 삶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면 나는 어디로 떠날 수 있을까? 내 자식이 이 땅에 발 딛고 살 수 없다면 나는 내 자식을 어디로 떠나보낼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떠날 수 있었을까? 떠나보낼 수 있을까? 버들이 세탁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육체노동을 해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런 질문을 내게 마구 던졌다.

 

2. 깻잎, 이주노동자

매트리스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던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 휴대전화 벨이 울려서 받으니 도통 못 알아듣는 말이 들려온다. 가만히 다시 들어보니 택배 물건을 현관 앞에 놓고 간다는 말이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이주 여성 택배 노동자였다.

우춘희가 이주노동자들과 1,500일을 함께한 후에 쓴 󰡔깻잎 투쟁기󰡕에 캄보디아인 쿤티에, 아룬니가 나온다. 이들이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는다면 자기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겠다.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비닐하우스 작업장에서 소변을 보러 화장실 한번 가려면 30분 내외가 걸리니까 비닐하우스 내에서 해결하는 장면을 떠올리자니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21세기이고 살고 있는 곳은 문명국가인지 의문이 든다.

쿤티에가 하루에 따야 할 깻잎은 15상자다. 한 상자에 10개짜리 깻잎 묶음 100개가 들어가는데 하루 15,000장이다. 1초에 하나씩 숫자를 세는 데만 꼬박 4시간이 넘게 걸린단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일해야 겨우 채울 수 있다. 그냥 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순을 따서 따로 분류해야 한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비닐하우스에서는 사람이 아닌 기계이어야 한다. 할당량에 미달하면 한 상자에 4,000원씩 떼인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현장에서는 법보다 월급을 주는 사업주의 말이 더 힘이 세다.

비닐하우스 속 낡은 컨테이너에서 살면서 한 달에 수십만 원씩 숙소비로 떼이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든 8시간분만 돈을 받고 평균 2~3시간씩 무료 노동이 강요되는 현실은 버들, 홍주, 송화, 태완, 조덕삼, 박석보가 겪었던 하와이 사탕수수밭, 빨래터와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열악하다. 버들과 홍주는 구둣가게, 세탁소, 농장 등을 경영하고 임대업도 했다. 현재 한국에 있는 쿤티에, 이룬니와 같은 처지의 이주노동자 없이 우리는 깻잎, 토마토, 애호박을 싼값에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단다. 달콤한 설탕 맛에 빠진 유럽인의 식탁을 위해 노예제 폐지 후 부족해진 사탕수수 재배 노동력을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난 7,300여 명의 조선인이 대신했다. 20여 년 뒤 그들과 결혼하기 위해 남편 될 사람의 사진 한 장 들고 나라를 잃은 버들과 같은 어린 여성의 삶이 오늘날 하와이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더욱 혹독해진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중에서 버들과 태완이 코코헤드에 카네이션 농장을 경영하는 것처럼 자기 땅을 일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이 가능한 현실도 아니다.

 

3. 알로하! 우리의 이주노동자

태양빛이 강렬하다는 건 뜨겁다는 뜻이다.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불에 덴 후에야 비로소 느껴지는 쓰린 통증 같은 기억을 남겼다. 물론 햇볕의 따스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세세한 이야기를 건드리면 아프다. 조선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았던 무당의 딸 송화, 조선에서 첩으로 살기를 거부하며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로즈 이모(홍주), 생모가 누구인지 알게 된 펄(진주), 버들을 환대하는 시아버지 등의 모습에서 온기와 고통을 번갈아 느낄 수 있었다. 자외선을 잔뜩 쪼이는 강렬한 태양과 따스한 해, 이 둘 모두 있는 소설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알로하란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란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한다. 꽃목걸이 레이는 누군가를 두 팔로 안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랑을 뜻한다고 한다. 카네이션으로 만든 레이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여러 먹을거리를 수확하는 이주노동자의 목에 걸리기를 바란다. 이들의 이야기에 우리가 부끄럽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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