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
박재상 지음 / 문자교육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을 읽던 중 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다. 특정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교과서 문장에 밑줄을 긋게 하고 내가 소리 내어 읽었다. 문득, 이 글자가 모두 한자였다면, 중국 간자체로 적혀 있다면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글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한글 없는 오늘날의 세상은 어땠을까? 익숙한 것은 사소해 보인다. 공기, , , 불 등과 같은 우리 삶(생명)에 기본적인 것들이 대개 그렇다. 무척 흔한 것이라 하찮아 보이지만, 그것이 오염되어 쓸모없게 되거나 사라지게 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목숨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한글도 그렇다.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문자로서 유일하게 그 창제 원리와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 단 하나만으로도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우리는 무한한 자긍심을 지녀도 지나치지 않다.

훈민정음의 창제자는 누구인가? 결혼한 누나 집에서 나는 35년 전, 대학 1학년 한 해를 얹혀살았다. 조카가 둘 있었는데 독서광인 큰 조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던 그 아이에게 내 책꽂이에 꽂힌 책은 신기하고 정복해야 할 목표물이자 사냥감이었다. 어느 날 그의 담임선생님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운동권, 데모하는 사람 있냐고. 수업 시간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말했더니 큰조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글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하더란다. 세종은 백성을 무지몽매한 존재로 업신여겼다고 말하면서. 조카는 내가 한창 읽고 있었던 한국 민중사비슷한 제목의 책을 읽었던 게다. 민주주의와 절대적 평등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사를 평가하는 관점이 대세인 시절에 역사는 사실이나 진실보다 세계관을 앞세웠다. 한글은 세종이 만들었나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나라는 이분법적 질문도 그 결과일 것 같다.

우리말과 한글을 나는 한동안 구분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한글은 배우기 쉬운 글자우리말은 배우기 쉬운 말을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한글이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그런 무분별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4년 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해서 공부한 후에 알았다. 국어학과 국문학이 구별되는 학문 영역이란 점부터 시작해서 말과 글자(문자)가 다르다는 것, 외국인이 배우기 쉬운 것은 한글이라는 문자이지 우리말, 즉 한국말은 아니라는 점,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것은 문자이지 말이 아니라는 점 등을 처음으로 알았고 정확히 인지했다.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앎의 수준이 어처구니없고 무척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한국어교원 3급 자격검정시험을 준비하면서 우리말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 내가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겪었던 힘겨움의 정도 이상이면 이상이지 결코 그 아래는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알았다.

훈민정음과 한글은 같으면서 다르다. 같은 문자이지만, 한글은 훈민정음이 다듬어져 오늘에 이른 현재의 훈민정음이다. 우리말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문자를 상상해본 세종과 이 뜻을 받들어 문자 창제 협업에 앞장선 집현전 학자들의 뛰어난 역량이 결합한 창조물이 한글이다. 방송대 중세국어 연습강좌에서 배운 것에 더해서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에서 제대로 익힌 내용이다. 세종의 애민 정신은 천문지리에서부터 농업, 의학 등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결과물로 발현되었다. 그중에서 으뜸의 으뜸은 훈민정음이다. 가장 긴 시간을 들였고, 가장 신중하게 작업을 했으며, 말 그대로 만사를 제쳐두고 이룬 성과다. 지도자로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포함해서 역대 가장 민주적인 리더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리더십을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적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이 내게 심어준 강한 인상이다.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의 저자 박재성은 정인지, 신숙주 등과 같은 소위 생육신이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기록을 근거로 보여주고 있다. 사육신, 생육신이란 이분법에 가려서 놓친 신숙주, 정인지 등의 역할에 대해 적절하고 정당한 평가를 하게 한 초석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저자는 쓰지 않았지만, 그들의 음운론적 역량과 탐구 정신, 실증적인 노력 등이 없었다면 세종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정인지는 글이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문자라는 매개를 써서 남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글에는 반드시 문자가 뒤따르는 법이라고 했다. 신숙주는 우리말의 이치와 원리에 맞게 문자를 창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소리를 기본으로 자형을 만드는 데 기초를 제공하였다. 세종이 초성 17자를 만들 수 있었던 토대가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인 오음의 이치에 있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었다.

박재성의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은 민본주의, 즉 백성을 으뜸으로 여기는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조선이란 나라를 세종이 어떻게 통치하였는지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세종은 자신이 펼친 문화정치를 통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재목(材木)을 잘 살펴서 쓰임을 적절히 하면 버릴 것 없이 나무를 쓰는 목수와 같다 할 것이다. 정치가로서 세종은 무력을 배제한 채, 무척 주도면밀하게 훈민정음 반포 작업을 수행했다. 언문청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으로 글을 짓게 하면서 정치적 반동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문민정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또한 실록에 나온 대로 집현전 학사들과 문답식 토론으로 문자 창제를 이끌고, 창제 원리를 논리 정연하게 밝힌 후에 공식 반포를 한 점에서 볼 때 효과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학문 연구 방법을 세종은 제시하였다. 이처럼 박재성의 이 책은 세종실록이라는 기록물을 근거로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보여주면서 세종이 정치가로서, 학자로서, 지도자로서 어떠했는지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익혀서 쓸 수 있는 글자를 창제하고자 했던 세종의 정신을 우리는 애민주의, 민본주의라고 평가한다. 나는 이를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본다. 민본과 애민이 없는 민주주의는 히틀러식 전체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정신적인 차원에서 찾는다면 민본과 애민의 부재에 있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모든 조직과 집단은 구성원을 근본으로 여기고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 여덟 명의 공동 작업으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협업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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