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강대상을 옮겼나 - 목회답답증에 걸린 이들을 위한 진단과 처방
톰 레이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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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강대상을 옮겼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답 할 수 없었다. 한국 교회의 강단은 분명 강대상을

옮긴 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 할 수 없다. 최소한 그 조직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느누구도 말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저자의 글에서의

강대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마천루와 같이 높게, 바벨과 같이 거창하게 쌓아 올려진 철옹성과도

같은 우리의 강대상을 누군가 옮겨야 하지 않을까? 마치 누군가에게 침입이라도 아니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날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격한 반응을 보이며 어마무시한 방어기재를 발휘하는 그

강대상의 권위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주님은 광야에서도 거리에서도 작은 배에 타고서도

얼마든지 말씀을 전하고 그것이 복음이 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움직였건만 우리의 거룩을 가장한 강대상은 그냥 높게 만 솓아 있는 모래성과도 같아 위태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세상을 향한 계획과 기대가 어느새 자신의 교회와 성도를 향한 프로그램들로 도배를 하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머릿수를 늘리는데 급급해 지기 시작한다. 목회자의 마음은 조급해지고 점점 세상의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말도 안되는 이런 저런 이름이 붙은 프로그램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말씀에 대한 공부와 기도의 모임은 현저히 그 수가 줄어 든다. 사람들이 재미 없어 한다가 그 이유다. 어느새 교회 안에서도 인본주의가 신본주의를 넘어서 버렸다. 최고의 가치와 절대 가치 마저도 자신들의 기준과 부합 되지 않으면 여지 없이 난도질 하기 시작한다.

이젠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 가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상황의 호전은 당신에게서 시작된다. 회복은 당신에게서 시작된다. 아니 성경적으로 정확한 표현을 쓰자면, 이 교회들에서 하나님은 한사람을 회복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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