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의 신비 세계기독교고전 52
존 플라벨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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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역사들, 즉 "창조" 또는 "섭리"를 통해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다. 특별히

섭리에 의한 하나님의 역사들의 주된 영광과 위대하심은 그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들을 실제로 성취하고 이룬다는 데 있다. 섭리는 하나님의 원수들조차도 하나님의 참되심을 증언할 수 있는 수많은 증인들로 만들어 왔고,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해 준다. 그러나 섭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들이 서로 조명해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섭리에 의해 떄를 따라 베풀어 주시는 온갖 크고 작은 일들이 다 성경에 들어 있는 것임을 보여주며, 말씀 속에 있는 약속들은 여러가지 곤경과 환난에 처하게 된 교회에게만이 아니라, 그 각각의 지체에게도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신비를 아는 것이 지혜일것이다.

 

특별히 저자는 섭리를 묵상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행하라고 명시적으로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묵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의무가 된다. 그래서 성경은 도처에 "기억하라, 바라보라, 찾으라, 보라"등의 명령들을 통해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묵상하라고 한다. 특별히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시는 섭리의 시작을 이야기 할때 "보라"라는 단어를 두번이나 사용하며 주의를 환기 시키며 강조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보라,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이제 보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출3:2.9). 직접 보라는 것이다. 의심과 불신의 사람에게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받아 들이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신앙으로 받아 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섭리이다. 억지로 무지막지하게 밀어 붙여서 믿으라가 아니고 보고 듣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신약에도 이와같은 말이 나온다. "와서 보라"는 구절이다. 와서 직접 보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에서 자신이 없으면 "와서 보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발달된 문명으로 거의 모든 것이 발가 벗겨진것처럼 드러나기에 정말 자신이 없으면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은 "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보는 것이 묵상이다. 모든 생각과 사고의 관점을 집중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거하시는 분을 보는 것이며,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분을 보는 것이며, 삶의 모든 순간에 개입하시는 분을 보는 것 이것이 섭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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