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답이 될 때 - 고난의 자리, 하나님이 내게 묻다
장창수 지음 / 두란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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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P55

이제 더 이상 핑계 거리는 없습니다. P71

설교는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대 전제가 무너져 버린 지금 우리에게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만나는 것은 성도로서도 설교자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신대원 시절 은사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설교자는 카세트 테이프와 같아야 한다'는 말씀인데, 현장에 나와 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너무도 이해가 됐다. 정해진 말씀만 전하면 되는데 이것저것 자꾸

첨가하다 보니 정작 본문은 뒷전인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저자는 본문 중심의 설교를 전하는

분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기대가 된다.

'찾아 오시는 하나님'. 이것이 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본질이다. 인간이 만든 종교는 끝없이

갈구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은 찾아 오신다.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의 아픔과 고통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직접 다가 오신다. 인생이 힘들고 실패하고 지치고 도저히 일어설 함 조차 없는 그때

어느새 곁에 계신 그분을 만난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에게 '질문'하신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기술된다. 회복과 은혜의 시작점이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안에는 피조물을 향한 그윽한 사랑과

긍휼이 들어 있다.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그분의 '진심'이 거기에 담겨 있고 근본적인 해답 마저도

같이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셨기에 항상 최선이다. 처음 범죄한 아담에게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신다. 예전에 이 본문 때문에 참 많이 고민했던 적이 있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형상대로 빚어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든 첫 피조물의 범죄에 진노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하나님'. 책망과 경고가 아닌 '회복과 돌아옴'을 바라는 마음에서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 앞에

그분의 간절함을 느꼈다. 간절해야 할 인간은 범죄하고 도망하는데 죄를 심판해야할 그분이 오히려

간절함을 보인다. 이 간절함에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는 그냥 범죄자다. '두려움'을 가진다. 하나님을

떠난 성도의 삶이 '두려움'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가리고 숨어 버린다. 지금의 우리다. 우리 역시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해 두려워 숨는다. 두 손으로 겨우 자기 눈을 가리고 '안보이시죠'라고 하는

뻔뻔함 마저 가진다. 하나님은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사 41:10)'라고 하시는데 말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그분의 간절함이고 사랑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이 말하는 'Coram Deo'가 바로 이것의

해답이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 앞'이다.

인생은 '포기시키시는 하나님과 집착하는 인간의 싸움'이라고 한 어거스틴의 말은 적절하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 고집과 집착으로 만용을 부리는 인간, 결과가 뻔히 보이지만 여전히

꽉 쥔 손엔 힘이 들어 간다. 야곱의 그랬다. 야곱은 여인에게 , 재물에, 자식에 집착했다. 태어날 때 부터

뭔가를 잡아야만 성미가 풀리는 성품이기에 더더욱 집착이 강했다. 물론 자신이 집착하고, 쥐고 있는 것을

놓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서 믿음이 결정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놓을 수 있다. 상황 그 너머에 계시는

그 분이 보이기에 결단은 쉬워진다. 야곱은 그 기회를 '아마르(창32장, 생각하다)'에서 찾는다. 그리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아마르'는 찾아 온다. 그때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붙들어야 한다. 네째인 유다를 낳고 '아마르' 한 후 자신의 집착에서 벗어 난 레아처럼 말이다.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후에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창32:28)라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집착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의미다. 꽉 쥔 손을 풀어 그 분의

손을 잡으면 된다. 우리가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우리는 문제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

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 만을 붙잡아야 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이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 보는 것을 추구하고, 무엇을 보는 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에

집착하면 결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다. 자신이 바라보는 것으로 정체성이 구별되기에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이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시대를 따라 세상의 움직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우리가 바라 보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오스 힐먼(Os Hillman)이 자신의 저서 에서 밝혔듯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주를 찾는 '편의'의 단계를 지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기 상황에서 주를 찾는 '위기'의 단계를 거쳐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확신'의 관계에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언제나 선하시기에 믿고

기다리는 이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 내 타이밍과 내 방법이 아닌 그분의 타이밍과 그분의 방법에

의해 당신의 일을 해나가신다.

이 책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편과 저 편에서

방황하지 말고 바른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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