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건축 - 건축으로 사람과 삶을 보다
최동규 지음 / 넥서스BOOKS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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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앞에서 겸손한 신앙인이라면 자신에게 '부르심의 소명'으로 주신 직업을 등한시하고 종교적

활동에만 매진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 너무 좋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대해 최선이라는 결과로 마주하는 것, 이것이 저자인

최동규의 삶의 자세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전문가가 되어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건축가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런 저자는 후회없는 결과란

건축가로서의 사명,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에 꺼리임 없이 구조, 기능, 아름다움을 갖춘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말의 절정은 이것이다. '신앙인으로서 건축가가 아니고,

신앙인이자 건축가이다.'

저자가 건축한 교회가 150여곳이나 된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교회는 내가 가 본 곳이고 심지어

지난주에 가 본 곳도 있다. '빛'에서 출발해서 '물'로 완성된 공간인 모새골 교회는 어둠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 어두움을 힘있게 가를 수 있는 한 줄기의 빛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처음 이곳 예배당에

들어 섰을 때 느꼈던 아늑함과 따뜻함은 어둠을 감싸는 빛의 간절함의 표현과 같이 강렬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모새골 교회를 '작지만 마음에 드는 건물'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그랬던 것 처럼

캄캄한 어둠이 지속되어 한 줄기 단비 같은 빛을 사무치게 갈망하게 되면 나도 양평을 향해 핸들을

잡을 것 같다. 모새골 교회 예배당은 그런 곳이다.

저자에게 '좋은 건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필요에 맞도록(用) 몸체(體)를

아름답게(美) 구현하는 건물'. 용(用)은 필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

더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을 원했던 인간은 동굴에서 나와 인위적 공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건축은

시작됐다. 체(體)는 몸이다. 공간의 필요를 모조리 모아 놓으면 덩어리 곧 몸이 된다. 사용자가 원하는

공간을 마구 쌓는 것, 이것이 '체'다. 건축가는 그들의 필요를 듣고 면적을 구성한다. 건축가의 능력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미(美)다. 사용자의 필요를 채울 공간을 아름답게 구현하는 것은 온전히

건축가의 몫이다. 몸의 비율과 신체의 조화가 사람의 아름다움을 가름하는 요소이듯 건축의 아름다움도

비율과 조화에서 온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물은 무생물이지만 인간과 함께 숨쉬고 늙어 간다고 말한다.

어쩌면 건축은 사람이 사람에게 선사하는 작은 우주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나의 대학 시절을 보낸 창천교회(비록 목차에는 청천교회라고 잘못 나와 있지만)와 온갖

영욕을 뒤집어 쓴 소망교회, 언젠가 비슷한 집에서 꼭 살아 봐야겠다는 부러움의 대상인 '차경제(借景齊)

경치를 빌렸다는 의미)등이 나온다. 각각의 건물은 저자의 혼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건축이 삭막한 도심에 핀 거대한 꽃 한 송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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