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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리베카 머카이 지음, 조은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2월
평점 :
한때의 기억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이 책은 이를 아주 집요하게 파고든다. 다시 떠올려봐!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기숙학교,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진 한 백인 소녀의 죽음. 사건은 흑인 남성 교사로 결론 나며 단숨에 해결된 듯 보였지만, 보디는 그날의 진실이 단순하지 않았음을 직감하나 파해쳐보지 못한채로 지낸다. 시간이 많이 흘러 보디는 선생님으로 이 학교에 오게되며, 학생들과 함께 그날의 일을 재 조명하며 정말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아나선다.
이 작품은 단순한 추적극이 아니다. 그루밍 성범죄, 왜곡된 젠더 시선, 언론의 자극적 소비 방식. 작가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온 많은 것들을 날카롭게 끌어올린다.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땐 몰랐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땐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문장 사이를 유영하는 듯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편집에 혼란스러웠다. 읽는 데 압도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책이다. 500페이지 소설을 읽으면 보통 5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 책은 거의 12시간이 걸렸다. 나의 독서 스케줄을 마비시킨 책이다. 일단 정서적,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가 컸다. 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한다. 누구와 잠을 잤고 생리를 안 하는지 서슴없이 말한다. 이래도 되는 걸까? 게다가 남자 아이들에게 받은 성차별적인 폭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남자들의 성기 모양을 그리고 기록하는 노트를 만들어 두는 행위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읽은 부분이 이해가 안가면 앞 부분을 다시보고, 이를 반복하느라 매우 오래 읽는 책이 되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불쾌했던 감정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말해주는 듯했다.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는가, 아니면 편의에 따라 덮이는가?
조용히 그러나 깊이 파고드는 책.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