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 위픽
신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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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이 음률이 좋다. 시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하다. 표현들이 깔끔하고 딱 달라붙는다. 이토록 글을 잘 쓰시다니, 감탄하면서 읽어 나갔다.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후회의 감정이다. 과거에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했더라면 하는 것 말이다. 무의미한 일일지라도, 떨쳐내지 못하면 몸에 끈적하게 남아있는 감정이다.

훌훌 단번에 털어내라는 무책임함이 아니라, 정말 조금씩 나아져보라는 위안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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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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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단편들을 계속 읽었다. 비슷한 결의 단편들을 연달아 읽으면 흐려지기 마련인데, 이 수상작집은 또렷했다. 갈대숲에 바람이 지나가며 쏴 하고 흔들리고, 사이로 햇빛이 스미는 장면이 떠오른다. 약간 쓸쓸한데, 공기가 맑고 따뜻하다. 이 기운 속에서 단 하나를 고른 심사위원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주란, 겨울 정원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일 수 있다. 엄마의 루틴과 자부심, 조용한 애정이 촘촘히 쌓여 있다. 가까운 자리에서 나를 응시하는 이야기. 겨울 정원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오래 남는다.

김성중, 새로운 남편
AI로 구현한 남편. 실체가 있든 없든 위안이 될 수 있지만, 막상 실체를 갖는 순간 다르게 다가오는 관계. 남편의 불온함까지 복제되는 기묘함. 기술로도 닿지 못하는 감정의 틈이 있다.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기차 안에서 시작되는 작은 인연. 짧은 잠, 스치는 꿈, 과거의 기억. 예술 세계의 내부로 잠시 걸어 들어가는 느낌. 잔잔하게 스며든다.

서장원, 히데오
차별을 견디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인물. 더이상 숨길 수 없는 정체성, 더이상 옛 모습이 아닌 자신. 알고 있던 사람을 멀리 보내는 감정. 그 텅 빈 자리가 서늘하다.

임선우, 사랑 접인 병원
기억과 습관까지 교환되는 수술. 냉소적인 톤 뒤에 숨어 있는 따스함. 어긋난 자리를 사랑으로 메우려는 마음. 마지막 장면의 감정이 오래 남는다.

최예솔, 그동안의 정의
가족의 거리와 가까움에 대한 이야기. 피보다 마음이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다. 억지로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 틈 안에서 피는 온기.

쓸쓸한데 따뜻하다. 이 온도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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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 : 김 부장 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
송희구 지음 / 서삼독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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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워할 수 없는 김 부장님. 상사 세 명을 합쳐 만든 인물이라는데, 그래서인지 너무 현실적이다. 이런 김부장님은 어디에나 있고, 솔직히 우리 안에도 조금씩 있다. 나보다 덜 열심히 산 것 같은 동료가 잘 살고 있으면 잠깐 흔들리는 마음, 다들 한 번쯤은 느껴봤을 거다.

이 책이 좋았던 건 김부장님의 변화가 조급하지 않다는 점이다.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붙들고, 예전엔 내치던 일도 해보고, 겉치레를 천천히 벗어내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담백하고 뭉클하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김부장님, 응원하게 된다. 다음 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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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이소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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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 후 남은 비급여 약값을 갚기 위해 마트와 법정을 오가며 일하는 도화. 그런 그가 재판 통역 중 위험한 제안을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법정 통역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직업군을 전면에 갖다 놓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 저자의 필력 덕분에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듯 전개되고, 리듬이 가볍고 빠르다. 그래서 학생이나 평소 소설을 어렵게 느끼는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또한 네팔어와 쿠마리 등 낯선 문화 요소들이 등장하며 이국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하고, 잘못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적인 구조가 뚜렷하다. 주인공의 의리는 분명하고, 이야기의 마무리 또한 흔들림 없이 정리된다.

도화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책임을 마주하는지 지켜보는 과정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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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살해당할까
구스다 교스케 지음, 김명순 옮김 / 톰캣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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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 작가에요. 당뇨로 입원한 소설가 쓰노다는 몸을 잘 쓰지 못해 꼼짝없이 병실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요, 하필이면 그 병실이 예전부터 기묘한 사건이 이어졌던 곳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결에 유령을 본 것 같고(아니 유령일 리가…) 이 사건을 시작으로 병실에 얽힌 비밀을 캐기 시작합니다.

직접 뛰지 못하니 주변 사람들을 움직여 수사를 합니다. 편하게 누워 머리만 쓰는 탐정… 부럽다?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물론 나중엔 목숨이 위험해지면서 부러울 겨를은 사라집니다만.

읽는 내내 도대체 트릭이 어디로 튈지 감이 오지 않았어요. 시대가 오래되다 보니 지금 이거 전화 있던 시절 맞지?’ ‘전보 치는 시대인가? 싶을 때도 있고요. 대신 그만큼 발로 뛰고,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단서를 모으는 진짜 ‘고전 수사’의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 좋아하는 분들은 분명 히히거리며 읽으실 듯 합니다.

처음엔 입원한 남편과 투닥이는 아내의 모습까지, 참 평온한 병실 풍경인데요. 뒤로 갈수록 서서히 조여오는 긴장감과 촘촘한 퍼즐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고전 미스터리의 맛을 좋아한다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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