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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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이야기다. 바움가트너의 애도는 절절하거나 울부짖는 방식이 아니다. 그는 아주 조용하게, 담담하게 잃어버린 사랑을 곱씹는다. 안 좋은 일들이 겹쳐 찾아온 어느 날,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흘렀다는 걸 깨닫고 그 순간 기억이 서서히 흐려지고 있음을 느낀다. 다른 사람을 좋아해보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내와 닮은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아내를 지적으로 탐구하며, 그녀를 끝내 잊히지 않을 존재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제자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그 모습은 사랑이자 집착 같기도 하고, 동시에 기억을 붙드는 숭고함처럼 느껴진다.

바움가트너는 아내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아내의 부모까지도 자주 떠올린다. 많은 이들을 잃었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기억해왔다. 이야기 속 기억들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내의 책 내용이 갑자기 등장했다가, 다시 과거로, 또 현재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 구성 방식이 특히 좋았다. 우리 생각도 항상 직진하지 않으니까. 감정도 기억도 제멋대로 흐르고 튀어나오고 사라지니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신의 리듬을 문장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은은한 상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움, 그리고 잊고 싶지 않은 갈망을 느꼈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울컥했다. 그리고 마지막, 바움가트너가 쓴 『운전대의 신비』.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사유는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마지막 장면의 자동차 사고로 이어진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오래 기억하는 것도 결국 삶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조용하지만 깊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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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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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심장! 심장아!!!”
다 읽고 나니 이 외침이 자꾸 떠오른다.

이 책은 SF 소설이지만, 인간이 어디까지 인간성을 포기하고도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지를 묻는 철학적인 단편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다.

표지만 보고 감성적인 기계 인간을 다룬 서정적 SF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모데란》 속 세계는 전쟁과 폭력, 명령과 맹종으로 유지된다.
주인공은 ‘살점 인간’으로 태어나 열 번의 ‘성형’을 거쳐 몸의 대부분을 기계로 바꾸고 명령을 내리는 자 10번째 성체가 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작은 ‘살점’ 하나만은 끝내 남겨둔다. 그 살점은 폭력과 통제의 세계 속에서도 양심, 후회, 고통, 그리고 사랑을 끝내 부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모데란』을 읽으며 되묻게 된다. 사이보그가 된 존재는 여전히 인간일 수 있을까? 우리는 전쟁과 권력, 효율과 규율 속에서 어디까지 스스로를 허용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설정은 압도적이며
어딘가 끝없이 불쾌하고 어지러운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미래와 SF라는 외피 속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무감각해진 인간성과 맹목적인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SF 팬이라면, 철학적 질문을 좋아한다면,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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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과 유산을 경험한 사람을 위한 책 - 국내 최고 난임·산과 전문의가 전하는 의학적 해법과 몸과 마음 돌봄서, 2025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최범채.김희선 지음 / 포르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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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보다 훨씬 넓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난임과 유산을 직접 겪은 사람은 물론, 그 곁에서 함께 울고 당황하고 위로하고 싶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계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난임과 유산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게 내가 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내 친구, 내 자매, 내 동료가 되지 않을 이유도 없죠. 그런데 우리는 이 주제를 조심스레 피하거나, 잘못된 인식으로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직접 쓴 이 책은 따뜻한 위로와 함께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인 의학 정보를 담고 있어 단지 마음만 어루만지지 않고 실질적인 방향까지 제시해 줍니다. 정확히 아는 것이 힘이 되고, 그 지식 위에 놓인 진심 어린 말들이 마음의 위로를 전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불안정한 지식으로 의사가 권하는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있는데,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더 믿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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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군함의 살인 - 제33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작
오카모토 요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톰캣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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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추리하는 추리물보다는
공간을 탐험하고 단서를 찾아가면서도
등장인물과의 관계, 상황을 파악해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선함이라는 공간이 선사하는 색다름과,
개성 넘치는 선원들,
적응하기 힘든 선원 생활 속에 생기는 동지애,
공간이 주는 웅장함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잔혹하고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릴과 힘참이 느껴졌습니다.
열자마자 끝까지 다 봐버린 마성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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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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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은 왜 항상 평가의 대상이 되는 걸까?”
《바디올로지》는 이 익숙하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에 대해 시원한 답을 던지는 책입니다.

살집은 감춰야 할 것이 아니고, 거식증은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가한 억압의 증상이라는 것을 날카롭게 짚어줍니다.

하이힐, 성형, 다이어트, 피부색, 성적 대상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몸에 대한 기준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만든 규칙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읽는 내내 “맞아, 나도 이런 시선 받았었지” 싶었고,
특히 여성의 신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그럴싸하게 하려는 주장들을 보면서 분노했습니다.

《바디올로지》는 ‘몸’이라는 구체적인 언어로
우리가 살아온 시대, 억압, 생존을 이야기 합니다.
불편하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파고드는 힘이 있는 책이에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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