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깬다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4
서동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4월
평점 :
단단하게 굳어 있던 무언가가 부서지고 깨어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과정을 담은 청소년 성장 소설이었다.
내가 섬세하면서도 무심하고, 세상을 방관하는 고등학교 1학년 남고생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버릴 줄이야!
인간이 싫다며, 세상과 자신 사이에 벽을 세우고 살아가는 하준이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외로움과 반항, 그리고 고립의 감정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만의 공간과 생각 속에 머물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외부 세계에 대한 실망과 두려움, 그리고 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 보인다. 이런 하준이가 자연스럽게 세상에 녹아드는 이야기는 어떤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복싱이라는 매개를 통해, 또 다원이라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이루어진다.
🔖시합도 나가서 자꾸 붙어 봐야 해. 맞아 봐야 때리는 법도 알게 되고, 아픈 줄 알아야 피하는 법도 배울 수 있어. p38
부딪혀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시행착오와 고통이 성장의 필수 과정이라는 이 진리는, 하준이 경험하는 변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다운을 만난 하준은, 그를 알고싶어진다. 타인에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는 스스로의 성장을 이루어가고 싶다는 다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다원이가 누굴 만나도 자신감 있게 잘하는 이유는 자기 거리를 확실히 알고, 그 영역을 유지할 수 있어서야. 우리 사는 거랑 똑같아. 누구를 상대하든 내가 편안한 거리에 있으면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 있지만, 그게 안 된다면 그때부터 힘들어지잖아. p 212
다원은 사람들과 가까이 하면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자신이 중심을 잘 잡고 있을 때, 세상과의 관계도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경기에서 쓰러지는 다원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웃음을 잃지 않은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실감을 느꼈다. 주변 인들이 느끼는 슬픔을 온전히 함께 느꼈다. 그리고 깨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함께 놓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학창 시절 나 자신을 떠올렸다.
이유 없이 모든 것이 불편하고,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워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던 시절.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누군가가 다가오면 마음을 닫았던 그 모순된 감정.
그런 내 모습들이 하준에게서 보였다. 그래서 하준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가 다원의 시합을 보며, 그와 함께 가고 싶어 하고 운동도 같이 해보고 싶어 하는 장면에서는 매우 뿌듯함을 느꼈다.
하준이 처음으로 나간 복싱 경기장. 나도 하준의 가족들과 함께 관중석에서 힘차게 응원했다. 맞으면서도 간격을 벌리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가며 시합을 펼치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했다.
『깬다』는 청소년 성장 소설이지만, 인간이 어떻게 관계 속에서 단단해지고, 때론 깨어지며, 다시금 자신을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인이 보기에도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매일 맞고 때리며 몸을 단련하는 일처럼,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부딪히며 성장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때론 아프고, 또다시 피하는 법을 배우며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간다.
하준의 성장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었고,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과거에 하준이었던 수많은 어른들에게도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딱 닫힌 결말이 아닌, 하준의 무궁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내포하는 열린 결말이 참 마음에 든다.
숨이 목끝까지 차오르는 달리기를 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