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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 펜연필독약 / 2019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정원가는 온 힘을 다하여 열망하는 존재다.” (p63)
눈을 뜬 아침, 부엌으로 향하는데 벽에 걸린 슈도립살리스의 마른 잎사귀가 걸음을 세웠다. 물을 듬뿍 주었는데도 여전히 말라있네. 걱정스런 마음에 흙부터 만져봤다. 손가락 끝으로 물기가 배어 있는 흙의 느낌이 전해졌다. 가까이 다다가 손을 대어보는 사이 흙 사이로 돋아난 이끼가 보였다. 흙이 마르면서 모두 시들어버렸던 이끼가 작은 잎사귀를 다시 키워내고 있었다. 이곳저곳 살펴보니 립살리스의 길다란 잎사귀 사이로 가느다랗고 작은 애기 잎이 두어개 돋아나 있었다. 내가 보낸 열망에 대한 화답이었다.
집에서 작은 화분이라도 키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작은 식물이 주는 놀라운 기쁨을. 하룻밤새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키워낼 때, 시들어가던 식물에 정성을 들이자 다시 생기를 회복할 때, 하루하루 다르게 꽃망울을 펼치는 꽃을 발견할 때 순수한 기쁨이 우리 안에 차오른다. 그리고 열망하게 된다. 이 작은 식물이 무럭 무럭 자라나길, 고운 꽃이 금새 져버리지 않길, 가녀린 줄기가 생명을 지속하기를…… 생명이 있는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기르는 일은 사람이 가진 선한 본성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정원가로 피워 날 떡잎을 품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카렐 차페크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정원을 가꾼 정원가였다. 소설, 희곡, 에세이, 동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철학적 통찰과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정원가로서의 애정을 듬뿍 담아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이 책에서 그는 모름지기 정원가라면 철마다 해야할 일이 있음을 열두 달을 나누어 친절하고 유쾌하게 설명해준다. 때가 되기 전부터 싹이 트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느라 잠도 못 이루며 조바심을 치는 모습과 온갖 식물과 모종에 대한 카탈로그를 잔뜩 모으고 심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모종을 사들이는 집착, 그리고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 정원가일지라도 반복하게 되는 실수 등이 유쾌한 어조로 전개된다. 정원가의 일상은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이어지며 시트콤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유머러스한 이야기 사이에는 어김없이 깊은 통찰이 담긴 문장이 슬쩍 끼워져있다. 한껏 무게를 잡는 게 아니라 한없이 가볍게 툭, 던져놓은 문장엔 인생을 살만큼 살고 공부를 할 만큼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성찰이 담겨있다.
카렐 차페크는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임을 강조하면서 그럼에도 정원을 가꾸겠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그래도 원하는 만큼은 해볼 생각이라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 그리고 당신이 벌인 일은 꼭 당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당신은 정원에 대해 그럴 의무가 있다. 나는 아무리 간편한 비법이 있다 해도 결코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정원가는 반드시 스스로 부딪히고 인내하면서 깨달아가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정원가들은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p200)
이 글에서 ‘정원’이라는 단어를 ‘삶’으로 바꾸어 읽어보자. 하루 하루가 고될 것이고 내가 벌인 일은 꼭 내가 마무리해야한다. 내 삶에 대해 그럴 의무가 있다. 그리고 누구도 삶에 대한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반드시 우리 스스로 부딪히고 인내하면서 깨달아가는 수 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그 날을 기다리며……각자의 생활을 꾸려가야 만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같다. 하지만, 그런 삶일지라도 분명 희망은 있다고 유쾌한 정원가는 강조한다.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신의 가호로 고맙게도 우리는 또다시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간다!” (p201)
이런 문단을 읽고 나면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떠밀리듯 살아넘기는 시간조차도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또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내년은 또 어떤 모습의 나와 삶이 펼쳐질까. 차페크의 마지막 문장에 기대어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내년의 삶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