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라파냐무냐무 - 2021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유아 그림책 부문 대상 수상작 사계절 그림책
이지은 지음 / 사계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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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와 타자 사이의 차이를 이토록 사랑스럽게 풀어내다니!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읽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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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 펜연필독약 / 2019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신의 가호로 고맙게도 우리는 또다시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간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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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 펜연필독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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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정원가는 온 힘을 다하여 열망하는 존재다.” (p63)

눈을 뜬 아침, 부엌으로 향하는데 벽에 걸린 슈도립살리스의 마른 잎사귀가 걸음을 세웠다. 물을 듬뿍 주었는데도 여전히 말라있네. 걱정스런 마음에 흙부터 만져봤다. 손가락 끝으로 물기가 배어 있는 흙의 느낌이 전해졌다. 가까이 다다가 손을 대어보는 사이 흙 사이로 돋아난 이끼가 보였다. 흙이 마르면서 모두 시들어버렸던 이끼가 작은 잎사귀를 다시 키워내고 있었다. 이곳저곳 살펴보니 립살리스의 길다란 잎사귀 사이로 가느다랗고 작은 애기 잎이 두어개 돋아나 있었다. 내가 보낸 열망에 대한 화답이었다.

집에서 작은 화분이라도 키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작은 식물이 주는 놀라운 기쁨을. 하룻밤새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키워낼 때, 시들어가던 식물에 정성을 들이자 다시 생기를 회복할 때, 하루하루 다르게 꽃망울을 펼치는 꽃을 발견할 때 순수한 기쁨이 우리 안에 차오른다. 그리고 열망하게 된다. 이 작은 식물이 무럭 무럭 자라나길, 고운 꽃이 금새 져버리지 않길, 가녀린 줄기가 생명을 지속하기를…… 생명이 있는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기르는 일은 사람이 가진 선한 본성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정원가로 피워 날 떡잎을 품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카렐 차페크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정원을 가꾼 정원가였다. 소설, 희곡, 에세이, 동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철학적 통찰과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정원가로서의 애정을 듬뿍 담아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이 책에서 그는 모름지기 정원가라면 철마다 해야할 일이 있음을 열두 달을 나누어 친절하고 유쾌하게 설명해준다. 때가 되기 전부터 싹이 트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느라 잠도 못 이루며 조바심을 치는 모습과 온갖 식물과 모종에 대한 카탈로그를 잔뜩 모으고 심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모종을 사들이는 집착, 그리고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 정원가일지라도 반복하게 되는 실수 등이 유쾌한 어조로 전개된다. 정원가의 일상은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이어지며 시트콤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유머러스한 이야기 사이에는 어김없이 깊은 통찰이 담긴 문장이 슬쩍 끼워져있다. 한껏 무게를 잡는 게 아니라 한없이 가볍게 툭, 던져놓은 문장엔 인생을 살만큼 살고 공부를 할 만큼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성찰이 담겨있다.

카렐 차페크는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임을 강조하면서 그럼에도 정원을 가꾸겠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그래도 원하는 만큼은 해볼 생각이라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 그리고 당신이 벌인 일은 꼭 당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당신은 정원에 대해 그럴 의무가 있다. 나는 아무리 간편한 비법이 있다 해도 결코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정원가는 반드시 스스로 부딪히고 인내하면서 깨달아가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정원가들은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p200)

이 글에서 ‘정원’이라는 단어를 ‘삶’으로 바꾸어 읽어보자. 하루 하루가 고될 것이고 내가 벌인 일은 꼭 내가 마무리해야한다. 내 삶에 대해 그럴 의무가 있다. 그리고 누구도 삶에 대한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반드시 우리 스스로 부딪히고 인내하면서 깨달아가는 수 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그 날을 기다리며……각자의 생활을 꾸려가야 만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같다. 하지만, 그런 삶일지라도 분명 희망은 있다고 유쾌한 정원가는 강조한다.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신의 가호로 고맙게도 우리는 또다시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간다!” (p201)

이런 문단을 읽고 나면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떠밀리듯 살아넘기는 시간조차도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또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내년은 또 어떤 모습의 나와 삶이 펼쳐질까. 차페크의 마지막 문장에 기대어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내년의 삶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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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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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완전함’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애써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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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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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휴학하고 대입시험을 다시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저녁 엄마와 너른 운동장을 걸으며 운동을 했었다. 하루는 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험을 다시 보는 이유와 그렇게 해서 얻고 싶은 일에 대해서였다. 잘 다니던 학교를 쉬면서 시험 공부는 하고 있는 딸의 상황이 답답했을 엄마에게 어떤 식으로든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도 엄마는 걱정스런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엄마의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내가 했던 답변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잘 될거야. 그냥 잘 될 거라고 믿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런 막연한 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 때는 그랬다. 내 인생이 크게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확고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이가 들면서, 예상치 못한 비극을 맞닥뜨렸고 실패가 거듭되었다. 그러자 확신은 옅어 졌다. 이제는 최악의 경우를 먼저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삶은 계속 되어야 할테니까, 비극의 백신을 미리 맞아 둔다. 산다는 것은 그런 힘을 비축해 둬야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비극의 백신같은 책이다. 우리 삶이 생각보다 쉽게 비틀어지고 망가지며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상처입을 수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아홉 개의 이야기는 입을 모아 읊조린다. 우리 삶이 잘못되는 일은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지독한 가난,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외도,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으로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나 버린 사람들이 있다. 삶이 지속될 수 있을까 싶게 위태로운 순간에도 그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긍정한다. 상처를 끌어안고 손을 내민다.

"우리 모두 너나없이 엉망이야. 앤젤리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사랑은 불완전해, 앤젤리나.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P75)

삶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우리의 사랑 또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이상하게 비어 드는 다행감이 있다. 그 순간 주변의 인간 군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연민의 감정이 차오른다. 저 밖의 불행한 삶이 남의 것이라는 경계는 허물어지고 언제고 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의 비극을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기꺼이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불가능함에도 지속되는 사랑과 서로에게 내미는 선의가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곧 구급차가 속도를 높이자 에이블은 공포가 아닌 묘하고 강렬한 기쁨을 느꼈다. 온갖 문제들이 그 껍질이 벗겨진 채로, 혹은 지금도 계속 벗겨지면서 돌이킬 수 없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는 데서 오는 지극한 행복감을…… (중략)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P346~347)

삶이 완전할 것이라는 믿음은 더이상 없다. 삶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자 삶의 비극 또한 긍정할 수 있었다. 엉망진창이더라도 살아나갈 힘이 생겼다. 그러자 책의 제목이 다시 읽혔다. 모든 것이 불완전할지라도 삶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라고.

살아간다는 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완전함’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애써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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