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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ㅣ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은교 씨는요, 하고 무재 씨가 젓가락으로 계란을 자르며 말했다.
은교 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계란 먹을래요?
네.
무재 씨는 반으로 자른 계란을 집어서 내 그릇에 넣어 주고 나머지 반쪽을 입에 넣었다. 멀리 떨어진 면옥의 벽에 걸린 거울을 보니 무재 씨의 맞은편에서 나는 얼굴을 매우 붉히며 앉아 있었다. 왜 그렇게 땀을 흘리느냐고 무재 씨가 물었다. 탕이 너무 뜨거워서, 라고 말하며 나는 냅킨으로 땀이 밴 이마를 눌렀다.
『백의 그림자』 황정은 p39-40

따옴표도 없이 오가는 대화가 유독 생생했다. 가끔 누가 한 말인지 헷갈려 다시 읽어야 했지만 이야기를 서술하는 문장과 대화하는 문장이 분리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것이 물감이 잘 번진 수채화 같았다. 대화하는 문장들 사이에는 여백이 많았고 그 여백 사이에서 나는 오래 서성거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그 속에 가만히 서 있자 '눈꺼풀이 젖어서 묵직해졌다. 아래쪽으로 늘어진 열 개의 손가락 끝에 물방울이 맺혔다.' 하나는 먹먹함이었고, 또 하나는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안도와 안심, 그리고 다만, 이라는 그칠 수 없는 바람도 있었다.
은교와 무재는 철거를 앞두고 있는 전자상가에서 일하고 있다. 상가 전체의 단합 소풍을 갔던 날 은교는 숲 속에서 그림자가 일어나는 경험을 하는데 그림자를 따라가려는 은교를 무재가 붙잡는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종종 이야기도 나누며 가까워진다. 『백의 그림자』는 은교와 무재,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를 담백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둘이 일하는 전자상가는 발전을 내세우는 도시 속에서 '소외된 공간'으로 대표되는 곳이다. 도시는 그 지역을 '슬럼'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작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 곳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이라 선을 긋고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려한다. 당장 철거를 앞두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 은교와 무재 주위에 있다. 계속 보아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과 불현듯 그림자가 일어섰다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에서는 사회가 휘두르는 폭력에 소리없이 스러지는 사람들, 어쩔 도리 없이 그림자가 일어서 버리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래서 『백의 그림자』는 은교와 무재의 연애 이야기이지만 사회의 폭력에 노출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무사라고, 할아버지가 전구를 파는 가게인데요. 전구라고 해서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 원 가량 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구들이거든요. 오무사에서 이런 전구를 사고 보면 반드시 한 개가 더 들어 있어요. 이십 개를 사면 이십일 개, 사십 개를 사면 사십일 개, 오십 개를 사면 오십일 개, 백 개를 사면 백한 개,하며 매번 살 때마다 한 개가 더 들어 있는 거예요.
잘못 세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하나, 뿐이지만 반드시 하나 더, 가 반복되다 보니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날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빤히 보시더라고요. 뭔가 잘못 물었나 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다 갔다 하지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 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무재 씨. 원 플러스 원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무재 씨도 그런 것을 사 본 적 있나요.
가끔은.
하나를 사면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준다는 그것을 사고 보면 이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배려라거나 고려라는 생각은 어째선지 들지 않고요.
그러고보니.
오무사의 경우엔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그랬군요. (p94-95)
무재 씨는 오른손에 마른 메밀 면 한 줌을 쥐고 서서 냄비 속을 들여다보았다.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는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p143-144)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고 인생이 원래 허망하지만 더욱 허망한 삶이 있다는 것을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책은 커다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작은 돌맹이같다. 비록 작지만 떨어진 어딘가에 분명히 파문을 남기는 것처럼.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의욕과
기운을 잃어버린, 그래서 결국 그림자가 일어서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헛헛한 이야기 속에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건 조용한 배려와 바람 때문이겠다. 따뜻한 국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국 한 그릇을 내어주는, 무재와 은교 사이의 의연한 사랑 같은 것이 사람들을 살아가게 한다. 사람들 사이에는 무작위로 건내는 1+1 따위가 아니라 마음을 헤아리는 꼬마 전구 하나, 배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따끈한 한 그릇'이 필요하다. 그런 배려들이 모여 세상을 더 촘촘하게 엮어줄 것이라는 바람이 읽힌다. 그 바람은 은근하지만 퍽이나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