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 시각에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세상의 거대하고 긴박한 어둠 속에서 출

발한다. 집은 무척이나 춥다. 겨울은 향로를 흔들며 마을을 돌아다니지만, 그 향로

에서는 연기나 향내는 나오지 않고 소금과 눈의 불쾌한 쇳소리 같은 솔직함만 나온

다. 나는 어둠 속에서 옷을 입고 서둘러 나간다. 잠이 덜 깬 개들이 몇 발짝 따

라오다가 사라진다. 물이 차갑고 단단한 모래에 활기차게 부딪친다. 나는 그것이

바다가 말하는 언어라도 되는 양 귀 기울여 듣는다. 하늘엔 별도 없고 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밀물이 들어오는 걸 알 수 있다. 바다가 노래하듯 말하고, 가로등

과 부두의 주황색 불빛 덕에 조금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가느다란 은빛

줄무늬가 들어간 검정 레이스를 흔들어 과시한다. 이따금 개들이 행복한 발로 모래

밭을 질주하다 돌아온다. 우리가 다시 방파제에 이르러 마당을 건너기 전에 밤은

지나가버린다. 우리는 집 문 옆에 서 있다. 우리는 날카롭고 흰 낮으로 이어지는

연푸른 반도에 서 있다. 작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장미 덤불 아래서 뛰어간다.

개들이 기분 좋게 짖어댄다. 

  날마다 하루가 이렇게 시작된다." 


휘파람 부는 사람중 겨울의 순간들, 메리 올리버, p137~138




 



 

  얼마전 인왕산 자락길을 걷다 손가락 두 마디 만한 벌이 길가에서 기어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벌레라면 무조건 겁부터 먹는 우리는 벌과 일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멈춰섰다. 벌이 어찌나

크던지 노란 얼굴의 커다란 까만 눈, 꼬리부분의 까만 줄무늬가 도드라져 보였다. 징그러웠지만

신기했다. 영화나 만화 속에서 나오는 벌 캐릭터처럼 서서 말이라도 할 것 같았다. 징검다리처럼

나무 판자가 놓여진 길은 어른 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벌의 옆을 지나는 사이 커다란

벌이 갑자기 날아오르기라도 할까봐 우리는 한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 벌

이 어떻게 할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뒤이어 오는 사람들은 흘끗

쳐다보고 그냥 가거나 아예 벌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그러다 결국엔 무심한 아저씨의 운

동화 뒤축에 벌의 몸통이 밟혀버리고 말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순간 벌이 몸을 떠는가 싶

었는데 뒤따르던 아저씨가 발로 밀어 숲 속으로 떨어뜨렸다. 너무 끔찍했다. 커다란 벌이 밟혀 짓

이겨진 것이 상상이 되어 몸서리가쳤다. 그런데 더 끔직한 것은 벌을 밟고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냥 걸어가는 아저씨와 그냥 쓰윽 발로 밀어 버리고 말던 또 다른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어쩜 그렇

게 무감각하고 무심할 수 있을까. 


 그런 벌을 발견했다면 하루 종일이고 곁에 앉아 관찰할 사람이 있다. 시인 메리 올리버, 그녀는

아마 관찰을 넘어서 그 벌이 되었을 것이다. 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벌의 마음으로 생각했

을 것이다. 그녀는 집 구석 계단에서 거미줄을 치고 살고있는 거미를 지켜보았다. 암거미가 알주머니를 만들고 그 속에서 새끼 거미들이 나오는 모습을, 거미줄에 걸린 귀뚜라미를 서서히 잡아

먹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관찰자가 되어 기록했다. 그리곤 그 집을 떠나야할 때 거미줄 가장자

리에 알에서 깨어난새끼 거미들이 가득한 것을 보곤 청소부에게 그 계단을 청소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생명의 변화는 언제

나 놀랍고 신비한 마법과 같은 일이다. 못난 것과 이쁜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에 대한 구별도

없다. 한없이 공평한 눈은 모든 생명의 구석 구석에서 놀라운 발견을 찾아내곤 한다. 그녀는 자연

을 어떤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겸손하게 그 일부가 될 뿐이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시골 마을에서 매일 바닷가와 숲 속을 산책하며 자연과 주고 받은 영감으로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소설가 김연수가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라며 소개했던『완벽

한 나날』로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때의 신선한 충격이 떠올라 『휘파람 부는 사람』을 찾

아 읽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그녀의 글은 도시 생활에 뿌옇게 흐려진 눈과 마음을 청량하게

닦아준다. 온전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놀랄 만큼 촘촘하다. 그 시

선을 통해 읽는 세상은 EBS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세밀하고 정교하다. 하지만 그녀의 자세는 남

다르다. 오랜동안 지식을 쌓아왔지만 지속적인 허기를 느꼈던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그 허기를

채우기로 한다. 증명 가능한 것들 너머의 정신성에서 직관으로 명확하게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찾고 그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녀는 마치 인간계와 자연계를 오가는 정령처럼 그녀만이

발견할 수 있는 기운과 노래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그 영혼에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는 일을 그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를 지나쳐 숲으로 들어왔다. 오솔길 근처에 키 큰 단풍나무 한 그

루가 쓰러져 있다. 지금은 초봄이라 주름진 적살객 꽃잎이 피어나기 시작한 상태다. 쓰러질

때 받은 충격으로 나무껍질이 여기저기 갈라져다. 하지만 그 단풍나무는 서 있을 때와 거

의 다름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다. 예전처럼 바람 그물 노릇을 잘하진 못하지만 말이다. 이제

그것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를 지닐까? 나태함은 결코 아니고 여전히 야망과

견줄 수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걸 휴식이라고 부르자. 나는 그 단풍나무 가지 하나에 앉는다. 나는 한가함을 누려도 괜

찮다. 나는 만족스럽다. 내 집을 지었으니까. 부전나비라고 불리는 청색 나비들이 비밀 장소

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짝거리며 날아오른다. 비들은 작은 청색 옷을 입고 나뭇가지 사이

로 나풀거리며 날다가 내게 다가온다. 한 마리가 잠시 내 손목에 앉는다. 나비들은 나를 단

풍나무와 크게 다른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육중한 몸으로 땅에 누워 햇

살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반쯤 잠들어 있는, 잎사귀에 감싸여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

는 이 나무 궁전과."

p30~31



 "한번은 숲에 들어갔다가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푸른밀화부리를 발견했다. 검정에 가까운 짙푸른 깃털과 육중한 부리를 가진 그 새는 무성한 초록 나무 잎사귀들에서 등이 굽은 연초

록색 애벌레를 한 마리씩 쪼아 먹고 있었다. 푸른밀화부리는 이내 잎사귀들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고 바로 그 순간 나무 꼭대기에서 멕시코파랑지빠귀가 날아왔다. 고향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곳까지 온 작은 연청록색 개똥지빠귀였다. 그보다 멋진 순간은 경험하기 힘들지만,

내겐 가능했다. 나는 천사 둘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자동차 옆을 지키며 조용히 서 있었

다. 그들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왔고 발치에서는 불꽃이 소리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순

간, 그런 기억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저 소중히 간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알

려진 것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 수 겠는가? 빛의 비밀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의 집에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재에서 싸구려이

거나 하찮은 걸 모두 치워야 하지 않을까? 늘 희망과 기쁨, 흥분 속에서 살아야하지 않을

까?"

p156~157 



 자연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기억이 아니라 영혼에 저장된다. 초등학교 과학

반 활동 중 천체 망원경으로 쌍둥이 별을 보았던 밤, 중학교 수련회 때 검은 하늘을 빼곡히 뒤덮

은 별들 사이로 흐르던 은하수를 보았던 밤이 그렇다. 돌고래를 만지고, 조랑말을 쓰다듬었던 느

낌, 손바닥을 쪼던 새의 딱딱한 부리의 감촉도 있다. 다른 세계로 통할 것 같았던 하얗게 눈이 쌓

인 전나무길, 깊은 해저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들을 마주했던 거대 수족관, 어둠이 내린 포도밭에

날아다니던 반딧불이와 고대 원형 극장의 옅노란 조명 위로 떠오르던 반딧불이도. 이런 기억들은

특수 인화지에 찍힌 사진처럼 영원히 색이 바래지 않는다. 영혼에 쌓여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메리 올리버의 노랫말처럼 언젠가 새끼 양이고 나뭇잎이고 별이고 반짝이는 연못물이 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은 아니지만 곧 우리는 새끼 양이고 나뭇잎이고 별이고 신비하게 반짝이는 연못

물이다"



 어제 점심을 먹으러 한 일식당을 찾았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하얀 나비가 날개짓을 하며 내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 날개짓이 가을 햇살에 유난히 눈부셨다. 나비는 깜짝 놀란듯 나를 피해 날아갔

다. 아쉬웠다. 잔 별무늬가 그려져있던 원피스 자락 위에 살포시 앉아주지, 싶었던 마음은 메리

올리버의 영향이 아닐까. 잠시 영혼이 깨어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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