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안녕한 여름 - 서른, 북유럽, 45 Days 그리고 돌아오다
홍시야 지음 / 소모(SOMO)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무덥고 습한 날씨에 지쳐 우울해지던 어느 날 

『서른의 안녕한 여름』이 도착했다. 



그림을 그리는 홍시야가 45일동안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쓴 짧막한 글과 작은 사진들,

그리고 쪼물쪼물 그려낸 그림들이

아기자기하게 담긴 책이다.

 특별한 기대없이

"어딘가에 닿게 되겠지"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길을 나서는 홍시야의 모습이

휴가도 가지 못한 채 습한 공기만 들이 마시느라 마음마저 눅눅해진 나에겐

오히려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해주었다.

 
소모에서 나오는 책들이 그러하듯

깔끔한 표지에 살포시 내려앉은 홍시야의 꼬물꼬물 그림을 보니

빙그레 웃음이 번졌고

스르륵 넘겨본 책장 사이로는

무심히 지나치기 십상일 거리 거리의 보물들이 찍힌 사진들이 빼곡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졌다.



이 책장들을 한 장 한 장 다 넘기다보면

꼭 어딘가에 가 닿게 될 것 같은 기분. 



서른.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 나이인가.

그럼에도 홍시야는 서른의 나이에 45일간의 유럽 여행을 떠나면서도

"어떤 것도 서두르고 싶지 않은 여행입니다.

빈 노트를 갖고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나를 탓하거나

그 어떤 것에 애쓰고 싶지 않은 여행"이라며 여유가 있다.

그래, 어쩌면 이것도 서른이기 때문에 내보일 수 있는 배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싹 비운 마음으로 시작해서인지

홍시야의 지도도 없이 무작정 걷는 여행에서는

마술처럼, 우연한 행운처럼 멋진 일들이 일어난다.

 

핀란드의 바닷가를 산책하다 RECATTA라는 빨간 통나무 카페를 발견하고

눅시오 공원에서는 라마라는 친구를 만나 홍차를 얻어마시는 행운을 만난다.

코펜하겐에서는 일본인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아쉬운 작별을 하기도 하고

스칸센에서는 삐삐를 만나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달빛 쏟아지는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며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낸다.

파리 튈르리 공원 호수 앞에서는 해지는 풍경을 구경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암스테르담, 비를 피해 들어간 서점에서는 파울로 코헬료의 책 한 권을 사들고

뿌듯해한다.

 



 

비록 내가 직접 떠난 여행은 아니지만

마치 내가 RECATTA를 발견한 듯,

내가 라마나 일본인 친구를 만난 듯,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림들을 맘껏 보고

숲이 우거진 공원 길을 누비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서점에선 보통이나 사강, 하루키의 책을 발견한 것과 같은

기쁨을 느낀다.

 

여행의 재미란 이런 것이었지!

여행에서 얻는 보물들은 언제나 뜻하지 않았던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되었지.

문득 나의 지난 여행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끄집어 내 보고 싶은

충동이 일면서 풀죽어있던 세포들이 파다닥 기운을 차린다.

 

 

요만큼만으로도 족한 책이다.

소모만의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편집에

슈크림같은 홍시야의 몽글몽글한 그림.

그곳에서 안녕을 전하는 그녀의 글은

 짧막하고 수수해서 아는 후배의 싸이월드를 구경하듯이

파릇파릇한 느낌이다.

 



이십대처럼 뜨겁진 않지만 따뜻한 마음.

과도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아 덜 부담스러운 자아.

이것 저것 다 보려는 욕심에서 3분의 1정도는 덜어낸 여유가 있는 삼십대.

홍시야처럼 천천히 걸으면 

언제나 "안녕한 여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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