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 아니 에르노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6일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개인적인 기억의 뿌리와 소외, 집단적인 구속을 드러낸 용기와 꾸밈없는 날카로움”을 수상 이유로 꼽았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의 이브토, 카페 겸 상점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문학을 공부한 후, 정식 교원, 현대문학 교수 자격증을 획득했고 1974년 <빈 옷장>으로 등단했다. <남자의 자리>로 르노도상을,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단순한 열정>, <사진의 용도>, <한 여자>, <부끄러움>, <다른 딸>등이 있다.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 경험에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 채 사건의 경험과 진실만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글을 써 왔다.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밀도 있게 파헤친 그녀의 작품은 개인의 문제가 계급과 계층, 사회 문화적 구조와 동떨어져 발생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의 글은 ‘칼 같은 글쓰기’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상처에 칼을 대어 그 핵심을 파고 넓혀 밖으로 꺼내 놓는 방식. “글쓰기는 현실을 보여 주기 위해 겉으로 드러난 것들을 찢는”(<진정한 장소>, 신유진 옮김, 1984books) 행위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에게 깊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상황을 낱낱이 드러내어 개인적 경험에 담긴 사회·정치적 의미를 묻는다.
아니 에르노 문학의 시초, <빈 옷장>
작가의 데뷔작 <빈 옷장>은 부모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신분 상승을 꿈꾸는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다룬다. 불법 낙태 시술이라는 충격적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사회가 침묵하는 것에 저항하는 에르노식 문학의 시초를 보여준다.
도시의 변두리에서 빈민층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부모를 둔 ‘드니즈 르쉬르’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소녀는 사립학교로 진학하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학교와 선생님, 중산층 가정이라는 청결하고 예의 바른 세계와의 대면을 통해 자신과 부모, 동네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에 수치심이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