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던 이층 집에는 마당이 있었다. 집과 마당을 담벼락이 둘러쌌다. 집과 담 사이로는 한 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었는데 그리로 들어가면 창고가 나왔다. 통로에는 잡풀이 자라고 죽은 식물의 줄기와 까만 먼지, 어디서 왔는지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창고의 상태도 비슷했다. 바닥에는 낡고 더러운 판자가 널려 있고 쓰지 않는 연탄과 더러운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쪽엔 재래식 화장실이 딸려 있었는데 어린 시절 많이 들었던 귀신 이야기에 등장할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낡은 창고를 알게 된 시점은 쓸모가 사라진 다음이다. 보일러 실이었지만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않는 곳. 버려진 폐허. 귀신이 출몰할 것 같은, 더럽고 괴기스러운. 그러므로 위험한 곳, 금지된 장소.
그 통로를 지나 창고를 갔던 건 몇 번이나 될까. 모든 기억은 하나로 통합되었다. 혼자 몰래 거길 갔던 기억만 남았다. 들어가면 안 되는 곳, 열면 안 되는 문. 내 안에 새겨진 금지의 명령을 위반했던 순간. 뒤돌아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기어코 한 발을 내딛고 있던 기묘한 마음. 무섭게 두근거리면서도 강렬한 열망을 뿜어내던 심장을 기억한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홀린 듯 문을 열었던 순간을.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김도연옮김, 1984books)을 읽다 그때 그 소녀의 마음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교감했던 늑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은 가출을 일삼으며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늑대의 환영을 떠올리며 빽빽하게 둘러싼 삶이라는 가림막 사이에서 틈새를 발견한다. 길들여지지 않는 마음, 그러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는 틈새를 가뿐하게 넘나 든다. 때로 음악과 글쓰기로 잠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