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서향 창으로 보여주는 기억의 창고에는 어린 시절을 보낸 빨간 벽돌 이층 집과 아기였던 그녀를 등에 업고 재워주던 미자와, 친구 희와 지영이, 그리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번역 일로 알게 된 문학평론가를 통해 특별한 곳이 된 리스본에 대한 기억과 뱃속의 아이를 잃었던 은밀한 상처도 있다. 때론 부끄러이 여겼던 어릴 적 추억은 어느새 아련하고 안타까운 것이 되었다. 돌아갈 수 없기에 그리움의 먼지만 뽀얗게 앉은 기억들. 먼지는 빛이 타버리고 남은 재가 아닐까. 한때 찬란하게 우리 앞에서 빛났던 시간들이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작가는 먼지 앉은 그 기억을 이렇게 부른다. “멀어진 것들이 남기고 간 굴곡진 풍경 같은 것, 그러니까 시간의 주름.”(27쪽) 일기장에, 빛바랜 편지 속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를 작가는 ‘시간의 주름’이라는 이름으로 펼쳐 보여준다. 그 주름 사이에 고인 것들이 낡고 부질없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곳에서 작고 희미한 빛을 품고 있다는 걸, 슬픔과 기쁨, 다정과 온기, 기다림과 사랑임을 살뜰하게 그려낸다. 어쩌면 그곳의 빛이 이곳의 어둠을 밝혀 우리를 지탱해주는지도 모르겠다고. 그걸 바라보는 사이 내 기억의 빛깔도 미세하게 바뀌는 것 같았다.
초록색 대문이 달린 이층 집에 살았던 기억, 잠시 일을 했던 엄마 대신 살림을 봐주었던 먼 친척 이모할머니, 새우깡과 짱구를 나누어 먹고 테이프 앞 뒷면을 좋아하는 노래로 꽉 채워 교환하곤 했던 친구 미연이와, 지금도 만나면 그때 순정 만화책을 나눠 보던 일을 회상하며 깔깔거리게 되는 연정이, 그리고 떠올릴 때마다 그 끝에 슬픔이 맺히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 진다. 이상하다. 나는 신유진이라는 작가의 기억을 들여다보았을 뿐인데 거기서 내 기억으로 통하는 창을 발견한다. “모든 순간이 연결되는 지점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작가처럼, ‘내’가 있어 그녀의 기억과도 연결이 된다. 나는, 우리는, 이렇게 “어디에나, 있다.”(119쪽)
빛을 보여주는 남향 창의 분위기는 서향 창과 또 다르다. 그녀의 창에서 보았던 고라니와 그걸 함께 본 강아지와 나눈 무릎 키스, '눈(雪)'에 대한 기억과 ‘숨’으로 연결된 세상, 엑상 프로방스에서 페터 한트케와 세잔과 같이 걸었던 일, 뒤라스의 바다, 세르지의 은퇴 공연과 언젠가 살았던 프랑스 시골 마을 집 창 밖의 사람들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진다. 서향 창에선 과거의 기억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갔다면 남향 창에서는 창 밖으로, 나의 외면으로 시선이 나아간다. 그 경험을 통해 작가가 깨닫는 것은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자신의 내면이 된다는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