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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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 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나는 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72쪽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창비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갈등하고 번민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이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내일이면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으며 매번 흔들린다. 이토록 불완전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다들 자기만 아는 부족함을 끌어안은 채 날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런 내게 백수린 작가의 문장은 더없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소설가 백수린의 에세이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는 작가의 작지만 커다란 삶이 담겨 있다. 작가는 재개발 위기에 처한 동네에서 낡고 오래된 것들에 애정을 쏟으며 살아간다. 창이 있는 작은 단독 주택에서, 동네의 좁은 길을 걸으며 계절이 오가는 걸 다정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봉봉이라는 나이 들고 병든 개와 함께 살며 생명 있는 모든 것의 고유한 가치를 알아간다.



그녀는 담벼락을 나란히 한 이웃과 음식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한 동네에 살게 된 이모, 언니와 도탑게 온기를 나눈다. 폐지를 줍는 아주머니를 위해 모아두었던 상자와 이면지를 가져다 주고 전철역에서 살구를 담아 파는 노파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춘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살고 바라보고 쓰는 삶을 지속하면서 알게 된 집과 동네, 사랑과 아름다움, 인생에 대해, 작가는 자기만의 정의를 조곤조곤 풀어낸다.



“내 것이 아닌 욕망과 거짓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곳이 비로소 집이 될 수 있으며, 동네란 오래오래 걷고 겪어 육체성을 지니는 공간이라고 알려준다. 사랑이란 “고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을 향해 흐르는 강물”임을. “어떤 아름다움은 소유하지 않아 존재”할 수 있고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 모르는 아름다움이란 “도처에서 저마다의 빛을 품은 채 자라고 있다”고 속삭여준다.



쉽게 답을 건네기보단 답의 씨앗을 심길 좋아하고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구멍을 채우는 일의 불가능을 인정하는 작가. 그녀의 시선은 무엇도 섣부르게 단정하지 않고 대상화하지 않는다. 매번 고민하고 망설이며 다가간다.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을 알아채고 세월의 무게가 지닌 품위와 존엄을 귀히 여기는 작가의 문장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두를 긍정해주는 것 같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겠지만 슬픔이 너무 커서 세상에 대해 원망만 가득했던 마음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들에 황홀함으로 물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정해놓은 목적지도 없이 팔랑팔랑, 느릿느릿 걷는 매일매일이 쌓이는 동안 내 눈길이 오래 머무는 모든 것의 이름 또한 틀림없이 ‘아름다움’ 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도처에서 저마다의 빛을 품은 채 자라고 있다.”

142쪽



글을 읽으며 그녀가 자신의 집 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에 가만히 시선을 포개는 모습을 그려보다, 내 방 창으로 보았던 나만의 풍경을 떠올렸다. 올봄 이사한 집, 아파트지만 일층인 이곳에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내게 새벽은 모두가 잠든 고요의 세계였다. 하지만 그 시간에 서둘러 하루를 시작하는 이가 있다는 걸 이 집에서 알게 되었다.



아직 어둠이 짙은 4시 45분이면 날마다 내 방 앞 놀이터 옆에 멈춰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는 봉고차가 있다. 잠시 후 드르륵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면 차는 분주하게 자리를 뜬다. 처음엔 그 소리가 불청객처럼 난폭하게 들렸지만 날이 갈수록 다시 한번 나를 깨우는 알람 소리가 되었다. 어떤 이는 날마다 4시 45분에 일을 하기 위해, 혹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봉고차에 오른다. 그이는 나보다 더 이른 시간에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을 것이고 가만히 앉아 잔잔한 고요를 누리는 나와 전혀 다른 모양의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있을지 모른다.



비 오는 날을 유독 좋아하지만 그날이 누군가에겐 가혹할 정도로 힘든 날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놀이터 옆 빈 터는 택배차들이 차를 대놓고 짐을 내리는데 쓰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유난히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여름, 빗줄기가 거센 어느 날 비옷을 입은 택배 아저씨가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 택배 상자를 쏟아내 정리하는 걸 보았다. 그 뒤로는 비가 오는 게 좋다고 소리 내어 말하는 걸 망설이게 되었다.



매주 화요일이면 분리배출한 재활용 쓰레기를 싣고 가는 트럭이 온다. 집게손이 달린 트럭이 와서 밤새 사람들이 내놓은 박스와 온갖 쓰레기를 싣고 가는데 그 시간이 꽤나 길게 걸린다. 집게손이 쓰레기를 옮기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요란한 기계음이 난다. 처음엔 시끄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창문을 닫았는데, 요즘은 조금 다른 마음으로 지켜본다. 소음이 들리는 시간만큼이 우리가 버린 쓰레기의 양이라는 걸 아니까. 가볍고 즐겁게 쓰고 쉽게 버릴 줄만 알았지 그걸 버리는 일의 과정과 수고로움은 미처 생각지 못했으니까.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그렇게 많다는 것과 누군가는 그걸 옮기느라 수고하는 일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파트에 살지만 일층이라 지상으로 연결된 내 방 창으로는 타인의 삶이 문득문득, 가만가만 비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 나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지는 삶의 풍경을 본다. 이것들을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날씨가 허락하는 한은 방해가 되더라도 가능한 창문을 열어 놓으려 한다. 아파트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과 연결된 통로 하나를 얻은 것 같아서. 문을 닫으면 들을 수 없고 커튼을 내리면 볼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며칠 새 단풍의 색이 짙어졌다. 그런데도 자고 일어나면 빛나듯 색을 토하던 잎들이 뭉텅뭉텅 바닥에 떨어져 가슴이 아릿해지는 날들이다. 발그레 색이 고운 홍옥을 먹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감홍 몇 알을 지나 부사를 먹는 날에 당도했다. 백수린 작가가 작은 집의 창문으로 바라보던 계절의 새 얼굴을 나 또한 지나침 없이 바라보고자 계절 과일을 챙기고 운동화를 신고 동네를 걷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하루는 짙은 보라색으로 잘 익은 무화과가 보여 욕심껏 두 상자를 사 들고 왔다. 반으로 가르면 과육 안에 고여 있던 꿀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무화과를 파스타를 차린 저녁 식탁에 반찬처럼 먹었다. 그렇게 한 상자는 날 것으로 달게 먹고 나머지 한 상자는 다음 계절을 위한 잼으로 만들었다.



과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게 설탕을 줄여 넣고 작은 불에서 뭉근하게 끓였다. 잼은 만드는 동안에도 집 안 가득 달큼한 냄새가 고이는 일이라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지막엔 레몬을 넣어 마무리하고 사용하고 씻어 보관해 두었던 유리병에 담았다. 가을의 초입 짧게 왔다 가는 무화과를 병에 담고 보니 아쉬운 마음이 적힌 편지 한 통처럼 반가웠다. 토스트에, 플레인 요거트에 올려 먹으며 지난 계절의 즐거움을 떠올릴 어느 날이 기다려졌다. 잼을 사는 대신 제철 과일을 졸이고 가지고 있던 병을 재사용해 담았으니 그날은 실천과 실패를 오가는 환경을 위한 행보에서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할 수 있겠지.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59쪽



매일매일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매일매일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이제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는 완고함보다 기꺼이 흔들릴 수 있는 유연함이 더 좋다. 목표를 향해 빠른 길로 직진하겠다는 단호함보다 때에 따라 멈추고 멀리 돌아가기도 하는 망설임을 더 사랑한다. 뻔히 보이는 직선보다 머뭇거림으로 리듬이 만들어지는 궤적이 더 아름다울 걸 믿게 되었으니까. 그 궤적은 백수린 작가의 말처럼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것이다.



작가의 목소리처럼 가늘고 미세한 울림을 지닌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녀의 조심스러운 마음과 걸음걸음이 가만하게 눈을 맞춰주는 것 같아 내내 찬란하게 기뻤다. 답을 내릴 수 없어 갈팡질팡하던 마음, 지나치고도 마음에 남아 우물을 파는 일을 애써 떨쳐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내가 막연히 품고 있던 세계, 연약하고 상처 투성이지만 고유한 무늬로 아름다운 세계의 윤곽이 조금 또렷해진 기분이다. “섬세하고 연약한 물성을 지녔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견고한 표정을 짓”는 유리병처럼, 영롱한 언어로 그것들을 적어준 작가 덕분이다.



마음에도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그릴 수 있는 트레이싱지가 있다면 백수린 작가의 마음 위에 대고 천천히 따라 그리고 싶다. 여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기분>에 그려진 마음의 오솔길을.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이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 P59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겠지만 슬픔이 너무 커서 세상에 대해 원망만 가득했던 마음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들에 황홀함으로 물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정해놓은 목적지도 없이 팔랑팔랑, 느릿느릿 걷는 매일매일이 쌓이는 동안 내 눈길이 오래 머무는 모든 것의 이름 또한 틀림없이 ‘아름다움’ 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도처에서 저마다의 빛을 품은 채 자라고 있다. - P142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 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나는 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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