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져들 때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이런 게 아니었던가. 이성이나 논리, 어떤 규제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 이토록 순수하게 발현되는 감정 이건만 어떤 이들은 틀렸다고 비난받고 바꿔야 한다고 강요당한다. 표현 방식에 차이는 있겠지만 사랑받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에 있어서 만큼은 어떤 선도 그을 수 없다는 걸 이 소설은 보여준다.
다채로운 사랑의 얼굴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네 편의 연작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처럼 네 편의 소설에는 저마다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십대라는 젊고 치기 어린 시절의 우정 같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재희', 서른한 살이 되어 스물여섯에 겪었던, 삶의 한 부분을 영원히 바꿔 놓은 사랑에 대해 회상하는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뒤늦게 사랑이라고 깨닫는 관계와 삶과 사랑에서 번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다룬,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 네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작중 화자이자 소설가 ‘영’은 ‘모두 같은 존재인 동시에 모두 다른 존재’라고 책의 말미에 작가는 적어 두었다.
화자인 ‘영’은 자기 자신과 삶,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의 고민과 질문, 진솔한 고백이 생생하게 담긴 이 소설은 블랙코미디처럼 피식 웃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지만 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곤 한다. 쉽게 사랑에 빠져들지만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고 결국 상처 입고 마는 ‘영’의 모습에서 부끄럽고 나약한 내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네 편의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다. 한 사람에게 다른 한 사람의 존재가 우주처럼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게 사랑이지만, 그로 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게 사랑이다.
소설 속 ‘영’은 한때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열두 살 많은 ‘형’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그는 ‘영’의 ‘게이스러움’을 부끄럽게 여기고 '영'을 가르치려고 든다. ‘영’이 열한 살 때 이혼해 억척스레 살아온 ‘엄마’는 암에 걸려 투병 중이다. 신실한 기독교인인 그녀는 남들보다 못한 모든 걸 수치스러워했고 고등학생인 ‘영’이 남고생과 키스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그를 정신과 폐쇄 병동에 입원시켰다.
사랑이라는 ‘포기의 마음’
‘엄마’와 ‘형’은 ‘영’을 가르치거나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지닌 결핍을 혐오하고 회피하는 두 사람은 그들의 결핍을 떠올리게 하는 ‘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 또한 그들 사이에서 자신에 대한 혐오로 괴로워하지만 자신을 직시하려는 노력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그녀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을 뿐 나를 옥죌 의도가 없고, 나 역시 그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