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웠던 과거의 경험이 있고 그로 인해 주변에서 무례하고 뾰족한 말들이 흘러 나오지만 고향숙 선생님은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녀가 유리에게 해주는 말은 우리 모두를 향한 것 같다. ‘살아온 길이 저마다 다르니까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는데, 혹시 그러고 있지 않는지.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쉬이 판단하고 섣부른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유리의 존재도 그 메시지를 되새겨 보게 한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입양한 엄마에게도 버림받는 아픔을 겪었지만 유리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자신의 뿌리가 되었어야 할 사람들에게서 잘려 나가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들에 대한 미움만 품지 않고 이해해보려 마음을 도닥인다. 내 삶의 어려움만큼 그들 삶에 있었을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연우와 할아버지에게 미움과 원망을 키우기보다 자연스레 보호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어린 연우의 학교 생활과 끼니를 챙기고 하나뿐인 딸을 먼저 보내 외롭게 암투병을 하는 할아버지를 걱정하며 유리는 잘려나간 뿌리를 스스로 키워낸다. 혼자 살겠다고 차갑게 마음을 다지던 유리가 연우와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으로 기울어갈 때 유리라는 뿌리가 지닌 생명력이 이 가족에게 새로운 싹을 틔우게 할 거라 기대하게 되니까. 상처투성인 연우의 몸과 마음에 새살을 돋게 하고, 고단하고 어두운 할아버지의 삶에 빛을 드리울 거라고.
금이 가고 깨어진 자리가 못난 흉터가 되는 게 아니라 선을 잇고 새살을 돋우며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낼 수도 있다는 걸 유리와 세윤, 할아버지와 고향숙 선생님의 삶을 통해 배운다. “모든 고통은 사적이지만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도 있다. 무엇으로 아프고 힘든지 함께 나누고 이야기해야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지기 마련이다. <훌훌>이 없는 세상보다 <훌훌>이 있는 세상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254쪽 작가의 말) 작가의 말처럼 <훌훌>이 있어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한 뼘 더 넓어졌다.
입양 가족의 삶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어딘가에서 힘차게 살아가고 있을 유리나 연우 같은 아이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그 삶의 상실과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 입양 가족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마음도 스며든다. 한 권의 책으로 그들이 맞닥뜨리는 고통과 아픔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고통을 끌어안고도 온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누구나 각자의 슬픔을 삶의 일부로 보듬고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생각하면 내 삶의 슬픔이 조금은 얕고 가벼워 보인다. 내 것보다 더 깊고 무거운 슬픔을 짊어진 누군가에게 손을 건넬 수 있겠다는 작은 용기도 생긴다. 한 뼘 더 넓어진 세상을 마주하며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선을 그어서도 안 되지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곳에도 나와 똑같은 체온으로 온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