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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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에서 마주쳤던 힌두교인의 참배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뇌리에 남아있다. 자신의 온 존재를 바칠 듯 무아지경으로 기도에 빠져 있던 여인의 모습. 그녀의 몸은 현실에 존재했지만 의식은 이곳에 있지 않아 보였다. 그 믿음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아득해졌던 느낌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녀에게 종교는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일 거라고 감히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종교에서 시작되어 종교와 합치되는 삶. 그로 인해 카스트라는 신분제가 유지되는 곳, 인도. 그곳에서는 절대적인 신앙과 믿음이 삶의 근간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는 것 같았다. 인도인에게 신이 절대적이듯, 신에 의해 부과된 가족과 계급은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지 않을까.



인도 출신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줌파 라히리에게도 그런 인도인의 관념이 영향을 미쳤을까. 가족이라는 인연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지, 정체성이란 가족이라는 근간을 벗어나 형성 불가능한 것인지, 그녀의 소설은 거기서 맴돌며 질문한다.



어쩌면 그녀 또한 인도적 가치관과 문화, 가족이나 정체성이라는 얽매임에서 벗어나고자 소설 쓰기에 매달렸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뿌리 중 선천적으로 부여된 것을 잘라내려는 시도가 그녀의 글쓰기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거미는 자신의 실로써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466쪽)는 인도 철학 경전 속 말처럼, 자신이 써 내려간 문장을 실 삼아 그녀는 자신만의 집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서도 자유롭기 위해 거미처럼 자기만의 집을 짓는 행위. 그것이 그녀의 소설 쓰기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줌파 라히리의 장편 소설 <저지대>는 3대에 걸친 삶과 소용돌이를 다루는 대하소설 성격의 작품이다. 인도의 정치 사회적 격변의 시대에 캘커타에서 태어나고 자란 수바시. 그는 한 살 터울인 남동생 우다얀과 한 몸처럼 성장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정치적 입장에 차이가 생기면서 둘의 삶은 갈라진다. 수바시는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미국 로드 아일랜드로 유학을 떠나고 우다얀은 캘커타에 남아 정치 운동에 가담한다. 그러던 중 가우리를 만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지만 결혼 2년 차 우발적 사고로 경찰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우다얀의 사망 소식에 인도로 돌아온 수바시, 우다얀의 아이를 품고 있는 가우리에게 책임을 느낀다. 부모님의 냉대와 인도의 정치 상황으로부터 그녀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그는 동생의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고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온다.



가우리는 자신과 아이를 위해 수바시의 제안을 수락하지만 그와 결혼을 하고도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벨라를 낳은 후 철학 공부를 병행하면서 아이의 엄마로 자신의 존재를 견디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수바시가 벨라와 함께 인도를 방문하는 사이 결국 그녀는 집을 떠난다.



가우리가 떠난 이후 벨라의 곁에서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수바시, 엄마의 부재(떠남) 로 인한 상처와 아픔 속에 방황하며 성장하는 벨라, 가족을 떠나 고립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가우리 등 주요 인물의 삶이 정치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변주되는 소설은 흡입력을 가지고 독자를 빨아들인다. 각 인물이 지닌 남다른 성장 배경과 삶의 선택은 때로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하지만 줌파 라히리는 한 인간이 나이 들며 변해가는 과정의 보편성과 삶의 우발적 사건이 드리우는 개별성을 절묘하게 엮어낸다. 섬세하고 치밀한 라히리식 서사는 그 자체로 타당성을 부여하며 나아간다. 독자는 이야기에 깊숙이 연결될수록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곤란함을 느낀다. 그리고 삶을 향해 던져지는 깊고 난해한 질문 앞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부모로부터 부과되는 역할, 형제 자매간 느끼는 의무와 경쟁심,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과정과 부모됨, 낯선 환경에서 삶의 터전을 개척하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는 아픔 속에서도 지속해야하는 삶. 성장 단계에 따라 짊어지게 되는 역할과 의무, 삶의 단계에 따라 마주하는 그 무게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걸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이 소설은 특히 가족 간의 역학 내에서 만들어지는 한 사람의 정체성과 그걸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에 집중한다. 줌파 라히리의 이전 소설에서도 다루어졌던 정체성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수바시의 충직하지만 다소 수동적인 성격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우다얀과의 결혼으로 가우리의 삶이 어떤 변화의 물살을 타게 되었는지, 또한 가우리가 아이를 떠나는 선택을 하기까지 그녀 성장 배경의 흔적, 벨라가 아빠가 없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한 결심(엄마와 닮은꼴의 삶) 등, 가족 관계 내에서 형성되고 대를 이어 전해지는 어떤 운명의 연결 고리, 혹은 연쇄 작용 같은 것이 그렇다. 태어남과 동시에 연결되는 가족이라는 틀은 한 사람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주홍 글씨를 새기는 것일까. 그것은 의지로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궤도 속에 존재하는 것인가. 줌파 라히리가 지어 올린 완벽한 세계 속에 빠져들고 나면 이런 의심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우리의 삶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강력한 자장 안에서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고.



무지와 희망 속에서 의도적으로 기대를 하는 것,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시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증축한 집에서 수바시와 우다얀이 나이 들어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분들은 수바시가 톨리건지로 돌아와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우다얀은 사회 전체가 바뀌기를 바라며 미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가우리는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그와 함께 결혼 생활을 꾸려가기를 바랐다. 수바시는 로드아일랜드에서 그와 가우리와 벨라가 한 가족으로 지내기를 바랐다. 가우리가 벨라의 엄마이자 그의 아내로 남기를 바랐다.

244쪽, <저지대> 줌파 라히리, 서창렬 옮김, 마음산책




한 사람의 정체성과 삶은 가족이라는 관계와 영향 속에서 만들어진다. 관계 속에서 부여되는 기대가 삶의 방향을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기대와 어긋난 선택이 우발적으로든 의지적으로든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한 상처와 흉터가 삶에 새겨진다. 기대에 응하는 방식은 희미한 밑그림을 지니고 사는 삶과 비슷할 것이다. 그럴 때 삶은 조금 더 안정적이고 일정한 방향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이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면 기대에 응하지 않는 방식이 있을 테다. 밑그림 없이 삶의 불안정성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방향을 만들어가는 삶. 수바시의 삶이 전자의 것이라면 가우리의 삶이 후자에 닿아 있다.



가우리는 이 소설에서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수바시 또한 가족을 벗어나는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듯 보였지만 가족으로서의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책임을 다하는 인물로 머무른다. 하지만 가우리는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우다얀과 결혼했고, 이후에는 수바시를 따라 인도를 떠났으며, 피붙이인 딸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과감함을 보인다. 자신에게 연결된 가족이라는 뿌리를 잘라내며 오로지 자신으로 남는 인물이다.



그녀의 선택은 합당한 대가를 요구한다. 남편과 딸을 잃고 고립이라는 현실에 처하게 되는 것. 하지만 그녀는 고립을 친구 삼아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 삶을 단순히 불행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반대의 삶을 선택했더라도 그녀의 삶이 온전하게 행복하긴 어려웠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의 선택, 스스로 뿌리를 잘라냈던 선택에 대해서도 함부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은 아내에서 과부로, 제수에서 아내로, 엄마에서 자식 없는 여자로 바뀌어갔다. 우다얀을 잃은 것은 예외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은 능동적으로 이런 길을 선택해왔다.

자신은 수바시와 결혼했고, 벨라를 포기했다. 자신은 또 다른 모습의 자기 자신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전환을 관철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신의 삶을 켜켜이 쌓아왔지만 결과적으로 삶은 발가벗겨졌고, 결국 혼자가 되었다.

382쪽




수바시 인생에는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아들을 잃고 황폐해진 어머니 비졸리, 그리고 첫 번째 남편을 잃고 그의 형을 남편으로 받아들인 가우리, 그녀의 딸인 벨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아들을 상실한 삶의 고통에 휩쓸려 자신을 잃고 마는 비졸리와 대조적으로 남편을 잃고 스스로 딸을 버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붙잡는 가우리는 의지적이며 주체적인 여성으로 보인다. 그녀가 했던 과감한 선택은 그녀의 딸 벨라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벨라는 자신의 성장 배경을 인정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섣불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홀로 딸을 낳아 키우는 선택을 한다.



소설은 비졸리에서 가우리로, 그리고 벨라로 시간과 공간(인도에서 미국)의 변화를 따라 여성의 삶이 변해가는 추이를 그려 보여 준다. 수동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비졸리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벨라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로서 가우리가 존재한다. 가우리는 새 삶의 가능성을 여는 인물, 도발적인 선택과 시도로 삶의 정형성을 벗어던지는 인물이다. 현실의 가치를 거스르는 인물, 그러므로 변화의 물꼬를 트는 도전적이고 입체적 인물인 가우리의 존재는 이 소설에 특별한 아우라를 부여한다.



수바시의 인생의 세 여자-어머니, 가우리, 벨라-중에서 한 사람만 남았다. 어머니의 정신은 이제 황무지처럼 황폐했다.

(…)

그 황폐함이 어머니의 유일한 자유였다. 어머니는 집 안에 갇혀 지내면서 매일 한 번씩만 밖에 나갔다. 디파가 어머니를 돌보면서 위험할 수 있는 행동을 못하게 하고, 당황스러운 일을 못하게 하고,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가우리의 정신은 자신을 구해냈다. 똑바로 설 수 있게 했다. 자신이 나아갈 길을 냈다. 떠날 수 있게 자신을 준비시켰다.

339~340쪽




줌파 라히리는 환경에 의해 주어졌던 영어(모국어)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처럼 이탈리아어의 매력에 빠져들어 수년간 이탈리아어를 배운 후 그녀는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영어를 버리고(영어 소설로 인정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기반을 버리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선택을 했다. 그녀 스스로 주어진 모습에서 탈피하여 자신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 소설 속 가우리의 모습에 줌파 라히리가 겹쳐지는 이유다.



소설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가우리는 시간을 감각하는 방식이 남달랐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 또한 줌파 라히리의 관심과 겹쳐지는 부분은 아닐는지. 이탈리아와 미국을 오가며 가르치고 글을 쓰는 그녀는 삶 속에서 공간을 넘나들며 시간을 오간다. 그 속에서 뽑아내는 유려하고 빼어난 실로 자기만의 집을 짓는다. 작품이 거듭될수록 그녀가 공들여 지은 자유의 공간이 조금씩 확장됨을 느낀다. 그녀의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지켜보는 것, 이 또한 독자의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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