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아이를 둔 가족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지금 당장 어떻게 바꿀 수 없다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각자의 만족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함께 시간을 보내려 애쓰기보단 어떻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색했다. 주말 아침 남편이 운동을 하고 오면 오후에는 내가 외출하는 방식으로. 가족이란 모든 걸 함께 하며 시간을 같이 보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걸 차츰 깨달아갔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절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사랑해서, 함께 있고 싶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절절하게 혼자를 원하게 된다는 걸. 한동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을 인정하면서 차츰 편안해졌다.
“결혼 생활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나빠진다”는 루마 아버지의 말이 싫지 않았다. 그 말에는 나빠지기도 하고 그러다 좋아지기도 하고,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변해가는 게 감정이고 관계일 테니까. “이건 그저 노인네의, 이제는 아이처럼 되어버린 노인네의 생각일 뿐”(69쪽)이라고 그는 덧붙이지만 결혼과 가족이라는 현실을 건너기 위해 적당히 내려놓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변함없는 기대는 관계를 더 힘들게 하기도 하니까.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면 누구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인간 고독의 본성을, 결혼(혹은 가족)은 일깨워준다. 결혼(혹은 가족)이 건네는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고독 앞에 진실해진다는 것. 그건 달리 말해 자신(자신의 욕망)에게 진실해진다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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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에서 줌파 라히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숨겨진 흠집을 보여준다. 단란해 보이는 가정집 안, 오래된 방 한 구석 누렇게 때가 탄 벽지 같은 걸. 거기만 잘라낼 수 없고 그 부분만 새로 덮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런 식으로는 오히려 보기 흉하게 드러날 뿐인 그런 자리를. 알면서도 눈 감았던 가족 내 구성원들의 상처와 외로움, 실패와 상실, 원망과 두려움이 거기에 있다. 그건 내가 미처 몰랐던 낯설고 새로운 이면이 아니다. 오히려 빤히 보아왔던, 내 삶에서 이미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는 과정 속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새삼 아팠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경험하는 미묘한 어긋남과 껄끄러움. 닳고 닳을 만큼 경험한 익숙한 것인데도,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다른 언어로 목격되는 틈새는 이상하게 날카로워 저릿했다.
애정 없는 아빠와 삶에 찌든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 아이를 낳고 무직의 평범한 엄마가 되어버린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 일로 바쁜 아내 대신 아이들을 챙기는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 엄마를 잃고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재혼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 조금만 자리를 옮겨 바라보면 당연한 것도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된다는 자명한 진실. 의무와 책임, 애정과 불만, 오해와 착각, 기대와 실망, 그 모든 게 뒤엉킨 실타래 같은 감정이 가족을 지탱한다는 서글픈 현실. 내 삶에서도 경험했던 일들이 또 다른 생경함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