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5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나타나엘, 내 그대에게 ‘순간들’을 말해 주리라. 그 순간들의 ‘현존’이 얼마나 힘찬 것인지 그대는 깨달았는가? 그대가 그대 생의 가장 작은 순간에까지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 것은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꾸준한 생각을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이를테면 지극히 캄캄한 죽음의 배경 위에 또렷이 드러나지 않고서는 그런 기막힌 광채를 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하는가?”

_54쪽,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민음사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죽음의 배경 위에서만 또렷이 드러나 광채를 발하는 것이 순간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알지 못하면 순간에 현존하는 것이 얼마나 힘찬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 우리 인생에 그런 시기가 있으니 바로 청춘이 아닐까 싶다.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시간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니까. 그러느라 손 안에 보석을 쥐고도 더 빛나는 무언가를 찾겠다고 헤매는 게 청춘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청춘의 특권일지 모르겠지만 더 높은 이상, 더 고귀한 무언가를 쫓느라 정작 현재와 순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의미없는 무게를 지우기도 한다.



앙드레 지드는 이토록 열렬히 순간의 찬란함을 노래했으면서도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연인과 사랑의 순간을 누리기보다 기다림의 고통을 선택하는 제롬과 알리사라는 인물을 만들기도 했다. <좁은 문>에서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숭고한 것으로 이끌고자 하는 바람에 급기가 그 사랑을 잃고 만다. 



“이를 테면 아주 어려서 오로지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공부, 노력, 경건한 행동 따위의 것들을 모두 맹목적으로 알리사에게 바쳤다.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서 한 일조차도 그녀가 모르도록 하는 것이 더욱 값진 덕을 쌓는 일이라 둘러대면서, 나는 일종의 독주와도 같은 지독한 겸양에 도취되어 쾌락을 염두에 두기는커녕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면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습성에 길들여져 있었다.”

_34쪽, <좁은 문>, 앙드레 지드, 펭귄 클래식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엄격한 종교적 규율을 따르는 어머니와 가정교사의 보호 아래 자란 제롬은 허약한 체질로 공부에만 취미를 두고 있었다. 파리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노르망디 지방의 퐁괴즈마르에서 여름을 보낼 때면 뷔콜랭 외삼촌댁에 머물렀는데 그러는 사이 제롬은 사촌누이 알리사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다.



일찍이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의 감정을 나누었던 제롬과 알리사, 하지만 종교적 의미를 추구했던 제롬은 “지독한 겸양에 도취되어 쾌락을 염두에 두기는커녕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면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습성에 길들여져 있었다.”(34쪽) 그에게 알리사의 사랑은 신에 대한 사랑과 합치된 것으로 그것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했고 그의 노력-공부, 노력, 경건한 행동-은 알리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장의 기쁨을 취하는 게 아닌 인내와 정신적 수련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더 고귀한 무언가로 격상시키고자 했던 제롬은 주위에서 당연시 여기는 약혼을 차일피일 미룬다.



두 사람 사이 너무도 당연해 보였던 사랑의 연결이 어그러진 지점은 어디일까? 알리사의 여동생 쥘리에트가 제롬을 흠모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까. 그런데도 언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이와 결혼을 하지만, 동생의 희생을 안 알리사가 한동안 제롬을 멀리했기 때문일까.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며 서신 왕래만 허락하고, 그마저도 통제하면서 시련 속에 자신들의 사랑이 더 숭고해질 거라는 어리석은 믿음을 따랐기 때문일까.



그런 사건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두 사람이 사랑을 대하는 마음은 지나치게 신성한 무엇이었다. “아주 어려서 오로지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34쪽)거나, “무슨 도전이라도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아직은 서로 만날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마치 재미로 그러는 양 기다림의 시간을 연장하기로”(113~114쪽) 했다는 제롬의 표현을 보면 그의 사랑이 알리사를 얻고 그녀와 함께하며 나누는 기쁨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드높이기 위한 무엇이었던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렇기에 제롬을 통해 ‘좁은 문’을 알게 된 알리사 또한 자신들의 사랑을 평범한 기쁨을 위한 관계가 아닌 상대를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생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13장 24절)



“나 혼자만이 이 같은 경쟁심에 고무되었던 것일까? 알리사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로 인해, 아니 오직 그녀만을 위해 애쓰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꾸밈없이 자연스럽기만 한 그녀의 영혼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띠었다. 그녀의 미덕에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여유와 우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는 그녀의 엄숙한 시선에 매력을 더해 주었다. 다정하고도 부드럽게 무언가를 묻는 듯 시선을 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_34~35쪽, <좁은 문>, 앙드레 지드, 펭귄 클래식



제롬보다 두 살이 많았던 알리사는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남다른 어머니의 존재로 인생의 어떤 속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인물이었다. “모든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몸에 지니고 어디에도 강제되지 않는 “여유와 우아함”이 깃든 미덕을 갖춘 소녀. 하지만 제롬의 영향으로 신에 대한 사랑에 눈 뜨면서 제롬이 신이 아닌 자신을 우상으로 숭배한다는 두려움에 그의 신앙에 자신이 방해가 된다고 여긴다.



“나는 네 곁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 하지만 우리가 행복을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인간의 영혼이 행복 외에 더 무엇을 바라야 한단 말이야?” 나는 흥분한 나머지 격한 어조로 물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

성스러움…….”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음성이 너무도 낮았기 때문에 내가 그 말을 들었다기보다는 그렇게 추측한 것에 가까웠다.

내 모든 희망이 날개를 펼치고 나에게서 도망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_139쪽,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알리사의 사랑을 구함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리라 믿었던 제롬에 비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알리사가 추구하는 미덕이 더 높아졌음을 알게 된다. 영혼의 충만감을 보태주는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진전이 없는 상태를 소망할 수는 없다.”(179쪽)는 알리사의 마음은 제롬과의 사랑이 완전함을 잃는 순간 그 사랑을 견뎌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으로 바뀌고 만다. 완전함, 완덕이라는 것에 의지를 둔 알리사에게 지상의 사랑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한 소녀를 사랑해 그 사랑을 고귀한 무언가로 여기고자 했던 제롬, 하지만 그 사랑을 통해 천상의 사랑(신에 대한 사랑)을 열망하게 된 알리사, 청춘의 달콤해야 할 사랑은 두 사람의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것이 되어버린다.



“가엾은 제롬! 때로는 그의 자그마한 몸짓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때로는 내가 그 몸짓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면…….

어렸을 때부터 이미 나는 제롬 때문에 아름다워지기를 바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완덕을 구하였던 것’도 오직 그를 위해서였던 듯싶다. 그런데 이 완덕은 그가 없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오, 나의 주여! 이는 당신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서도 저를 가장 당황케 하는 것이옵니다.”

_182쪽, <좁은 문> 앙드레 지드



통속적인 약혼으로 그들의 사랑을 지상에 묶었더라도, 둘의 관계는 파경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청춘이라는 성장과 변화의 시기를 겪으며 두 사람이 지닌 세계의 차원이 미묘하게 어긋났으니 말이다. 다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내내 안타까웠던 건 당장의 기쁨과 행복조차 지나친 의미 속에 속수무책으로 흘려보내고 만 숱한 순간들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미덕을 쫓느라 거리를 두고 멀리하는 사이 ‘자그마한 몸짓’으로도 충분할 사랑의 환희를 놓쳐버렸으니.



사랑하고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거리를 두려했던 건 두려움 때문일 테다. 자신이 맹렬하게 믿는 무엇, 가장 가치있는 진실로 추앙하는 것을 가까이서 직면하고 감당하며 책임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니까. 불확실한 미래와 불완전한 자기 인식 속에 자아와 세계의 간격을 좁혀가는 청춘의 시기는 희미한 불안을 내내 껴안고 있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청춘이란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이상을 품는 시기이며 둘 사이의 거리는 흔들려야지만 좁혀지는 것일 테니까. 흔들림 속에 무수한 방황과 실패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용인할 수 있었다면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현재의 기쁨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도 있었을 테다. 완벽함, 완덕에 대한 추구가 그들 사랑에 대한 불안을 더 증폭시켰으리라.



“별들은 모두가 서로서로 그들의 미덕이요 힘인 어떤 유대에 의하여 이어져 있지요. 그래서 하나의 별은 다른 별에 의존하고 다른 별은 또 모든 별에 의존하지요. 각자의 길이 정해져 있어서 각자는 제 길을 찾지요. 각각의 길은 각각의 다른 별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저마다의 별은 길을 바꿀 수가 없어요. 그러면 다른 별을 혼란에 빠뜨릴 테니까요. 그리고 각각의 별은 그가 따라가도록 되어 있는 것에 따라 자기 길을 택하지요. 그 별은 반드시 택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 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숙명적이라고 여겨지는 그 길이 각각의 별에게는 그가 선호하는 길이지요. 저마다의 길은 완전한 의지에 따른 것이니까요. 어떤 눈부신 사랑이 별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택이 법칙을 확정하게 되니 우리는 그 법칙에 좌우됩니다. 우리는 도망갈 길이 없어요.”

_199쪽,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 마지막에서 “별은 그가 따라가도록 되어 있는 것에 따라 자기 길을 택하지요”라고 말했다. 별은 반드시 택해야 하는 것을 원해야 하며 눈부신 사랑이 그를 인도할 것이라고. 인간의 태생적 의존성과 불완전함은 살아가는 내내 누군가를 찾게 하고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길 소망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별이 되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낼 수 있어야 별이다. 누군가에게 별이 되기 이전에 자신의 빛과 길을 찾는 것이 먼저다. 제롬에 대한 사랑을 넘어 신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희구하며 자신을 희생한 알리사. 그녀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선택은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알리사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완전한 의지로 숙명의 길을 찾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망갈 길조차 없는 눈부신 사랑, 신이라는 숙명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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