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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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숨바꼭질이다. 매번 하는 놀이인데 매번 배꼽 잡고 웃는 일이 생기는, 이상하고 신기하고 재미난 숨바꼭질을 나도 좋아한다. 어른 눈엔 훤히 보이는데도 진중하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이고 있는 아이를 볼 때면 왈칵 눈물이 날 것 같다. 술래가 못 찾게 꽁꽁 숨으면서도 기어코 기척을 내어 술래에게 들키고 마는 빤한 눈속임은 어떻고. 아이는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시키고도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한다. 술래가 지나갈 때면 괜히 부스럭 소리를 내고큭큭웃음소리를 흘리니까. 아무도 찾지 못하게 숨어버리고 싶으면서도 빨리 찾아주었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이 아이를 사로잡는 것 같다.




우리는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까.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 공존할 수 없는 마음을 어떻게 하나의 가슴에 담고 있는 걸까. 그러니 어른이 되어도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순의 마음에는 여지없이 흔들리고 마는가 보다.




내 안에 있는 가장 모순적인 마음은 이런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가도 누군가 알아주는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 어느 날엔 한 사람도 아는 이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가도 어느 날엔 누가 날 좀 알아봐 주고 말을 걸어줬으면 싶어지는 것. 가족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는 게 전부인 삶을 살다 보면 보잘것없는 존재 같아 기운이 빠지 다가도 홀로 버스를 타고 나가 시내를 걷다 보면 아무도 알아채는 이 없는 작은 사람이라는 게 위안이 된다.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라다가도 하찮은 존재라는 걸 확인하면 그렇게 속이 편할 수 없다. 그런 순간에 삶의 무게와 고민도 한없이 작아지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가슴이 턱턱 막히다가도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싶다. 다들 묵묵히 주어진 책임을 사는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삶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러워진다. 대단한 걸 성취하겠다고 버둥거리지 말고 작은 생()을 소박하게 일궈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언가가 되고 싶다가도 그저 하찮은 존재이길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이 살아가는 데엔 필요한 것 같다.




로베르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학교>(홍길표 옮김, 문학동네)에는 모순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야콥 폰 쿤텐은 귀족 가문 태생이지만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에 들어가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삶을 선택한다. 발저는 개인에게 주어진 고난을 극복하고 성취해가는 영웅적 인물을 내세웠던 근대 소설의 서사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는 인물을 그려낸다.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20여 년을 살다 눈 쌓인 길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한 작가 자신의 삶이 오버랩된다. ‘반영웅주의를 내세워 근대 사회의 가치를 해체했다는 평을 받는 이 소설을 두고 인간의 모순적 마음에 골몰하게 된다. 아웃사이더를 지향하면서도 그걸 통해 자기만의 의미를 강화시킨 야콥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벤야멘타 하인 학교는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제대로 된 수업도, 선생님도 없는 곳에서 학생들은 무위(無爲)의 시간을 견디는 법을 터득한다. 지식의 추구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태도, 자신을 알고자 하는 생각은 비난 거리가 될 뿐. 현실에 만족하며 인내와 복종을 체화한 충직한 인물, 크라우스가 우수한 학생으로 추앙받는 곳이다.




학교에 새로 들어간 야콥은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단련시킨다. 출세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대상에 부여된 의미를 거부하면서 새롭게 경험하길 바란다. 금기시되는 반항을 일삼고 도시를 탐색하거나 산책을 즐기며 아름다움과 기쁨을 발견하기도 하는 그는 벤야멘타 학교라는 성벽을 넘어서려 시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는 일 없는 원장을 탐색하고 학교 어딘가내실이 존재할 거라고 믿으며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찾으려 한다. 




벤야멘타 학교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친구들을 존중하면서도 자기 내부의 질문과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야콥. 그가 겪는 의문과 혼돈은 책을 읽는 내게도 혼란을 일으켰다. ()이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일자리를 찾아 하인이 되는 친구들과 달리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는 야콥이 모순적으로 보였다. ()과 주체를 알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그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방식으로 무언가가 되려 하고 있었다. ()이면서 무한대 같은 존재라 해야할까.




“너는 지금, 말하자면 영()인 거야. 소중한 동생아. 젊었을 땐 누구나 영이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일찍, 너무 일찍 어떤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지. 확실한 것은 너란 존재가 너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거다.”

73 <벤야멘타 하인학교> 로베르트 발저




야콥은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와 정체성(백인 남성 귀족 계급 출신)을 타고났기에, 자발적으로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영()이 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고 하는 주장 자체가 하나의 권력일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영()인 사람, 그래서 끝없이 자신을 증명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에겐 주어질 수 없는 선택권. 그러니 지속적으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 외적 힘에 의해 정체성을 빼앗긴 이에게 아무것도 되려 하지 말라는 말이 단순히 자유에 대한 옹호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박탈감을 키우는 폭력의 말이 되는 건 아닐까. 증명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 사회에서 모두가, 나란 존재가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걸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해야할 것 같다.




티 나지 않는 집안일에 지치고, 삶이 텅 빈 것 같아 답답해지는 날이 오면 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갈 것이다. 8차선 도로를 메우고 바삐 흘러가는 자동차의 대열을 보며, 정장 차림으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 빨려 들며, 나의 하찮음에 안도할 것이다. 그러면 돌아갈 집이 있음에, 따뜻한 저녁 밥상에 유난한 행복을 느끼게 되겠지. 하지만 나만의 목소리로 삶의 의미를 엮어보고 싶다는 바람은 끝내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모순적인 마음에서 하나를 애써 지우려기보다는 흔들리면서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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