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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평점 :
조해진의 소설집 <환한 숨>에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 위치한 취약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이든 비혼의 여성, 계약직을 전전하는 사람들, 안전망없이 놓여진 공장 노동자, 가난한 예술가와 아픈 사람들. 그런데 그들은 외따로 존재하지 않고 어떻게든 연결된다. 죽어가는 친구를 간병한 강희는 죽은 친구의 아들일 수도 있는 탈영병을 만나고(<환한 나무 꼭대기>), 계약 만료를 앞둔 기간제 교사는 실습 중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하나(<하나의 숨>)의 담임이다. 파업 중인 언론사에 수습기자로 들어간 연진은,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난 선배 윤희를 흠모하고(<경계선 사이로>), 성추행 가해자의 딸인 효진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낸다(<높고 느린 용서>). 각자가 위태롭고 고된 자리에 있으면서 그처럼 또 다른 무게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삶으로 흘러 들어가는 이야기가 우리 안에 짙은 반향을 그린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는 기댈 수 있는 ‘지팡이’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발자국’ 같은 게 반드시 필요하니까(해설<연루와 비밀> 김미정). 길을 걷다 깨달았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혼자인 적이 없다는 것을. 하늘 아래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내뱉고 들이마시는 숨결로 서로에게 엮이어 들고 있었다. 매순간 보이지 않는 숨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깊숙하고 내밀하게 숨을 나누면서도 타인의 사정과 속마음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게 오히려 기이하고 슬프다. 그래서 때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이를 외롭게 한다는 게 가혹한 형벌처럼 우리를 가둔다.
자신의 삶의 무게와 고독의 깊이로 버거운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을까. 각자가 이토록 취약한데 어떻게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내밀한 상처와 고독으로 절뚝거리는 내가 어떻게 당신의 지팡이가 될 수 있을까. 내 삶의 방향조차 가늠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타인에게 발자국으로 길을 알려줄 수 있을까. 각자가 말할 수 없는 부분을 품고 있는데, 그런 상태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진실된 연결을 갈망할 수 있을까…… 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동안 피어난 질문들은, 간절했다. 이 물음은 금세 눈물이 터져 나올 것처럼 긴박하고 곡진해서 우리의 마음에 짙은 어둠을 드리우는데, 조해진 작가는 끝내 그곳에 달빛처럼 환한 빛을 비춘다.
강희는 탈영병에게 줄 먹을 것을 싸 들고 가고, 기간제 교사인 ‘나’는 하나도 보았을 갈매기를 쫓아 무의식적으로 하나를 찾아간다. 연진은 윤희의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가 절박한 마음으로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높은 곳에서 천천히 이동하는 구름을 보며 어디선가 오고 있을 용서를 떠올리는 피해자는 다시 한 번 편지를 쓴다. 사회의 무수한 패러다임이 그어 놓은 경계를 간신히 지우며 아픈 타인의 자리를 상상하고 끝내 걸음을 옮겨보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 있다. 각자가 지닌 삶의 무게를 알아채 주려 한다면 우리는 ‘숨’, ‘숨결’로라도 연결된다고, 그러면 우리의 고유한 이야기가 빛이 되어 환하고 높게 떠오를 수도 있겠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오래오래, 그녀와 나의 숨결이 같은 분량으로 서로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나는 이제야 떳떳하고도 공평한 세계로 입장한 기분이 들었다."
<숨결보다 뜨거운> 조해진, 『환한 숨』, 문학과 지성사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라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시몬 베유는 말했다. 시몬 베유가 쓴 말을 불어로 풀이하면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라고 시그리드 누네즈는 썼다. 조해진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준 ‘환한 숨’ 같은 게 여기 있지 않을까. 내 안의 연약함이 타인의 연약함에 반응하여 안부를 묻는 마음에. 서로의 상처를 불러줄 때 우리는 고유하고 공평해진다. 서로에게 '지팡이'나 '발자국'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경계를 지울 수 있다는 가능성, 그런 것을 쥐고 있는 한 우리의 뒤엉킨 숨은 어둠 속에서도 희붐한 빛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