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파편화되어 존재하지만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실 한 오라기’처럼 허약하고 미약한 것일지라도 우리를 연결하는 무언가가 사회 속에는 존재한다. 혼란과 위기 상황일수록 그런 연결은 사람들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미래의 전망이 어둡고 불안한 시대일수록 흩어지려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줄 ‘중심’이 필요하다고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소설 <막간>은 이야기한다. 위기를 견뎌낼 힘은 '우리'에 있다고.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소설 <막간>에는 영국 시골 마을에서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연극을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진다. 연극에서는 영국의 탄생에서부터 1939(소설 속 현재)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단편적인 에피소드의 나열로 재현한다. 소설 속 연극을 하나의 축으로 행사가 진행되는 포인츠 홀에 사는 바트와 루시, 이자와 자일로라는 인물 사이의 대화가 또 한 편의 연극처럼 흘러나온다. 소설의 제목처럼 소설 속 연극의 ‘막간’을 통해 1939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연극처럼 흘러나온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 소설을 쓰던 당시 상황은 히틀러의 도발이 극에 달하고 언제든 전쟁이 터질 거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자동차와 냉장고, 비행기가 등장하면서 삶은 한 단계 나아가는 듯 보였지만 전체주의라는 광기와 폭력의 지배에 사로잡힌 상황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흐리게 했을 것이다. 인간 해방을 전망했지만 실제로 마주할 미래는 문명의 몰락일 거라는 예견 속에 버지니아 울프는 어떤 전망을 제시하고자 했을까. 소설 속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자신들 앞에 펼쳐진 ‘전망’을 바라본다. 그 전망은 때로 지속성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내포하다가도 돌연 답답한 무엇, 그래서 허물어지고 새로 쌓아야 할 무언가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렇다, 울프는 어떤 것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망을 바라보았고, 그들이 아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아는 것이 어쩌면 오늘은 다르지 않을까 보려고 말이다. 대부분 똑같았다.

“그것이 전망을 너무도 슬프게 만들어요,” 스위딘 부인이 자일스가 그녀에게 가져다준 접는 의자에 몸을 굽히면서 말했다. “그리고 너무도 아름답게 하지요. 우리가 사라진 다음에도 그들은 저기에 있을 거예요.” 그녀는 먼 들판에 놓여 있는 엷은 안개 조각을 향해 끄덕였다. (53쪽)



소설 <막간> 속에서 펼쳐지는 연극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역사를 훑으며 인간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 앞에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어 그것이 그들의 손으로 일궈진 것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저 밖에서 진행되고 있는 폭력적 전쟁에 대해 여기 모인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가담한 건 아니지만 전쟁으로 귀결되는 역사의 흐름에 복무했던 사람들과 동일한 역할을 해왔던 게 아닌가 질문한다. 연극의 마지막, 깨진 거울이 관중을 비춘다. 지금껏 보았던 역사 속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고,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급작스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마주한 관객들은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한다. 왜 부끄러운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황급히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독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가, 부끄럽지 않겠는가?라고.



“그가 말한 것을 느꼈어? 우리가 다른 역할을 하지만 동일하다는 것 말이야?”

(…)

“부스러기들, 조각들 그리고 파편들.”

(201쪽)



과학과 기술이 인간을 해방시킬 거라고 전망하던 시대였지만, 부패하고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전쟁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문명의 몰락을 마주하고 있다고 느꼈을 시대, 일군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사람들은 ‘부스러기들, 조각들, 파편들’이 되어 존재하며 위선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혈육인 바트와 루시, 부부인 이자와 자일로의 몰이해와 대립이 그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사회적 체면을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들은 일견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어긋난 욕망과 드러나지 않는 비난으로 뒤엉켜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관습적 관계 너머에서 일순간 타인의 내면을 읽고 진실한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연극보다 더 극적으로 보이는 주요 인물들의 독백과 대화는 사회 속에서 맺는 관계가 지닌 허구성을 드러내면서도 각각의 인물들이 욕망하는 대상을 통해 진실한 연결에 대해 갈망하는 인간의 모순적 본성을 보여준다.



실 한 오라기가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보였다, 안 보였다, 가을 해뜨기 전 떨리는 칼날 같은 풀잎을 하나로 묶는, 이제는 보였다, 저제는 안 보였다 하는, 그런 실들처럼 말이다.

(56쪽)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삶이 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길 바라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우리는 다른 이들 속에서 살죠, ……씨. 우리는 사물들 속에서 살아요.”

(68쪽)


“당신은 보이지 않는 줄들을 잡아챘어요,” 늙은 부인이 뜻하고자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클레오파트라를 드러냈어요! 큰 기쁨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아아,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개개의 줄들을 잡아채는 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떠도는 육체들과 떠도는 목소리들을 큰솥에 펄펄 끓여서, 그들 무정형의 덩어리로부터 재-창조된 세계를 떠오르게 만드는 이였다.

(145쪽)


그녀가 상상력으로 -하나를 만드는- 순환성의 여정을 떠났다고 그들은 짐작했다. 양들, 소들, 풀, 나무들, 우리 자신들 -모두가 하나였다. 일치하지 않는다면, 조화를 만들어낸다 –우리에게는 아니라면, 거대한 머리에 부착된 거대한 귀에는 그랬다. 그래서-그녀는 관대하게 미소 지었다-특별한 양, 소, 혹은 인간의 고통은 필요했다, 그래서-그녀는 멀리 있는 금칠한 바람개비를 보면서 천사같이 밝게 미소 지었다-모두가 조화롭다는 결론에 우리는 도달했다, 우리가 그것을 들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럴 것이다. 그녀 눈은 이제 하얀 구름 정상에 머물렀다.

(165쪽)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쟁의 임박을 알리는 비행기들이 수시로 떠다니며 극의 흐름을 끊는다. 전쟁의 포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불안과 혼란 속에서 과거의 역사를 회상하고 공동체의 의미를 되물었던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리', '연결', '전체', '전망', 소설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와 의미를 더듬어본다. 타인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진실된 소통이나 관계 맺음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실 오라기 하나로 묶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혼란의 시기일수록 흔들리는 공동체를 모을 수 있는 중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새로운 삶에 대한 ‘전망’은 그래서 더욱 필요했으리라.



아파트마다 냉장고가 있어요…… 어머니는 저녁을 주문하는 데만 아침 반나절이 걸렸어요……우리는 열한 명이었어요. 하인들을 포함하면, 가족이 열여덟이에요……이제는 사람들이 간단하게 가게에 전화를 해요……. (…) 우리는 그를 자주 보지 못해요……바로 그런 점 때문에 좋은 거죠, 사람들을 한데 모았다는 것, 우리 모두가 너무 바쁜 이런 시절에 말이에요,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거지요. (151쪽)


우리는 여러 무리들을 보았습니다. 제가 잘못 알지 않았다면, 우리는 새롭게 시도한 노력의 결과를 보았어요. (…) 적어도 제게는 우리가 서로에게 속한 구성원들이라는 것을 암시했어요. 각자는 전체의 부분입니다.

(180~181쪽)


우리가 필요한 것은 중심이에요. 우리 모두를 한데 모을 수 있는 어떤 것 말이에요. (…) 나는 사람이 언제나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186~187쪽)



공동체의 의미와 그 속에서 각자의 모습을 돌아보길 바랐던 작가의 의도 속에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찾고자 했던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누군가는 죽음을 향해 가고, (전쟁 속에) 역사와 도시는 부서져 사라지겠지만 눈앞의 자연만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 그럼에도 진실된 ‘현재’는 세대를 넘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 더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어떤 조화 속에서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고 있을 거라는 전망이었을까. 하지만 어디에서도 버지니아 울프의 명시적인 목소리는 발견할 수 없다. 시적이고 은유적인 대사들을 더듬으면서 어떤 ‘변화’에 대한 의지만은 굳건했음을 짐작해보게 된다.



변화가 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사물이 완벽하지 않는 한 말이다, 완벽하다면 그들은 시간을 견디리라 그녀는 추정했다. 하늘은 변함이 없었다.

(164쪽)



소설의 마지막은 이자와 자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예고하며 끝난다. 현실 속 눈앞에 닥친 싸움(전쟁)을 예견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싸움을 통해 새 생명의 잉태를 기원하기도 하는 결말은, 모든 것을 부숴내는 전쟁 이후 재건될 새로운 삶과 새로운 미래까지도 희망해보려는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울프 일기>에 보면 <막간>을 쓰는 동안 행복에 잠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소설의 결말에서도 현실에 대한 저항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울프는 스스로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막간>이라는 소설이 하나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연극이었듯, 울프의 죽음 또한 그 연극의 장막 속에 있는 듯 기이한 기분에 젖어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