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비용 데버라 리비 자전적 에세이 3부작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백수린 후기 / 플레이타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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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반,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침실을 빠져나온다. 원두커피를 내린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한참 써 내려가다가도 7시 반이 되면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아이를 깨워 등원 준비를 시킨다. 아이가 밥을 먹는 틈새를 이용해 지난밤의 설거지를 하고, 옷을 입고 세수를 하는 동안 재빨리 청소기를 돌린다. 사이사이 늑장 부리는 아이를 독려하고 없다는 걸 찾아 챙겨주느라 잰걸음으로 집 안을 오간다. 하지만 괜찮다. 그래야 아이와 남편이 집을 나서는 순간 다시 책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살림 비용을 치러 글을 쓰고 책 읽을 나만의 시간을 마련하는 거니까.



데버라 리비는 50의 나이에내 삶의 기력을 어지간히 바쳐 지은 가정을 내 두 손으로 허무”(20)는 이혼을 경험하고 이후 자기를 되찾아 가는 과정을 <살림 비용>(이예원 옮김, 플레이 타임)에 기록했다. 이혼에 대한 그녀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 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20) 그 기진한 여자를 마주하고,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감당하면서 다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작가로 꾸준히 활동해왔던 그녀조차글을 쓰거나 가르치거나 이삿짐을 풀지 않을 때는 막혀 있는 욕실 세면기 배관을 뚫는 데 온 주의를 집중해야했으니까. (32)



그녀는 허름한 아파트로 옮겨 새로 집을 꾸미고 친구의 헛간을 빌려 작업실로 삼는다. 낡은 집은 수도와 전기가 수시로 끊기고 배관이 막히기 일쑤. 집과 작업실 사이 언덕길을 오르기 위해 전기 자전거도 마련한다. 그래서 앞머리에 나뭇잎을 매단 채 중요한 미팅에 나가고, 수명이 다해가는 컴퓨터로 생계를 위한 글을 쓰지만, 모든 비용을 스스로 책임진다. 그 와중에 어머니의 죽음을 겪어내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챙긴다. 그러는 사이 식탁에서 오가던 고성은 사라지고, 자신의 소설을 완전히 재구성하듯 삶도 오롯이 자신의 뜻대로 재구성할 자유를 얻는다.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이혼 후의 삶이 안정 궤도로 들어서기까지 지난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할 테지만, 그녀가 온전히 해내길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은, ‘지난날의 복원이 아닌새로운 구성을 원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다시 결혼으로 안착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홀로 충분한 삶을 꾸려가는 결말로 나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여성 세대에는 비혼 족도 많고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을 꾸리는 인구도 늘어가고 있지만, 중년의 여성, 그것도 결혼으로 삶의 기반을 닦은 이가 다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서사는 흔치 않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런 모델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가. 글 쓰기를 통해 다른 삶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엄마로 지워져 버린 자기 이름을 되찾기 위해 용감하게 나서는 여성의 이야기가 말이다.





“여성성이, 적어도 내가 가르침을 받은 여성성이 끝을 맞은 것일 수도 있다. 문화적 인성으로서의 여성성은 이제, 적어도 내 경우엔,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남자들이 쓰고 여자들이 연기해 온 이 여성성이 21세기 초입을 여전히 기웃거리는 기진한 유령이라는 점만은 명백했다. 내 배역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중단시키는 데는 어떤 비용이 따르려나?”

(77)



‘인내하는 어머니, 너그러운 어머니는 내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여성성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내의 역할은 많은 부분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것까지 해내기엔 넉넉한 아량은 고사하고 시간과 체력조차 부족했으니까. 내게 남은 시간과 체력은 온전히 아이를 돌보는데 투입되었고, 그런 몇 해를 지나면서 엄마 역할에 의문이 드는 지점에 다다랐다.



어디까지 참고 희생할 수 있을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아이와 나 사이 여백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아이가 완전히 독립하기 전까지는보살핌의 노동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혼한 리비 또한 글을 쓰다가도 저녁 시간이 되면 고등학생인 딸아이의 저녁을 차려주러 부리나케 가방을 꾸리니까. 깊숙이 뿌리 박힌 모성 신화는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압박이 되었고, 아이의 요구에는 늘 너그러워야 하며 그런 삶을 인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한다. 누구도 내게 드러내 놓고 그렇게 요구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자신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인내하는 어머니, 너그러운 어머니란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역할임이 분명하다. 또한 그런 어머니만이 최선일까 하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한 사람의 삶을 위해, 또 한 사람의 삶을 희생하는 불균형 속에 만들어지는 관계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그래서 누군가는 일정 부분의 회한을, 또 한 사람은 부채감을 갖게 되는 관계, 한 사람이 행복한 동안 한 사람은 불행을 감내하는 게 당연시되는 관계를 괜찮다고 여길 수 있을까. 조금 부족하고 불만족스럽더라도,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을 일궈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게 아닐까. 그래서 불완전할 테지만 누구를 탓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그런 삶이.



그러니내 배역에서 벗어나 (가부장제와 모성 신화의)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싶다. 이야기를 중단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배역을 맡고 싶다. 아이 대신 모든 걸 챙겨주며 인내하고 희생하는 어머니가 아닌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한 여성으로 아이 곁에 있고 싶다. 그러려면어떤 대가가 따르려나?”(77) 어떤 비용을, 어떻게 지불해야 할까?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자정부터 다음 날 이른 시간까지 진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홀짝이다 보면 지면에서도 어김없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글쓰기용 의자에서 한 발도 안 움직이고 밤을 거니는 방랑자가 된다. 낮보다 부드럽고 조용하고 슬프고 차분한 밤, 그리고 그 밤을 채우는 소리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 배관에서 올라오는 소리,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삐그덕 대는 바닥 마룻장과 유령처럼 오가는 야간 버스 소리, 그리고 도시에 사는 한은 어디서건 들려오기 마련인 바닷소리를 닮은 희미한 소리, 바다를 닮았지만 실은 그저 삶일 뿐인, 더 많은 삶의 소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게 내가 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더 많은 삶.”

(114~115)



“모두가 즐거이 누리는 가정, 순조롭게 기능하는 가정을 짓는 일은 수완과 시간과 헌신과 공감 능력을 요한다.”(20) 끝없는 헌신과 공감 능력을 쏟아붓느라 비어버린 내 안의 자릴 다시 채울 방법마저 잊어버린 지경이다. 아내로, 엄마로만 기능하느라 삶의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집과 가족이라는 하나의 서사에 갇혀버린 것 같다. ‘더 많은 삶이라니,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더 많은 삶’, 천천히 또박또박 힘주어 소리 내어 읽어본다. 더 많은 소리, 사람과 세상과 이야기가 넘실거려 가변성을 만드는 열린 서사가 내게도 가능할까.



“파탄한 건 가정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지어낸 이야기다.” (23) 나와 아이, 남편이라는 세 개의 삶이 누군가의 희생 없이 조화롭게 엮이어 공명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지켜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건가부장제가 지어낸 이야기에서 벗어나 삶을 재구성하는 것. “다른 사람이 우리 대신 상상해 온 인물”(106)로 연기했던 삶에서 빠져나와 내가 원하는 배역, 내게 맞는 배역을 만들고 싶다. 주연 같지만 조연인 역할이 아니라 빛나지 않고 조명받지 않더라도 무대에서 진짜 주연이 되는 그런 역을. 물론, 거기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를 것이다.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테니까.



“우리가 거짓을 멈출 때 더 많은 진실이 창조되고 또 가능해진다.”

<가능성의 예술들> 아드리엔 리치



거짓을 멈추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거짓이었음을 알아채고, 진심을 찾아내려는 노력, 그리고 익숙한 거짓의 몸짓에서 벗어나려는 의식적인 연습. 그 과정 속에 있다고 느끼는 요즘, 나를 만족시키는 글을 넘어 원고료를 벌 수 있는 글을 쓰고자 애쓰고 있다. 살기 위해 쓰기 시작했는데, 쓰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로 존재하기 위해 썼지만 나로 존재하기 위해 살기도 한다. 앞선 두 문장을 매끄럽게 연결해 줄 접속사를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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