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났다. 눈 앞의 계절은 덧없이 가을로 넘어가, 겨울, 봄, 다시 여름의 과정을 거치며 변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여름의 어떤 기억만은 우리 안에 남아 되살아나고 재구성되길 반복할지도 모른다. 백수린의 단편소설집 ≪여름의 빌라≫에는 어긋나거나 실패한 서사를 복기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나 극적이지 않은 순간에 생기는 기척을 통해 이전까지 포착되지 못했던 조용하고 미세한 균열을 우아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어째서 그런 기척에 끌리는 걸까?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만이 알 수 있는 작은 생채기가 마음 한 구석에 생긴 것처럼,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선을 건넌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또렷하게 선 하나가 그어지는 걸 목격했고, 이제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볼 수 없겠다고 깨달았던 순간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데도 그 일의 이전과 이후 나는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자각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을 나조차도 알 수 없어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데, 거기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이상한 끌림 때문이다. 그 끌림은 경계를 감각하는 일일 것이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감각하고 무언가를 의심하면서 맴돈다. 하지만 어떤 서성거림은 조금씩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