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요조.임경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에서 에세이가 필요한 순간


“타인의 알콩달콩한 우정을 굳이 엿봐서 뭐하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확실히 타인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보며 우리가 모는 배의 키를 조절한다. 저렇게 살아야지, 혹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다.”

p.8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임경선, 요조


잘 살고 있나 의문이 들 때, 우리는 다른 이의 삶이 궁금해진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혹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때로는 후미진 곳에서 자신의 배를 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배의 키를 조절하고 싶어 진다. 담백하면서도 솔직한, 그러면서도 삶에 밀착된 공감과 울림이 있는 글, 그런 글이 고파질 때 에세이를 펼친다.


한 번 봉투를 뜯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감자칩처럼, 바삭하게 구운 칩에 적당한 소금기만으로 감칠맛을 내는 글, 과자처럼 가볍고 재미나게 씹히지만 가슴이 몰랑해지고 이내 흐뭇해지는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그런 내 손에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요조, 임경선, 문학동네)가 들렸다. 어땠냐고. 첫 장을 넘긴 이후 단번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내가 딱 원했던 감자칩 같은 책, 담담하고 선명하면서 유쾌한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와 임경선이 띄운 편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요조(본명 신수진)와 임경선이 주고받은 우정 편지를 엮은 책이다. 가수이며 책방을 운영하며 글도 쓰는 요조와 공백 없이 책을 내놓고 있는 16년 차 작가 임경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친구라는 사실에 놀랐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당당함에 반했다. 그녀들은 솔직함, 죽음, 나이 듦과 몸, 이별 같은 삶을 아우르는 철학적 주제에서부터 일과 연애, 사랑과 관련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일에 있어서는 강연을 준비하는 법이나 업무 메일 쓰기, 에세이 쓰기 팁처럼 실용적인 제안까지 놓치지 않고 사랑과 연애에 있어 섹스의 문제를 논하는 거침없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미덕은 솔직하고 단호하게 자신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부터는 감출지 아슬하게 그 수위를 조절하는 균형감에 있다. 임경선이라는 경험 많은 작가의 면모, 요조(신수진)라는 예술가의 여유가 콤비를 이루어 만들어낸 감각이다.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면서도 상대를 아끼는 다정함이 배어 나고 소소한 웃음까지 놓치지 않는다. 나이 드는 일, 연애, 죽음과 이별, 싫은 사람들과 시간을 쓰는 방식에 대한 문제는 누구나 골몰했던 문제일 것이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을 두 작가가 빚어낸 또렷한 문장 속에서 발견하며, 후련하고 재미났다. 그리고 따스했다.  



단정 짓지 않고 순간에 발을 담그기


그들이 공유한 주제 중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이 있다고 단정 짓고 시도조차 않는 냉소적 태도에 대한 경계이다. 요조는 한 소설에서 읽은자고 나면 다 똑같아지는 거 아니냐는 식의 연애담을 삶에서 가중되는피곤함에 덧대어 이야기한다. 거기에 임경선이 항변하며 이렇게 말한다. “단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이 썩 아름답지 않다는 것만으로, 그것을 실패나 불행의 경험으로 치부하는 것가혹한 처사라고. 그러면서 인간은감정이라는 것이 있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무엇보다 끝에 다다르기까지의 시간은 모두에게 다르고 그 사이에 느끼게 되는 기쁨의 결도 다양하다고 조언한다.


“‘잘될 것을 확신하니까’ ‘난 반드시 해낼 거니까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열심히 하고 거기에 운도 따라주면 어쩌면 원하던 바를 이룰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뿐이지. 하지만 그 이전에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애쓰는 그 자체로 생생하게 살아가는 실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발을 푹 담그는 것이 아닐까.”

p.95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임경선의 말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끝이 예견되어 시도를 망설이는 날이 와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더라도 마음이 끌리는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뛰어들게 되길 바랐다. 나이 들었다고, 다 안다고 고개 돌리지 않고 매 순간 처음처럼 순수하게 시작하길. 그러면서 발을 푹 담그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기쁨만으로 결과와 상관없이 충분할 수 있다는 걸 놓치지 않고 싶다.




타인의 우정에서 나의 우정으로


자신에게 집중하고 일에 열정적이며을 중시한다는 데서 통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둘 사이 온도차는 분명하다. 임경선은 따지고 분류하고 정의 내리며 자신의 것을 탄탄하게 쌓아낸 사람 같다. ‘매 순간 공들여 임하는 사람인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를 내고, 선을 그음으로써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한다. 반면 요조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고 부드럽고 나른 나른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시도하는 신수진다움을 가지고 있다. 허튼 선택은 절대 안 하겠다는 임경선과 달리 손해를 봐도 퍼주는 사람이고, 선을 긋기보다 끌어안으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음을 살피는데 예민해서 그 예민함으로 타인까지 배려할 줄 안다. 거기에 특유의 예술가적 성향이 더해져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느슨하게 원을 그리고 신중하게 넓혀간다.


사적으로도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 자신과 상대방, 서로의 삶을 위해 진중하고 사려 깊게 건네는 이야기를 읽으며우정의 의미를 되새겼다. 진정한 교감은 뿌리 깊은 커다란 나무처럼 삶에 필요한 그늘을 드리우고 우리를 커다랗게 품어준다. 긴 인생에서 진실한우정의 존재는사랑만큼 고귀하다.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편지가 쓰고 싶어 졌다. ‘깊은 곳에서 통하는나의 친구에게.


"너무 사랑하는 언니가, 제가,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이 여기 있어요. 있을 때, 잘해야 해요."라는 요조의 말처럼 지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여기'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삶의 모든 순간에 잘하고 싶어 졌다. 우리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녀이기에 꺼낼 수 있는 속말, 쓰면서 더 사랑하게 될 우리라는 존재를 떠올렸다. 책장을 덮고 내 삶에 우정의 식탁을 차릴 순서다. 갓 구운 레몬 파운드케이크에 은은한 향이 감도는 홍차면 충분할 것이다. 중요한 건 식탁 위 음식이 아니라 맞은편 의자에 앉을 사람이 누구냐 일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