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는 존재한다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에서 화자인 '나'는 결혼하고 석 달이 지나면서 자신과 남편 사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는 경험을 한다. 아이가 없고 둘 다 학생이라 공부를 하던 시절임에도, 둘 사이의 “차이는 시작되었다”(p.181). 남편은 주변 환경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책에 몰두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압력솥의 추가 울리면 엉덩이를 떼는 것은 그녀였고, 닭을 삶고 당근 껍질을 벗기고, 저녁을 먹은 대가로 설거지를 했다. 그보다 결코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닌 그녀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어떤 우월성의 명목으로’ 가능한 것인가.
<얼어붙은 여자>에는 소녀가 여성이 되고, 여성이 결혼과 출산, 가사와 육아를 거쳐 ‘얼어붙은 여자’가 되는 과정이 놀랄 만큼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니 에르노의 부모는 소상공인 출신으로 여느 집과는 다른 모습으로 집안에서 역할을 분담했다. 식료품점을 맡은 어머니가 사장 역할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카페를 담당하여 요리와 잔일을 해결했던 아버지가 더 여성적이었다. 독서를 즐겼던 어머니는 에르노의 학업을 중시했고, 여성으로서 기대되는 행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에서 '나'의 어린 시절에는 "남녀 사이에 역할의 차이가 있다는 식의 생각이 드리워지지 않았(p.44)"고 '나'는 "여자애라는 사실에 만족하는 편(p.45)"이었다.
‘나’는 청소년기를 지나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성적 욕망에 눈을 뜨고 남성적 시선이 대상화하는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에 몰두하면서 자신과 힘겨루기를 했다. 자신이 자란 사회, 식료품 겸 카페가 중심이었던 중하위 계층과는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모와의 분리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 그녀는 “넌 너만 생각하면 된다(p.53)”는 부모 아래 주체적인 선택을 하며 성장했다. 그랬던 그녀에게도 결혼만은 별개의 문제였다. 결혼이 하나의 ‘완성’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남녀의 극명한 차이를 목격하게 된다. 부모님과 그녀 자신이 꿈꾸었던 성공의 형태이기도 한, 부르주아 계층의 안주인이 되면서, 세계가 남자의 영역과 여자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남편이 학업을 마치고 자신의 경력을 쌓아 중간 관리자가 되는 사이, 그녀는 아이를 낳는 바람에 학업을 미루어야 했고, 아이를 키우며 간신히 공부를 끝내 선생님이 되었다. 퇴근 후 여유롭게 바흐를 듣고, 주말이면 조용히 신문을 읽는 남편과 달리 그녀는 퇴근 후에도 장을 보느라 넋이 나가 있었고, 빨래와 압력솥 감시, 당근 껍질 벗기기가 너무 많아 잠깐의 몽상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염원하던 꿈(선생님)을 이루었지만, 일과 가사, 육아라는 세 개의 공을 돌리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체념과 포기, 권태가 일상에 배어들었고, 서서히 ‘얼어붙은 여자’가 되었다.
그런데 소설 속 그녀에겐 이름이 없다. (자전적 소설이라 에르노의 경험을 토대로 했으리라 짐작하게 되지만) 그래서인지 그게 꼭 ‘나’ 같고 우리 엄마 같다. 내 친구들 같아서 마음이 얼어붙는다. 국적도 다르고 태어난 시기도 다른데 등장하는 상황과 감정들이 너무도 내 것 같다. “나는 늘 나만 그렇다고 생각해 왔.”(p.79 <부끄러움>, 아니 에르노)는데,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슬펐다. 내게도 그런 소녀 시절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꿈꾸는 대로 다 가능할 것 같았던 시절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벽들이 놓였지. 반장은 남자만, 여자는 부반장. 과학반에 여자는 너 하나야, 여자가 어떻게?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지. 여자는 결혼해서 애나 키우는 게 최고야. 애도 못 낳는 여자.
아니 에르노의 글이 구원하려는 것
아니 에르노는 1940년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의 이브토, 카페 겸 상점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문학을 공부한 후, 정식 교원, 현대문학 교수 자격증을 획득했다. 1974년 <빈 옷장>으로 등단해 <남자의 자리>로 르노도상을 수상했으며, 자전적인 글쓰기와 역사, 사회를 향한 작가만의 시선을 가공이나 은유 없이 정확하게 담아내는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대표작으로는 <단순한 열정>, <사진의 용도>, <한 여자>, <부끄러움>, <또 다른 소녀> 등이 있으며, 2008년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자신이 경험한 과거, 그 중에서도 위험하거나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상처를 골라 낱낱이 파헤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아니 에르노의 문학은 ‘칼 같은 글쓰기’로 일컬어진다. 그녀가 채택한 자전적 소설이라는 장르는 ‘기억에 대한 주관적 시선’은 있을지언정 ‘거짓’과 ‘허구’는 없다. 은유나 꾸밈도 없는 단문의 문장으로 때론 폭력적으로, 대체로 사건의 밖에 서 있는 관찰자의 담담한 시선으로, 과거, 기억, 사건을 쓴다. 거기에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 문화, 계층과 관습, 문화 속에서 자라난 개인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런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늘 나만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p.79 <부끄러움>)고 중얼거리게 된다. 글쓰기라는 그녀만의 카메라를 통과하는 순간 개인의 서사는 어느새 보편의 서사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