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의 말 -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4월
평점 :
일시품절


 

 

 

"작가의 사명은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거라고 말했지만, 저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바 작가의 소명은 온갖 종류의 허위에 맞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에요." p.196

 

 

1933년 태어나 2004년 골수성백혈병으로 사망한 수전 손택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예술 문화 평론가로 연극 연출가, 영화 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열다섯에 버클리 대학교에 입학, 시카고대학교에서 철학과 고대사, 문학을 공부하고 스물다섯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파리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등에서 수학했으며 컬럼비아대학교, 뉴욕시립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1963년 첫 소설 <은인>을 출간했고 이듬해 <파르티잔리뷰 Partisan Review>에 <’캠프’에 관한 단상>을 발표하면서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 예술 작품에 대한 과도한 해석에 반기를 든 글로 수전 손택은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통해 전쟁과 미국의 허위를 고발했고, 내전 중인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는 등 실천가적 행보를 걸었다. 주요 저서로 소설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인 아메리카>, 에세이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은유로서의 질병>, <타인의 고통>등이 있다.

 

 

<수전 손택의 말>은 <롤링스톤>의 에디터이자 작가인 조너선 콧이 파리와 뉴욕에서 두 번에 걸쳐 손택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뷰에 대한 논평이 추가되거나 기사화를 위한 편집 없이 ‘육성’을 그대로 포착한 녹취록이라는 점에서 글은 생명력을 지닌다. 사유를 중심으로 정돈 수렴된 글로서 ‘책’을 읽었다는 느낌보다 사람으로서 손택을 ‘만났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손택은 <’캠프’에 관한 단상>과 <해석에 반대한다>로 일약 미국 지성계의 스타로 떠오른 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 1974년 유방암 선고를 받고 2년간 투병 후 완치되었다. 책에 담긴 인터뷰는 손택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살아 돌아온 시점, 질병을 앓으며 써낸 <은유로서의 질병>의 출간을 앞둔 1978년 이루어졌다. 마흔 다섯에 죽음과 싸워 이긴 승리자로 돌아온 그녀는 패기로 뭉쳐 있다.

 

 

그녀의 저서인 <은유로서의 질병>, <사진에 관하여>,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대한 인터뷰를 중심으로 책과 사랑,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훑으며 그녀의 삶을 아우르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작가의 주요 저작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손택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고조시킨다. 스스로도 ‘군더더기 없고, 정확하고, 요란하지 않고, 꾸밈없’는 문체를 구사했지만 ‘쓸데없는 걸 다 벗어던진 적나라한 특질 때문에’ 베케트와 카프카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작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최대한 책임감을 갖고’ 싶고 ‘로큰롤을 사랑’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어떻든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싶지는 않’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여성. 손택의 첫인상은 당당하고 대범하지만 솔직하고 열정이 넘치며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매력적 여성으로 다가온다.

 

 

"적어도 은유에 극단적인 회의론을 품고 있다고 해야겠죠. 은유는 사유에 핵심적이지만 쓸 때는 은유를 믿으면 안 돼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허구라는 걸 알아야 하죠. 아니, 필수적인 허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은유를 품지 않은 사유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죠. 그러나 바로 그런 사실이 그 사유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거예요. 내 마음을 끄는 건 항상 그런 회의주의를 표현하면서 은유를 넘어 깨끗하고 투명한 무언가로 나아가는 담론이에요." p.101

 

 

"우리가 나이가 들고 피부가 좀 더 쭈글쭈글해진다고 해서 뭐가 어떻단 말이죠? 무슨 상관이에요? 나이가 몇 살이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무언가 유치하다거나 어른스럽다는 생각에 근거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어떤 관념을 부과하려 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p.146

 

 

손택은 좋은 사회란 주변인에게 너그러워야 하며, 여성은 물론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도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해서는 안되며, 지나친 은유와 해석으로 허위를 씌우기보단 ‘실재’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살기를 주저하는 자는 질병과 공범이나 마찬가지이며, 가슴을 뛰게 하고 삶을 바꾸기도 하는 음악과 예술의 힘은 대중과 고급 예술로 나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가까운 사람들 속에서 허위를 벗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찬미하는 그녀. 세상의 모든 이분법과 사회문화적 관념이 덧씌우는 시선에 철저히 저항하는 글을 썼던 작가이지만, 그를 수놓은 ‘명성’이라는 허위 속에 사람-손택은 가려져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 이미지를 가졌던 독자에게 사람-손택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로서 이 책은 가치를 발휘한다.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인해 상황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고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로 인해 여성주의와 관련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발견된다. 문학에 있어 ‘여성적 시선’을 구분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는 입장은 이분법을 철폐한다는 명분으로 현실에 명백히 존재하는 차별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런 질문들은 그의 저서를 찾아 읽은 후 다시 판단해볼 수 있겠다.

 

 

시대의 지성으로 문화 예술의 중심에 있었고, 이름 자체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던 손택. “전 자신을 스스로 창조했다는 생각을 해요.”(p.194)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중심에 서 있는 것이란 ‘공감’이며 ‘사람들이 편을 갈라놓은 것 이상’을 보게 해주는 의미라고 했다. 특출 나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삶을 연출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하지만 아직은 모든 판단을 유보하기로 한다. 이 멋있는 여성을 더 알고 싶다는 강렬한 호기심이 일고 있다. <수전 손택의 말>은 손택 읽기의 첫 단추로 적절한 선택인 것 같다.

 

 

"자기 공간은 스스로 창조해야만 해요. 침묵과 책들로 가득한 공간 말이에요."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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