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판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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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출근하는 아빠를 현관에서 배웅하고도 아쉬움에 쫓아 나가 보면 골목은 늘 텅 비어 있었다. 그럴 때면 아빠의 걸음은 얼마나 빠른 건지, 아빠에게 초능력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아빠는 수퍼맨’이라는 상상으로 연결되었다. 키가 꽤 자란 후 우연히 동네에 다시 갔을 때 나를 둘러싸고 있던 하나의 장막이 깨어지는 경험을 했다. 넓은 대로라고 여겼던 길은 그야말로 좁고 짧은 골목길에 불과했다. 어린 아이가 서투른 걸음으로 현관을 나와 대문에 이르는 시간이면 성인의 걸음으로 충분히 골목을 벗어날 정도의 길이었다. 그 순간 어린 내가 우러러 보았던 하나의 세상이 작고 보잘 없는 것으로 무너져 내렸다. 각자의 삶에는 인생의 비밀을 터득하게 되는 어떤 절대적 순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섬』의 작가 장 그르니에는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p.21)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날 보리수 아래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그 하늘이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무(無)’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삶은 ‘공(空)’이라는 인식의 발로였다. 그러한 경험은 ‘왜 사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했지만 그가 세상을 무심한 시선으로만 바라본 건 아니다. 작은 고양이의 움직임에서 생(生)의 비밀을 찾아내고 담장 너머에서 풍겨오는 꽃의 향기에도 걸음을 멈추었다. 병에 걸린 정육점 주인을 찾아가 책을 읽어주며 위로했고, 자기 앞에 놓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길 주저하지 않았다. 미시적 실존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거시적 관점에서 삶을 성찰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던 한 철학자의 관조와 사상이 『섬』 전체에서 흘러나온다. 그렇기에 『섬』은 삶의 진리를 찾아 떠났던 한 철학자의 순례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가 떠났던 순례의 항로를 따라 독자는 몇몇의 섬에 발을 내딛게 된다. 케르겔렌 군도, 행운의 섬들, 이스터 섬, 상상의 인도, 그리고 보로메 섬들까지, 그를 매혹시키고 성찰하게 했던 철학적 사유의 지점들이 거대한 바다 위에 부표가 되어 떠 있다. 책읽기를 업으로 삼은 학자이자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사상을 겸비한 철학자의 글은 안개와 황폐한 외관으로 덮인 미지의 섬을 닮았다. 매혹적이지만 단번에 다가가긴 쉽지 않다. 우리는 그가 찾아낸 비밀의 향기를 간신히 맡아 볼 따름이다. 인간과 삶의 유한성에 대해, 순간과 자연에의 합일에 대해, 그리고 비밀과 신비에 대한 끝없는 예찬과 절대와 신성에 대한 명징한 깨달음에 대해. 하지만 비밀은 늘 ‘방벽’ 뒤에 있다고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어떤 열렬한 사랑은 그 주위에 굳건한 요새의 성벽들을 쌓아 두려 한다. 그 순간 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밀을 예찬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

(80쪽, 『섬』, 장 그르니에,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20)

 

 

 

그르니에는 우리와 대상 사이에 놓인 것, 우리와 삶의 본질 사이에 놓인 것을 ‘방벽’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진지함, 의젓함, 체통, 소유 등의 감정은 그러한 몰이성적인 경멸들이 넘어 들어올 수 없는 방벽의 구실을 해 준다.”(p.86)) 우리와 진실 사이를 가로막고 (“저 방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나 항상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게 마련인 저 방벽, 항상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을 것 같은 저 신비”(p.92)) 우리를 매혹시키기도 한다. 그는 도처에 놓인 ‘방벽’-세상과 그, 고양이와 그, 낯선 도시의 담벼락과 그, 죽음과 그 사이-에 사로잡혀 그 너머의 진실에 닿고자 마음을 기울인다. 담 너머 존재하는 대상의 진실을 보기 위해 미천해지길 망설이지 않고 ‘비밀’과 ‘결핍’을 통해 영감을 길어 올리길 갈망한다. 그러한 노력을 그는 ‘사랑’이라 부른다.

 

 

 

독자는 『섬』을 통해 흐르는 그르니에의 사상에서 동양적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실존주의적 경향을 띠면서도 회의와 관조의 태도를 취하는 그의 사상은 ‘인간’ 외부의 것으로 눈을 돌려 자연에 집중한다. 비밀과 신비를 예찬하고 무(無)에서 가득 참을 발견하며, 끝없는 통찰을 통해 세계와 절대적 합일을 이루는 경지에 도달하는 그의 성찰이 우리에겐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탈리아 라벨로의 해안에서 “모든 지성을 혼미하게 만드는 바로 그 장관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p101) 속에 존재의 탄생을 경험한 그는 “제로에서 무한으로 옮겨”(p103)가는 깨달음을 얻는다. 알제의 카스바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던 길에서 저자는 “우리는 나나 저희들이나 한결같이 아무런 의지할 버팀대도 없지만 서로서로를 지탱해주고,(…) 그 자체로 환원된 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절대적 통일을 은밀하게 실감”(p.164)한다. 그의 이러한 경험과 사유는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떠올리게 하고, 불교의 ‘공즉시색(空卽是色)’과 ‘무아지경(無我之境)’의 경지로 이해되기도 한다.

 

 

 

바다 위에 떠가는 꽃들아,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보이는 꽃들아, 해초들아, 시체들아, 잠든 갈매기들아, 배의 이물에 갈라지는 그대들아, 아, 내 행운의 섬들아! 아침의 예기치 않은 놀라움들아, 저녁의 희망들아 – 나는 또 그대들을 이따금씩 다시 보게 되려는가? 오직 그대들만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대들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티 없는 거울아, 빛없는 하늘아, 대상 없는 사랑아…….

(103~104쪽, 『섬』, 장 그르니에,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20)

 

 

 

 

그르니에의 철학적 독특함의 발견과 더불어 『섬』이 가진 또 하나의 묘미는 단정하면서도 시적인 문장에 있다. 그 문장들은 저자가 깨달음을 얻은 찬란한 순간으로 일순간 우리를 데려간다. 공(空)에 매혹되고 존재의 탄생과 세계와 자신의 합치를 경험했던 순간, 그가 서 있는 그곳에 우리 자신이 서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만의 비밀스런 경험이 독자의 삶 속으로 생생하게 겹쳐 들어오면 우리는 지나왔던 시간 속 엇비슷한 경험들을 되짚어보느라 골몰하게 된다. 그의 문장은 내달리려는 생각을 멈춰 세우고 막막한 침묵에 젖어 들게 하는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정말로 다 말해 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는 모두가 어떤 비길 데 없는 힘과 섬세함으로 암시되어 있다. 정확하면서 꿈결 같은 이 가벼운 언어는 음악처럼 흐른다. 이 언어는 빠르게 흐르지만 그 메아리들은 긴 여운을 남긴다.

(13~14쪽, 『섬』에 부쳐서, 알베르 카뮈, 『섬』, 장 그르니에,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20)

 

 

『섬』의 원제는 ‘섬들’(Les Iles)이다. 그르니에가 순례한 섬들의 진정한 의미는 섬과 섬 사이 바다를 뒤덮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그 침묵에 대한 해석은 저마다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렇게 그르니에는 우리를 각자의 순례로 이끈다. 생(生)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을 오가며 구도의 여행으로 삶을 살았던 저자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p.92)고 했다. 그르니에가 띄워 놓은 부표를 따라 저마다의 순례를 떠나보자. 자신을 벗어남으로 진정한 자아에 이르는 길을 찾았던 그의 비밀에 우리는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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