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감염병이 삶을 뒤흔든 작년, 우리는 기후 위기라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연 이은 폭우 뒤로 폭염이 지속되었다. 계절이 바뀌자 한파가 몰아닥치고 많은 눈이 내렸다. 지구의 온도는 상승했고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졌다. 우리가 무분별하게 쓰고 버린 것, 그리고 할퀴고 상처 낸 것이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이상 기후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2021년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몇 년 뒤를 생각하고 살아?”(p.38)라는 자기 중심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이 더 문제고,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에 밀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늘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 이대로도 정말 괜찮은 걸까.
라디오 피디이자 세월호 참사 관련 팟 캐스트를 제작하기도 했던 정혜윤은 코로나 19와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전염병과 관련된 온갖 자료를 섭렵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었던 1348년 경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을 읽게 된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고 쓰여진 책에는 슬픔과 상실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사랑의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흑사병이 초토화시킨 지구에서 하필이면 ‘사랑’에 대해”(p.20) 보카치오가 썼다는 것에 저자는 주목한다. ‘이전에는 없었던 사랑’에 대한 은유일까, ‘앞으로 올 사랑에 대한 가능성’일까.
그의 고민은 코로나 19로 상실과 고립,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막막함에 처한 우리 시대야 말로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으로 옮겨간다. 우리의 삶은 위태로워졌다. 당연하게 여겼던 ‘토대부터 흔들리는 상황’이다. “가치있는 변화만이 유일한 희망”(p.20)이 될 수 있다며 저자는 새로운 시대를 살기 위해 새로운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이야기를 펼쳤던 방식을 좇아 열흘에 걸쳐, 열 가지의 주제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쓰여진 책이 『앞으로 올 사랑』(정혜윤, 위고, 2020)이다.
정혜윤은 열흘에 걸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부터 미셸 우엘백의 『세로토닌』,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등 다양한 문학 작품을 넘나들며 레이첼 카슨과 릴케, 존 버거, 어슐러 K. 르귄, 슬라보예 지젝까지 시대의 지성에게서 지혜를 빌어온다. 거기에 과학과 환경을 아우르는 온갖 자료를 연결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랑’을 탐색한다. 그리고 지구가 달려가는 방향이 ‘디스토피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성장과 개발, 경제’의 논리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것을 촉구한다. 성장이 아니라 장기적 생존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함을 주장하며 저마다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사랑’의 감정을 두드린다.
‘경제’라면 만사형통인 세상은 무분별한 개발과 대규모 자본의 횡포를 방관했고 그로 인해 자연 자원의 파괴와 원주민들의 식량 문제, 빈곤이 심화되었다. 식량과 빈곤 문제는 부시미트(육상척추동물의 고기를 가리키는 명칭) 소비의 증대를 가져왔고 동물 몸에 살고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윤과 성장에 기반을 둔 공장식 축산업은 동물 학대를 당연시 여겼고 이에 순응하는 사이 다른 생명의 고통에 아파하고 연민을 느끼는 인간의 선한 본성은 무감각해졌다. ‘생명과 삶의 전 과정에 대한 돈의 지배’는 강화되었지만 우리는 ‘무지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러는 사이 자연과 생명, 공존의 가치는 무너졌다.
조류독감이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에는 개인의 서사 너머로 사회 구조와 시스템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지 않으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일은 자신만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의 유행은 우리가 고려해야하는 관계 속에 “반드시 동물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p.216)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동안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철저히 ‘인간’과 ‘경제’ 중심이었다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은 ‘인간중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