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정지돈 지음 / 스위밍꿀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보다 나빠지진 않겠지, 라는 기대. 이게 엄청난 거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야. 나빠지지 않는게 가장 힘든 일이야. 나빠지지 않으려면 미친듯이 좋아져야 해. 그러면 겨우 나빠지지 않을 수 있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110쪽,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정지돈, 스위밍꿀, 2017

 

 

 

 

일년에 1/3 이상은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 아래 살고 있다. 무차별 총기 난사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해외 기사를 접한다. 서울에 집을 사는 건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일이 되었고 지방 도시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 19의 출현으로 자유로운 외출을 포함한 당연한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다.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간지 반 년이 되어간다. 미래는 지금보다 나쁘지 않을까? ‘나빠지지 않으려면 미친듯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래야 ‘겨우 나빠지지 않을 수’ 있는데. 좋아질 수 있을까? 애당초 나빠지지 않길 바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기대인 건 아닐까?

 

정지돈의 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스위밍꿀, 2017)에는 2063년의 미래 사회가 단편적으로 그려져 있다. 총기소지 합법화로 총격전이 일상화된 한반도, 서울 이외 지역은 공동화되면서 우범지대가 되었다. 서울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죽음에 내몰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주국은 집 없는 사람들을 서울 밖으로 강제 이주시키려고 한다. 짐은 버스 운전기사다. 취미는 없지만 일하는 시간 외에는 글을 쓴다. 어느날 친구 안드레아로부터 자신과 무하마드를 태운 밴을 옌지까지 운전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보수가 클 것이라며 짐을 설득한다. 짐은 서울에 집을 사기 위해 ‘안드레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위험한 운행에 나선다.

일행은 테러리스트 지원 단체로 몰려 검거 당한 후 이주국 직원 보리의 도움으로 탈출, 난민과 추방자를 돕는 국제인권기구 ADRA가 세운 북한 최초 카페 ADRA에 도착한다. 일행은 마지막까지 이주국의 추적에 쫓기며 간신히 옌지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짐은 어머니를 찾아 부산으로 향한다. 테러리스트로 주목된 전직 스파이 겸 세계 석학 무하마드와 이주국 사이의 추격전에 끼어 일촉즉발의 위험 속에 놓이지만 짐은 내내 얼떨떨한 상태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전 그냥 운전기사예요. 그의 마지막 말이다.

 

소설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문제를 눈 앞에 펼쳐 보여준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분량의 문제인지 결말은 급작스럽고 몇몇 인물의 등장과 행동은 설득력이 부족해보인다. 안드레아와 무하마드가 옌지까지 가야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고 이주국 직원이면서 노 모어 건스 운동을 하고 있는 보리의 추동력도 애매하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 그려진 미래 사회의 현실과 인물들의 행동이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한반도의 통일, 총기소지 합법화, 일상적인 총격전, 지방 도시의 공동화, 서울에 집이 없으면 죽음에 내몰리게 되는 상황, 무수한 난민과 추방자, 불투명한 막에 쌓여 있는 하늘, 일년에 며칠 해가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햇빛을 쪼이는 사람들……. 2063년의 모습은 비극적이다. 덜컥 겁이 난다. 아무생각없이 미래로 나아가다보면 책 속의 비극이 현실로 등장할 것만 같다.

 

 

 

 

내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리는 카페 밖으로 나오며 생각했었다. 생각을 해야 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녀는 생각한다는 걸 생각했고 텅 빈 도로 위를 움직이는 먼지바람을 봤다. 고통이 너무 점잖아서 고통을 느낄 수 없거나 느껴도 고통에게 뭐라고 할 수 없어. 이런 걸 아우슈비츠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참혹한 경험을 한 적이 없어. 나는 비극을 겪은 적이 없어. 보리는 생각했다. 비극을 소비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운석이나 핵폭탄, 지진이 덮쳐 폐허가 된 도시에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남은 인류 최후의 생존자. 그러나 나는 그냥 재능 없는 노동자고 새로운 걸 꿈꾸기엔 넘 피곤해. 보리는 쉬는 시간의 대부분을 청소하는데 썼고 가끔 누워서 핸드폰을 했다. 갈 수 없는 여행지를 검색하며 자신과 여행지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체험했다. 모든 게 너무 위험했고 불완전했으며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이야기, 자본에 대한 이야기, 경제적인 이야기, 물질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나는 유물론자가 아니고 모든 건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거야. 그녀는 카페 ADRA의 외관을 보았고 불투명한 막에 쌓인 하늘의 뒤편에서 빛이 저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제일 보고 싶은 건 그림자야. 길고 선명한 그림자. 그런데 마음이라니. 그런 게 왜 있는 거지?

138쪽

 

 

 

 

 

 

 

사람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끌고 오는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이념이나 주의, 정치 경제적 사상과 같은 고차원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안전이 보장되는 곳에 살 수 없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다면, 매 끼니를 치킨 버거로 때워야 한다면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되지 않을까. 이주국 직원이면서 짐 일행의 탈출을 도운 보리는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단지 ‘길고 선명한 그림자’가 보고 싶을 뿐이다. 버스 운전기사 짐은 안드레아와 무하마드가 추진하는 일이 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서울에 집을 살 돈이 필요할 뿐이다. 인간은 세계 평화나 정의 실현을 고민하기 이전에 맑은 하늘과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고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일상을 유지하는 사소한 문제들이 사람들을 움직인다고 말이다. 신념 없이도 분쟁의 한 복판에 놓일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변혁의 흐름 속에 발을 담글 수 있다. 그럴 때 인간은 순식간에 ‘투사’로 변신하지 않는다. ‘운전기사는 그저 운전기사’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할 뿐이다. 그게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적 모습일 거라고 ‘짐’을 통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백미러를 통해 현재를 본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뒷걸음질한다.

154쪽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 등 이전에 읽었던 정지돈의 소설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더듬으며 미래의 단초를 찾으려는 시도를 발견했다. 그의 소설은 과거를 통해 이루어진 현실의 단면을 직시하고 미래를 향해 질문하게 했다. 흔히 미래로 나아간다, 라고 말한다. 시간은 어찌되었든 앞으로 진행할 것이다. 더불어 세상의 모습과 인간의 삶 또한 앞으로 나아갈까, 그것은 긍정적인 방향일까. 지금은 확신하기 어렵다.

우리는 백미러로 현재를 보며 적당한 방관을 일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미래를 향해 뒷걸음질’ 치고 있는지도. 소설 속 모습이 우리가 당도할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 차를 멈추고 현실 속으로 내려서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