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리한 통찰, 특유의 유머와 통쾌한 독설’로 알려진 조지 오웰(1903-1950). 그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은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글이 다수라 쉬이 읽히지 않는다. 딱딱하거나 난해하다는 인상에 눌려 몰입하기 전에 덮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꽂히기만 한다면, ‘조지 오웰’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식민지 간부에서 밑바닥 생활까지를 어우르는 실질적 체험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힌 작가로 유명하다. 이러한 경험은 다양한 주제의 글과 정치적 논쟁에서 인간 중심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날선 통찰과 탐색을 통해 자신과 인간 내면에 대한 진솔한 민낯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던 작가 조지 오웰, 그는 '정치적 글쓰기'를 주장했다. 지식인으로서, 작가로서 정치적이어야만 한다는 그의 주장은 흔히 권력 다툼으로 치닫는 ‘정치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정치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통렬한 비판을 일삼는 이 작가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품게 된다.

『나는 왜 쓰는가』에는 <코끼리를 쏘다>, <나는 왜 쓰는가>를 비롯한 27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시대와 사회적 배경이 촉구했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한 글(<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민족주의 비망록> 등)들 사이로 <서점의 추억> <행락지> <물속의 달>, <두꺼비 단상>처럼 그의 인간적 면모와 자연에 대한 태도를 짐작해볼 수 있는 짧고 재치있는 글을 만날 수 있다. <정말, 정말 좋았지>에서는 유년기를 더듬는 자전적 글을 통해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의 성장 과정과 내면의 변모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이 쓰여진 지 백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글이 던지는 질문과 사색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지성과 자각을 일깨운다. 각성은 시대를 떠나 필수적인 요소임을 확인하게 한다. 한 번에 소화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꺼내 읽게 될 확률이 99%는 되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글쓰기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나의 경우 쓰기는 ‘나와 타인, 세상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세상을 알기 위해 쓰기라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후 쓰기는 ‘아쉬움’에 매달리고 있었다.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다. 존재를 휘감았던 슬프고 아름다웠던 순간이 사라져버리는게 아쉬워 썼다. 이것은 ‘기록’에 가까웠고 어떤 면에서 ‘역사적인 충동’에 해당했던 것 같다.

한때 ‘외부 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을 언어로 포착하고 싶다는 갈망도 있었다. (미학적인 열정) 하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타고난 감각과 감식안, 그리고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랐다. 지금은 쓰기에 대한 갈증과 열망으로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정치적 열정)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오웰 읽기 또한 그런 맥락 하에서 하고 있고. 쓰는 일을 지속하고 훈련하다 보면 미학적 관점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하지만 이 모든 열망의 가장 밑바닥에는 ‘순전한 이기심(‘똑똑한 여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없진 않다고 고백해야겠다.

여전히 ‘아쉬움’때문에, 쓰는 일의 곁을 맴돈다. 사라지는 것들을 남겨두고 싶어 쓴다. 그리고 무엇보다 쓰기에 이토록 몰두하는 이유에는 설터가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믿음이라는게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글쓰기가 다른 일보다 훌륭한 일이라는 믿음이 늘 잠복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결국에는 글쓰기가 더 훌륭하다는 게 입증되리라는 믿음이.”

(제임스 설터,『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기술에 대한 생각』(1999년) 중에서)

소멸을 향해 가는 인생의 시간을 쏟아 부을 만한 훌륭한 일이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여러번 물었다. 답은 늘 '쓰기’였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저항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293-294쪽,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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