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시 말들의 흐름 3
정지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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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시작한 일이 지긋지긋해지는 경험을 했다. 디저트를 만드는 게 좋아서 일로 삼았는데 어느 순간 애증의 굴레에 놓여있었다. 돈을 벌어야하는 일이 되어서 그런 걸까,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기 싫을 때도 해야했고 만들기 싫은 것도 만들어야 했으니까. 지쳐 젖은 걸레 같은 몸을 끌고 일을 하다보면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끔찍하게 싫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처음의 마음을 유지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긴 시간 고민해왔다.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다만 질리도록 매달리지 말고, 좋아하는 마음이 지속될 정도로만 힘을 쏟기로 했다. 단번에 쏟아붓지 말고 일정 정도의 ‘좋아하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자고. 하지만 질문은 늘 남아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혹은 좋아하는 것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대로 남겨둘 수는 없는 걸까. 디저트에 대한 마음이 아니더라도 한때는 열렬히 타올랐던 마음(영화와 여행, 독서와 와인을 향해)이 어느덧 시들해진 것을 깨달았던 몇 년 전 부터 지속되었던 질문이다.


"아무래도 영화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되짚어보면 영화를 정말 좋아한 적이 있나 싶다. 내가 좋아했던 건 영화의 이미지에 가깝다. 영화의 작가들과 비평가, 매체가 만들고 보급한 어떤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따라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영화를 보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영화를 좋아하게 만든 건 아닐까.

(...)

하지만 영화를 좋아할수록 자유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다. 카메라-만년필이 파일과 웹으로 인해 진정으로 도래한 것처럼 보이고 자유도가 급격히 상승했는데도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갈증과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쩐지 의구심이 남는다.

(…)

시를 좋아할수록 나는

1. 자유롭지 않으며

2. 고통스럽고

3. 병약해진다.

(…)

그러므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영화와 시를 좋아하는 것(또는 좋아하지 않는 것)이 내 과제다. 즐기고 공감하고 감동받는 것으로 끝내기. <인디아나 존스>를 보던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영화와 시>> 정지돈, 시간의 흐름

 

 

 정지돈 작가의 <<영화와 시>>는 영화와 시를 좋아했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순수하게 즐길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의문과 함께 시작된다. 여전히 영화를, 시를 좋아하는가,라고 자문하면 아니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두에서부터 그는 명확히 말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영화와 시를 좋아하는 것이 과제라고. 결국 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시를  좋아하겠다는 고백이라는 걸 거기서 짐작하긴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깊어질수록 진위 판단이나 가치 판단이 더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

 어떤 예술이건 그것을 깊이 좋아하는 일이 시간이 갈수록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게는 맞설 상대가 없고-있다면 가장 큰 상대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누군가를 이겨먹고 싶은 생각도 없다(경쟁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박 모 시인의 시나 박 모 감독의 영화를 받아들일 수 없고 그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좋아할 수 없다. 내가 계몽주의적이거나 선민의식에 물들어 있는 건 아닐까. 더 많이 안다거나 더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지적인 즐거움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깊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내게 필요한 건 순수한 긍정과 기쁨이다."


<<영화와 시>> 정지돈, 시간의 흐름

 

 

 그렇다면, 왜 예전처럼 영화와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혹은 좋아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진걸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깊어질수록 진위 판단이나 가치 판단이 더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상에 대한 기준은 날로 높아지고 엄격해질 수 밖에 없다. 좋다고 인정하기 위해 때로는 까다롭고 복잡한 의미 분석이나 가치 판단의 과정이 필수적이 된다. 좋음이 나름의 평가를 통과해야 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 새로운 것도 뛰어난 것도 없다는 시시함, 혹은 피로함에 닿기 마련이다.

 무엇을 좋아하는가 혹은 좋아하지 않는가. 이후에 계속되는 (졸면서 보았던) 영화의 목록과 영화 관련 경험, 독서와 작가에 대한 뒷 이야기는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의 지나온 변곡점을 되짚는 과정같다. 그 속에는 신변잡기적이지만 ‘리얼타임’의 기쁨을 노래했던 프랭크 오하라, 사라지는 일상을 구제하려했던 아흐마토바, 비시대적이고 비체제적인 태도로 자신만의 시공에 존재하며 즐거움을 추구한 브로드스키 등이 언급된다. 일반적으로 좋다고 평가되는 기준에서 벗어난 것, 익히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방식, 주류의 시선, 의미와 가치의 무게에서 벗어나 일상과 순간에서 뛰어오르는 기쁨과 아름다움을 포획하는 것, 그의 시선은 그런 방식으로 삶과 작품활동을 지속했던 작가와 예술가들에 주목한다. 거기에 좋아하기 혹은 좋아하는 마음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는 듯.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방향성이다. 무언가에 대한 경외심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지만 호기심은 아직 남아 있다. 모든 것이 지루하다고 생각했지만-특히 세계문학전집 유에서 나오는 수많은 작품들, 문학상 수상작품들, 거장들의 신작들, 주목받는 신예들-모르는 것과 궁금한 것은 어디서든 나타난다. 모른다는 것은 몇 안 남은 축복이다. 알아가는 것은 몇 안 남은 기쁨이다. 대상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대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대상을 둘러싼 이미지를 통해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영화와 시>> 정지돈, 시간의 흐름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즐거움은 사라진다. 모른다는 것은 그래서 축복이다. 그리고 가능성이다. 모르기 때문에 꿈꿀 수 있고 발견할 수 있고 잃어버렸던 즐거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계속 좋아할 수 있냐고? 모르는 것과 궁금한 것은 어디서든 나타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된다. 세상은 넓고 무수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있다. 내가 아는 것은 그 중 한 톨의 쌀알 크기에 지나지 않을 테고. 우리의 호기심이 죽지만 않는다면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즐거움과 순수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그것이 좋아하는 마음을 지속하게 해 줄 것이다.

 정지돈의 <영화와 시>는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려면 혹은 더 좋아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고민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글로 읽혔다.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프로보다 좀 더 아마추어가 되는게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던 그. 규정되어 있는 틀을 따르기보다 아마추어적인 시도를 통해 예외의 것을 만드는데서 훨씬 좋은 결과물이 생길 수도 있다.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태도도 그와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졌다. 다수의 타인이 제시하는 기준과 취향, 선호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아마추어적인 호기심으로 좋아하는 대상을 대하겠다고. 그것은 누구나가 수긍하고 인정하는 가치나 희망을 향해가겠다는 외침이 아니라 나만의 즐거움과 발견을 향해 ‘희망 없이 지속’함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겠다는 고요한 몸짓같았다. 그렇게 그의 글을 이해하고 나니 (몰랐는데 책을 읽고 찾아보니)이미 유명해져 있는 이 작가가 고요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더 이상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이상한 바람마저 들고.

 이 책을 읽고, 내 고민에 대한 답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가 될 것이다. 디저트를 만드는 것을 일로 받아들이면서 결과물에 대한 엄격함이 생겼다. 그걸 지키느라 과정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새로운 시도나 모험이 아닌 레시피의 근엄한 준수와 반복을 통한 실패율 ‘0’에 몰두했기 때문이리라. 프로이기보다 아마추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 또한 수긍한다. 프로의 세계로 진입해 딱딱한 틀에 갇히느니 아마추어의 유연한 세계에서 즐거움을 찾고 싶기에. 그가 있는 예술의 세계는 또 다른 영역이기에 일대일로 견줄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가 알려준 조금은 삐딱하고 독특한 시선이 작은 가능성이 되어 나를 두드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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