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람시에게로
칼 보그 지음, 강문구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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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안토니오 그람시!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이자, 뭇솔리니에 의해 투옥되어 수 십년 감옥에서 이론 작업을 수행한 초인적 혁명가. 마르크스 혁명이론을 자본주의 세계에 적용을 탐색하여 ‘헤게모니’ 이론을 창안한, 최고의 마르크스 이론가!  

 

 나는 지금 왜 마르크스를 다시 읽고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반 마르크스주의자는 없다’라는 명제는 타당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87년 체제 이전까지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대중에게 한 번도 마르크스가 제대로 이해된 적이 없기에, 이는 마르크스를 반대할 지식 기반조차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풍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오직 강단 학자들에 의해 독점되어 왔고, 그나마 마르크스의 사회 혁명 이론이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더욱 힘을 잃어 가고, 그의 저작들이 폐기처분 되는 추세인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비록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이후 사회변혁 이론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적어도 마르크스만큼 자본주의의 속성을 정확하게 분석 통찰한 자는 역사상 없었고, 지금도 그의 ‘자본’이나  ‘계급이론’ 등 자본주의 본질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를 위한 지형도를 새롭게 그리는 데에 마르크스는 지금도 매우 유용한 토대이고,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장에서, 그 작업은 이제 우리 세대의 몫이기도 하다. 이미 마르크스의 방법론이 다시 학계와 운동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되살아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마르크스와 그의 후속 이론들을 개괄하는 것은 지적 탐구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의 변혁 논리로도 충분히 유용한 작업이다.

 A. 그람시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마르크스 혁명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마르크스는 물적 토대인 하부구조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비해, 그람시는 상부구조 즉 의식, 교육, 가치 등이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말하고 있다.  

 이를 헤게모니 이론으로 정립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계급 지배는 교육, 언론, 법, 대중문화 등으로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행사 된다. 이는 노동조합, 학교, 교회, 가족 등 일상생활 모든 부분을 관통하는 조직 원리이다. 지배 엘리트들은 그들의 권력과 부, 지위 등을 영속시키기 위하여, 바로 그들 지배계급의 철학과 문화, 도덕성 등을 대중화하여 그것을 자연적 질서로 규정한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의식이 대중들에게 내면화될수록 그것은 ‘상식’이 되고, 지배계급은 이에 기초하여 대중을 지배한다.

< 선진 자본주의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그람시 정치사상 개요>

① 사회주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처럼 자본주의의 붕괴 후에 자연적으로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목적지향의 인간 행위를 통해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② 혁명은 합리적 인식 행위일 뿐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 투쟁에 뿌리 내린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당파심, 즉 참여 의식을 요구한다

③ 자본주의 세계에서 지배계급은 대중의 동의를 통해 대중을 지배한다. 그렇기에 의식변혁은 구조변혁과 분리할 수 없다.

④ 혁명은 사회의 모든 측면들, 인간 존재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여 ‘총체적으로’ 진행되어야만 진정한 변혁이 가능하다. 하나를 변혁하려는 투쟁은 모든 것, 총체적인 것들을 변혁하려는 투쟁과 엮이게 된다.

⑤ 고전적 레닌주의에 내재한 엘리트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극복하고자 했다. 노동자 계급과 농민내의 자각적인 대중투쟁 과정을 강조했다.

⑦ 민족적 토착적 대중 운동을 구성하는 이탈리아적 맑스주의를 창안했다. 즉, 혁명이 진정으로 대중적인 현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족적인 성격을 띠어야 한다.

⑧ 개방성과 비당파성을 강조한다. 즉 일반 대중의 반발과 항의, 원시적인 소요 등을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대중들과의 격리를 경계했다. 

 원저자의 문장이 그러한지, 역자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글을 읽는 것에 속도가 잘 붙지 않는다.  특히 끝의 부록으로 붙은 ‘역자 논문’은 최악이다. 명확하지 않은 문장, 불필요한 단어의 반복, 비문 등 최악의 글이다. 아마도 이 책의 가독력을 떨어뜨리는 이유 중 많은 부분은 역자의 문제인 것 같다.

 시중에 나온 그람시 관련 책들 중 이 만한 책을 고르기도 쉽지 않다. 여러 책 중에서 이번 책이 그나마 가장 추천할 만하다. 엄청남 분량과 난해하기 그지없는 主著 『옥중수고』를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래전에 가진 곤혹스러운 의문으로 1,800만 노동자 농민이 왜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어긋나는 정치적 행동을 하는가, 즉 왜 부르주아 정당에 투표하는가하는 문제가 있었다. K. 마르크스는 이를 피지배계급의 허위의식이라 하였는데, A. 그람시에 의하면 대중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덧붙여 P. 부르디외는 이를 민중계급이 자신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를 보이지 않는 문화 권력인 ‘상징 폭력’ ‘문화자본’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노동자들의 정체성이 사회적 가치체계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혜택으로 노동자들의 소비 양식이 변화하여 자신을 스스로 피지배자로 인식하기보다는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계급으로 오인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M. 푸코는 개인의 주체란 것이 그 시대의 권력 담론에 의해 ‘구성되어 지는 것’이며, 이때 개인의 신체는 경제적으로는 노동력을 지닌 대상으로 정치적으로는 복종할 수 있도록 훈련 받는다고 한다.   

  A.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피에르 부르디외의 ‘상징 폭력’과 ‘문화 자본’ 이론과도 통하고 미셸 푸코의 ‘권력 담론’과도 통하고 있기에, 지배/억압의 이해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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