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한 호화로운 아파트.

1층 입구에 작은 공간이 있다.

텔레비전이 하루종일 켜져 있는 곳, 24시간 누구나 문을 두드리고는 세탁물을 받아달라, 우편물을 받아달라 불쑥 요청하는 곳.


하지만 여기 수위는 어딘가 다르다. 오십대의 수더분한 아줌마 르네 미셸은 남다른 지성과 교양이 있는 사람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수많은 영화를 탐닉하는 수위 아줌마. 자신의 교양이 프랑스 상류층들에게 들킬까봐 부러 문법 실수를 저지르고, 엉뚱한 짓을 한다. 하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이 공간, 이 공간에서는 온갖 철학적 사색과 미적인 안목이 빛을 발휘한다.


호화 아파트에 사는 팔로마는 수위 아줌마가 어딘가 수상하다는 걸 눈치챈다. 미셸의 우아함을 눈치챈다. 이 아줌마가 남다른 교양과 안목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팔로마는 또래와는 다르게 유난히 똑똑한 아이다. 어른들처럼 어항속의 물고기처럼 살기 싫어, 이 호화로운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죽기로 결심한다. 호화로운 이 아파트는 가시처럼 번뜩이는 지적임을 숨기고 있는 두 고슴도치를 품고 있다. 나머지 허세와 허영으로 가득한 아프트 주민들 속에서 이 두 고슴도치들을 스스로를 숨기고 있다.


 

미셸 부인에겐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있다. 겉은 진짜 철옹성 같은 가시로 뒤덮여 있지만, 안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무딘 듯하나 무디지 않고 몹시도 고독하고 더없이 우아한 작은 짐승, 고슴도치처럼.

 

그러던 어느날 일본인 신사가 이사를 오게 되고, 그는 이 두 고슴도치를 알아본다. 그리고 르네 미셸의 지적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고슴도치를 세상 밖으로 꺼내려 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충격적인 결말.

 

 


미셸과 팔로마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이 작품은 아이의 시선, 수위의 시선으로 프랑스 상류층의 허세를 비꼬아 말한다.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고 조금이라도 튀면 짓밟히는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프랑스의 피라미드 가장 아래층에 있는 수위 아줌마의 눈을 통해 상류층들이 얼마나 겉만 번지르르한지, 그 지저분한 부분이 드러난다. 진지한 면모도 있지만 더 돋보이는 건 통렬한 유머다. 시종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으며 소박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사회의 가장 밑부분을 맡고 있는 자들의 시선을 통해, 그리고 그들에게 손내미는 상류층의 한 신사를 통해 소박하게 우리 사회의 화합을 일러주는 책. 이 책을 관통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충격적인 결말 이후에도 우리 안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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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자는 아기를 보러, 애를 낳은 아내를 보러 한달음에 달려간다. 남자는 아들이라는 소식에 무척 들뜬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남자는 병원의 이상한 분위기에 놀란다. 모두들 이렇게 끔찍한 건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간호사는 남자에게 당장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남자는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 표정이다. 아이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병실로 간 남자는 아이를 보자마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표정이 된다.



남자의 아이는, 할아버지였다. 칠순이 넘은 듯한 할아버지.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머리도 하얗게 변해 있었다. 간호사는 아이에게 입힐 옷을 요구했다. 그리고, 옷을 사러 나가는 남자에게 아들은 말한다.  '그리고 지팡이도, 아버지. 지팡이 갖고 싶어.'



태어나자마자 노인이었던 벤자민 버튼은 몇 년이 지나자 할아버지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인 벤자민 버튼을 어려워한다. 그리고 또다시 몇 년이 지나자, 벤자민 버튼은 아버지와도 친구가 된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음에도, 젊은 여자가 나이든 남자와 결혼했다고 추문을 이끌고 다니고, 대학게도 못가고, 점점 더 어려지는 덕분에 아들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라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노인이 되자, 벤자민은 소년이 되어버리고, 어렸을 때는 갈 수 없었던 유치원에 가게 된다. 무려, 손자와 함께.



일 년 뒤 로스코의 아들은 1학년에 진급했지만, 벤자민은 유치원에 머물렀다. 그는 매우 행복했다. 때로 다른 꼬마들이 커서 무엇이 될지 이야기를 나누면 그의 조그만 얼굴에는 그림자가 스쳐지나가곤 했다. 그건 자신이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걸 어린애다운 방식으로 어렴풋이 깨닫기라도 한 듯이.



벤자민 버튼은 역주행으로 삶을 살게 된다.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삶을 마감한다. 역주행하는 삶은 어떨까. 정주행 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역주행으로 살아보지 않는 한 모를 일이다.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은 딱히 행복해보이지도, 불행해보이지도 않았다. 그정도의 불행은 정주행으로 사는 우리도 겪는 불행 아닌가. 세월은 역주행하는 자에게도, 정주행하는 자에게도 고만고만 불행하고 행복하게 흘러간다.



세월은 단조로운 것들로 채워진 채 흘러갔다. 삼 년째에도 유치원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그는 너무 어려서  화사하게 빛나는 종잇조각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보다 크고 무서워서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실린 11편의 단편은 유쾌하고 기발하다. 작은 소동극을 보는 듯하다. 피츠제럴드가 그때그때 단편을 써서 먹고살았다던데, 순식간에 써낸 이 장편들이 이렇게 하나같이 유쾌하다니. 피츠제럴드가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재즈시대로 불렸다. 가장 풍요롭고 화려했던 미국 사회를 가장 잘 표현해낸 피츠제럴드. 경박하다가 시니컬하고, 우스꽝스럽고 기발하다가 어느새 쓸쓸해지는 이야기들만 모아놓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피츠제럴드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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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만 두 번을 읽었다.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

또 두 권을 사서 선물을 했던 작품이다.

 

 

 

 

노 교수 데이비드 케페시가 등장한다. 인터뷰를 하듯,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 '콘수엘라'에 대해. 자신의 아들에 대해. 그리고 콘수엘라의 가슴에 대해.


 

노 교수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노 교수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털어놓는다. 이 교수의 또다른 학생일지도....


 

케페시는 늘상 자신의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과 잠자리를 즐겼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콘수엘라'는 조금 달랐다. 케페시는 콘수엘라에게 굴복당했다. 자신의 사그라드는 생명력에 반해 그녀는 너무나 밝게 빛났다. 케페시는 콘수엘라가 만나는 다른 남자들에게 심한 질투를 느꼈고, 그녀를 만족시켜주고 싶었으며, 그녀가 만족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다. 또 함께할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더욱더 힘겨워한다.


 

하지만 이런 불온한 사랑은 끝이 나게 마련이다. 콘수엘라는 몇 년 뒤, 다시 케페시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다. 자기의 아름다운 육체를 봐달라고,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한다. 콘수엘라의 찬란하게 빛나는 육체에 반했던 케페시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작품 <은교>와 여러 면이 비슷했던 작품이다. 점점 사그라드는 육체의 남성이 생명력으로 가득찬 젊은 여성에게 빠진다는 설정. <은교>도 영화화가 되었고, 이 작품또한 <엘레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젊은 콘수엘라 역할을 했는데 정말 예쁘다..... 몸매도 정말 예쁘고....

 

 

 

 


 

그 아이의 커다랗고 아름다운 가슴. 그리고 역동하는 생명력. 그리고 애써 부인해보지만 어쩔 수 없는 죽음.


 

이런 욕구. 이런 혼란. 절대 멈추지 않을까? 한참 지나고 나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 아이 젖퉁이? 그 아이의 영혼? 젊음? 소박한 마음? 어쩌면 그보다 나쁠 수도 있어--어쩌면 이제 죽음에 다가가게 되니, 나도 은근히 자유롭지 않기를 갈망하는지도 몰라.

 

 

이 책을 다 읽고나자, 죽어가는 짐승이 누굴 뜻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케페시를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콘수엘라를 뜻하는 것일까. 아무튼 우리 모두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음이 틀림없고, 우리의 생명은 시간이 갈수록 사그라드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의 욕망은 시간이 흐른다고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소유욕은 언제나 강렬할 것이다.


 

 "내 심장을 살라다오, 욕망에 병들고

죽어가는 짐승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어

이 심장은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예이츠. 그래.  "모두 그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사진을 찍었는데... 표지의 여인이 너무 추워보여서 낙엽 이불을 덮어주었다.

죽어가는 짐승과 생명을 다해 떨어진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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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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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살라다오, 욕망에 병들고 죽어가는 짐승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어 이 심장은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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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돌려 입기 1
앤 브래셰어즈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청바지 돌려 입기>라는 책을 옛날에 읽었었다.

그땐 친구가 강력하게 추천해줘서 읽었었는데, 그때도 이 네 명의 소녀에게, 이 마법의 바지에게 홀딱 반해버렸었다. 성인이 되어서 다시 만난 개정판 <청바지 돌려 입기>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학생인 내가 읽었던 <청바지 돌려 입기>는 나에게 미국 고등학생들의 삶에 대해 큰 환상을 갖게 만들어주었는데, 이번에 읽은 <청바지 돌려 입기>는 살짝 슬프고 아련한 느낌이었다.



주인공인 네 명의 소녀는 한창 사춘기를 겪을 16~17살 사이의 소녀들이다. 엄마끼리 친구여서 태어나자마자 친구인 이 네 소녀들은 매년 여름을 함께 보냈다. 눈 뜨자마자 만나서 놀다가 헤어지면 집에가서 잠이 드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웬일인지 네 명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청바지 한 벌이 눈에 띄었다!


생김새도, 성격도, 몸매도 다른 네 명의 소녀들에게 이 청바지는 딱 맞았다. 심지어 이 바지를 입으면 더 예뻐보이고 매력적이 되는 것 같았다. 이들은 이 바지를 '마법의 바지'라고 부르기로 하고 여름방학동안 돌려 입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이 네 명의 친구는 교환일기를 돌려서 쓰듯, 이 바지를 돌려 입는다.


"난 이 자리에서 이 바지를 동등하게 소유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 이 바지는 우리가 가는 곳을 전부 찾아다닐 거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서로를 하나로 묶어줄 거야."


네 명의 십대 소녀들은 언제까지 함께일 수 없다. 대학도 가야 하고, 가족들이 이사를 갈 수도 있다. 또 혹시 대학교를 비슷한 지역으로 간다고 해도 결혼을 하게 되면 또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이 소녀들은 처음으로 떨어져서 지내는 연습을 한 것 같다. 신고식은 혹독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었고 기쁜일과 슬픈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무척 우울했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마법의 바지가 있다. '우정'의 힘이 있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함께일 수 있는 우정의 힘이 이들에게는 있던 것이다.


성인이 되어가는 이들 앞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아빠의 재혼, 느닷없이 찾아온 첫사랑, 불치병에 걸린 친구.... 16년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을 맞이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아니, 해결한다기보다는 문제를 받아들인다. 고작 16살인 소녀들이 어떻게 아빠의 재혼, 친구의 죽음을 해결할 것인가. 각자의 성격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문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한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이 네 소녀들의 행동이 다 크고 나니까 이해가 되었다.


나에게도 이 네 소녀들 같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무려 5명이나 있다. (이들은 넷이지만 우리는 여섯이라고!) 성격이 제각가인 네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 넷 중에 나는 누구일까, 내 친구 B는 누구와 닮았을까, R은? L은? J는? C는? 이렇게 찾아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심술이 나면 일부러 더 나쁘게 행동하는 카르멘은 나와 비슷하고, 예쁘고 활달한 브리짓은 R과 비슷하다. 그리고 예술가적인 성향이 있는 레나는 L과 비슷하고, 얌전한 면이 있는 레나는 또 J와도 비슷하다. 이렇게 네 친구들 사이에서 내 친구들의 모습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렇게 내 친구들 사이에서 있을법한 인물들과 있을법한 사건전개가 등장하면서 첫 출간당시 전 세계 청소년들 사이에서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교환일기처럼 돌려 입는 바지는 그 사이에서 우정의 징표가 되어준다. 나와 내 친구들의 다이어리가 우리 우정의 징표가 되어준 것처럼. 사실, 지금도 내 친구들과 만들어놓은 단체 카톡방은 계속 울리고 있다. 이렇게 소중한 친구들이 내 곁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에 <청바지 돌려 입기>의 네 명의 소녀가 부럽지 않은 밤이다.

 

 

 

"난 이 자리에서 이 바지를 동등하게 소유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 이 바지는 우리가 가는 곳을 전부 찾아다닐 거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서로를 하나로 묶어줄 거야."

숨을 멈추고 바지를 펼쳤다. 바지에 담긴 천 개의 소원이 풀려나도록. 이제 바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돌려 입는 바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행복이란 거창하게 모든 환경이 바뀌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게 아닐까. 소소한 기쁨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 슬리퍼를 신고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시청하는 것.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는 브라우니를 먹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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