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자는 아기를 보러, 애를 낳은 아내를 보러 한달음에 달려간다. 남자는 아들이라는 소식에 무척 들뜬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남자는 병원의 이상한 분위기에 놀란다. 모두들 이렇게 끔찍한 건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간호사는 남자에게 당장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남자는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 표정이다. 아이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병실로 간 남자는 아이를 보자마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표정이 된다.
남자의 아이는, 할아버지였다. 칠순이 넘은 듯한 할아버지.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머리도 하얗게 변해 있었다. 간호사는 아이에게 입힐 옷을 요구했다. 그리고, 옷을 사러 나가는 남자에게 아들은 말한다. '그리고 지팡이도, 아버지. 지팡이 갖고 싶어.'
태어나자마자 노인이었던 벤자민 버튼은 몇 년이 지나자 할아버지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인 벤자민 버튼을 어려워한다. 그리고 또다시 몇 년이 지나자, 벤자민 버튼은 아버지와도 친구가 된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음에도, 젊은 여자가 나이든 남자와 결혼했다고 추문을 이끌고 다니고, 대학게도 못가고, 점점 더 어려지는 덕분에 아들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라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노인이 되자, 벤자민은 소년이 되어버리고, 어렸을 때는 갈 수 없었던 유치원에 가게 된다. 무려, 손자와 함께.
일 년 뒤 로스코의 아들은 1학년에 진급했지만, 벤자민은 유치원에 머물렀다. 그는 매우 행복했다. 때로 다른 꼬마들이 커서 무엇이 될지 이야기를 나누면 그의 조그만 얼굴에는 그림자가 스쳐지나가곤 했다. 그건 자신이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걸 어린애다운 방식으로 어렴풋이 깨닫기라도 한 듯이.
벤자민 버튼은 역주행으로 삶을 살게 된다.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삶을 마감한다. 역주행하는 삶은 어떨까. 정주행 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역주행으로 살아보지 않는 한 모를 일이다.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은 딱히 행복해보이지도, 불행해보이지도 않았다. 그정도의 불행은 정주행으로 사는 우리도 겪는 불행 아닌가. 세월은 역주행하는 자에게도, 정주행하는 자에게도 고만고만 불행하고 행복하게 흘러간다.
세월은 단조로운 것들로 채워진 채 흘러갔다. 삼 년째에도 유치원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그는 너무 어려서 화사하게 빛나는 종잇조각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보다 크고 무서워서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실린 11편의 단편은 유쾌하고 기발하다. 작은 소동극을 보는 듯하다. 피츠제럴드가 그때그때 단편을 써서 먹고살았다던데, 순식간에 써낸 이 장편들이 이렇게 하나같이 유쾌하다니. 피츠제럴드가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재즈시대로 불렸다. 가장 풍요롭고 화려했던 미국 사회를 가장 잘 표현해낸 피츠제럴드. 경박하다가 시니컬하고, 우스꽝스럽고 기발하다가 어느새 쓸쓸해지는 이야기들만 모아놓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피츠제럴드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단편집이다!